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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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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7월호>
『그때에 세베대의 자녀들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과 함께 주께 와서 경배하며 무엇인가를 그에게 구하더라. 그러나 주께서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시니, 그녀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왕국에서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의 왼편에 앉게 해주소서."라고 하니』(마 20:20,21).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가실 때, 세베대의 아내,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를 만나셨다. 세베대의 아내는 예수님께 한 요청을 드렸는데, 그것은 평범한 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아들이 주님의 왕국에서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님의 왼편에 앉게 해주시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는구나!" 즉 그들의 어머니는 주님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 위해서는 물침례가 아닌 어떤 특별한 "침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0:22,23에서 말씀하신 『침례』는 가까운 미래에 주님께서 받으실 침례 곧, 고난의 침례였다.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참으면 우리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 우리가 그를 부인하면 그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딤후 2:12).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물으셨다. 『내가 마시려고 하는 그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또 내가 받는 그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 20:22)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것에는 일종의 대가가 필요했다. 그 어머니는 그 대가를 헤아려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그 대가를 가늠해 보았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리가 받을 수 있나이다.』(마 20:22)라고 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한 바를 일단 받아들이셨다(마 20:23).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에서 참수당했으며, 요한은 계시록 1장에서 보듯이 팟모 섬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그들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탐냈던 자리는 이미 임자가 있었던 것이다(마 20:23). 사실인즉, 주님의 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을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이다. 그들은 율법과 선지서를 대표한다. 그들은 구약에 마지막으로 거명되기도 했다(말 4장). 그들은 또한 주님의 용모가 변했던 그 산에서 주님과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마 17:1,3). 그리고 이것은 주님께서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의 예표가 된다(마 16:28). 그들은 대환란 때 나타날 두 증인이며, 성경은 그들을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촛대』라고 말씀한다(계 11:4).
필자가 먼저 이 어머니의 간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간구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최상의 것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최상의 것을 원한다고 해서 그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사랑이 시들어도, 선한 어머니의 사랑은 지속된다.
재판관기 5:28,30에 보면, 시스라의 어머니가 왜 그가 전투에서 늦게 오는지 궁금해 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여종들이 그 어머니에게 "어쩌면 약탈물들을 나누거나 포로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위로하려고 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는 관자놀이에 못이 박힌 채 한 여인의 장막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 최상의 것을 원했고, "내 아들이 전쟁에서 전리품들을 가져오느라 늦는구나!"라고 말했다.
런던의 한 화랑에 두 여인을 그린 작품이 걸렸다. 이 여인들은 분명히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보물들을 서로에게 보이며 자랑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진주 목걸이를 들고 자랑하고 있었고, 다른 여인은 자신이 낳은 두 아들 위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좋은 어머니는 아들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베대의 아내의 간구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기적인 간구였다. 그녀는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을 위해서 뭔가를 요청하지는 않고, 단지 자기 자식들만을 위해서 간구를 드렸던 것이다. 즉 "내가 먼저고, 당신은 그 다음이다."라는 식의 마음인 것이다. 즉 누가복음 12:13-15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온 사람과 같았던 것이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말씀하셔서 유산을 나와 함께 나누라 하소서.』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주님의 사역은 그런 일에 "재판관"이나 "재산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그 사람은 탐욕적이었고, 주님에 대해서나 자신의 형제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도록 가르치는 어머니를 가진 사람은 참 복된 사람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가 종국에는 죽는 날만 바라며 사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 일인가! 어머니는 아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다. 좋은 어머니를 가졌다면 인격, 정결함, 순종 등에 대해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다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5살이 되기 이전에 모두 어머니에게서 배우는 것들이다.
로버트 모팻은 남아프리카로 간 위대한 선교사였고,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장인이기도 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믿었던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었다. 로버트가 해외로 가게 되자,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이제 너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해야 되겠구나! 이제 너를 수년간 보지 못하겠구나.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나에게 하나만 약속해 주겠니?" "그게 뭡니까, 어머니?" 로버트가 물었다. "아들아, 너는 아주 사악한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매일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과 함께 끝내겠다고 약속해 다오!" "네, 약속합니다, 어머니!"라고 로버트는 말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그는 수백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그리스도께 이겨왔고, 아프리카 선교의 문을 열기도 했다. 로버트 모팻의 어머니는 아들을 정말 잘 길렀던 것이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는 열일곱 명의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요한과 찰스가 그중 어린 시절에 죽지 않았던 자녀들이다. 이 두 사람은 영국을 실제적으로 프랑스의 유혈 혁명과 같은 끔찍한 혁명으로부터 구해 낸 장본인이다. 그들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아들들이 불평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녀는 자신이 아들들에게 회초리를 들 때, 그들이 울 수는 있어도 비명은 지르지 못하게 했다. 만약 너무 크게 울면 오히려 더 세게 때렸다. 설령 운다 해도, 실제로 아픈 것보다 더 큰 소리로 울지 못하게 했다. 그 어머니는 존 웨슬리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 갈 때 어머니에게 어떤 좋은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존 웨슬리의 사역의 결과로 수십만 명에 이르는 혼들이 구원받았다. 당신은 누가 그를 그렇게 예비했는지 아는가? 바로 그의 어머니이다. 남자에게 좋은 어머니가 있다면, 그는 정말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의 간구는 또한 야망에 찬 간구였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다는 것은 참으로 큰 포부이다. 그런 것을 요구하는 데는 큰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기 전에, 엘리사는 그를 따라서 요단 강 반대편까지 갔다. 엘리야가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할 즈음에, 그는 엘리사에게 물었다. "내가 떠나기 전에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살아 있을 때 그렇게 물었다는 것은, 로마카톨릭처럼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의 두 배의 분량을 간구했다. 그것 또한 꽤나 야심찬 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엘리야는 자신의 말로 비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음식과 기름을 증가시킬 수 있었으며, 죽은 자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하늘에서 불을 불러 땅에 내리도록 할 수도 있었다. 엘리사는 쉽게 말해서, "당신이 행한 것의 두 배를 행하기 원합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매우 큰 요청이 아닐 수 없다.
