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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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e,” 음부인가, 무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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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1월호>

박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학장




초등학교 시절, 전에 다녔던 한 “독립침례교회”에서 충격적인 영상 하나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한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무리들”이 그들 밑에 있는 땅이 갈라져서 산 채로 그 아래 “깊은 구렁”으로 떨어지는 영상이었다. 그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3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필자의 머릿속에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영적 권위”에 거역한 반역자들에게 “사망의 문들”이 열렸던 것인데, 성경은 『사망의 문들이 네게 열렸더냐? 아니면 사망의 그림자의 문들을 보았더냐?』(욥 38:17)라고 묻고 있다. “고도로 과학적인 성경 말씀”에 따르면, 이 『사망의 문들』과 관련하여 땅속 지옥에는 『지옥의 문들』이 있다.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한편 지옥에는 『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들을 가로지르는 『빗장들』(욘 2:6)이 있고, 또 바로 그 『지옥의 문들』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들』도 있는데, 이 『열쇠들』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신다. 『나는 살아 있는 자며, 죽은 자였으나,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졌노라』(계 1:18).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믿음으로 영접했기에 ‘지옥에 갈까 봐’ 노심초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망,” 곧 “죽음”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는데, 죽는 순간 우리의 “혼”은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곧장 『하늘나라』(딤후 4:18)로 올라갈 것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휴거) 우리의 “몸”은 영원히 죽지도, 썩지도 않는 『영광스러운 몸』(빌 3:21)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지 않은 죄인들은 모두 “지옥”의 뜨거운 불길 속으로 던져지게 된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땅속”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을 『땅[the earth]의 심장』(마 12:40)이라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땅[the earth]의 더 낮은 부분들』(엡 4:9)이라고 말했다. 지옥을 마련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간다[dig into] 할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요』(암 9:2)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구(the earth)의 중심”까지 땅(the earth)을 파 들어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했을 때, 그렇게 파고, 또 파서 들어가다 보면, 결국 다다르게 될 장소가 “지옥의 문”인 것이다. 일단 지옥의 문이 열려 그 안으로 던져지고 나면, 죄인들이 그곳 지옥에서 머무는 기간은 “영원”이다. 물론 “백보좌 심판” 때 잠시 지옥에서 풀려나는 순간이 있을 테지만, 그것은 결국 영원한 “불못”으로 옮겨지기 위한 “잠깐의 방면”이 될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설교자 “토마스 브룩스”는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시는 것만큼, 믿지 않는 죄인들도 지옥에서 오래오래 영원토록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는 “고통의 장소”라는 사실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자의 처절한 절규 소리를 들어보라!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그가 소리질러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라고 하니』(23,24절). 이것은 “비유”나 “소설”이 아니고 “실화”이다! 이 구절들은 “실제 모습”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지옥 현장”을 이미 