야망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프랑스의 여왕 캐서린 드 드비치는 잔혹한 살인마였다. 그녀는 1572년 성 바돌로매의 날 대학살을 일으킨 왕을 길렀는데, 그가 바로 찰스 9세이다.
반면에 마리안 앤더슨이라는 흑인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훌륭한 콘트랄토 가수였다. 그녀는 명성이 자자한 가수여서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와 영국의 왕과 왕비를 위한 개인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훗날 혹자가 그녀에게 그 일이 그녀의 경력에서 최절정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 생애의 가장 위대한 날은 제가 충분히 돈을 벌어서 제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이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제가 어머니를 모실게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날입니다."
다음으로, 세베대의 아내의 간구는 선한 간구였다. 그녀의 아들들은 주님의 왕국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 다음가는 보좌를 하나씩 차지하게 되었다(마 19:28).
그러나 그 간구는 섣부른 간구이기도 했다. "섣부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 대가를 헤아려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어떤 과업을 앞두고 계신지 알지 못했다. 골고다에서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과 왼편에 있었는가? 두 강도가 거기 있었다. 왕국이 오기 전에 겟세마네와 모독과 침 뱉음과 뺨을 맞는 것과 잔혹한 채찍질과 가시관과 못과 십자가가 있어야 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그것을 보지는 못했다.
형제들이여,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 고난이 없으면 통치도 없다(딤후 2:12).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 썼다(고전 11:1). 그런 그는 아내와 가족, 교회, 학교, 수입, 은행계좌, 의료보험, 사회보장, 생명보험도 없이 죽었다. "건강과 부," "번영의 복음" 따위는 없었다. 바울은 매 맞음과 돌로 맞음, 파선, 위험, 피곤함, 고통, 굶주림, 목마름, 여러 재난들에 노출된 삶을 겪었다(고후 11:25-27).
물론 사도 바울이 겪은 모든 것을 당신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떤 고난을 당해 보았는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조롱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은 적이 있는가? 아니면 진리를 말한 것으로 박해를 받은 적이 있는가? 오늘날에도 이처럼 박해를 받을 수 있는 나라들이 있다(예를 들어, 공산주의나 이슬람 국가들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필자가 말하는 바를 오해하지 말라. 나는 사도행전 2장부터 휴거가 있을 때까지 사람은 행위들이 없이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우리는 행위가 아닌 은혜에 의한 구원의 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면, 분명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내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 내가 처음으로 설교를 들었던 설교자는 제임스 맥긴리(James McGinley)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는데, 그가 든 예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맥긴리는 자신이 젊었을 때 스코틀랜드의 고산지대에 살았고, 하루는 골짜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북을 치는 소리였는데,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며 나왔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6피트 7인치(약 2미터) 정도로 체구가 건장한 스코틀랜드 고산지대 사람이 북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블랙 왓치" 부대에서 온 하사관이었다(그 부대는 영국군 내의 스코틀랜드 부대로 일명 "지옥에서 온 여인들"이라고 불렸다). 그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남자가 전통적으로 착용하는 치마형 하의인 킬트를 입고 놋쇠 드럼을 한복판에 설치해 놓고 쳤던 것이다. 그는 영국의 화폐인 "실버 크라운"을 드럼 위에 놓고 그곳의 모든 군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저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저기 드럼 위에 있는 '실버 크라운'을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여기로 나와서 저 '실버 크라운'을 가져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페트리샤 공주님의 경보병대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앞으로 나와서 저 '실버 크라운'을 집고 지원하면, 어떻게 해줄 것인지 말해 주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모든 옷을 공짜로 주고, 당신은 공짜로 여행하며 세상을 보게 될 것이며, 정부가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짜로 공급해 줄 것입니다. 자, 이제 누가 먼저 나오시겠소?" 어떻게 그런 제안을 스코틀랜드 사람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맥긴리가 제일 먼저 내려가서 그 드럼 위에 있던 '실버 크라운'을 집었고, 페트리샤 공주의 경보병이 되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 영국 해협을 건너서 프랑스에 가서 싸웠다. 이야기의 이 부분에서 맥긴리는 그 자신만의 특유의 스코틀랜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150에서 180명에 달하는 중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전쟁에서 2년 반 동안을 싸웠습니다. 그리고 나만이, 중대 전체에서 나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여러분, 그 모병 하사관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부가 우리의 음식을 줄 것이라고 했고,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비용을 정부가 책임질 것이라고 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들 대부분은 철조망과 참호 속에서, 또한 쥐들과 이질과 진흙탕 속에서 끝까지 자신의 몸을 바쳐 싸웠습니다."
명심하라. 구원은 전적으로 값없이 받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십자가의 군사"로 살기 원한다면, 당신의 싸움을 끝마치기 전에 당신은 반드시 희생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참으면 우리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 우리가 그를 부인하면 그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딤후 2:1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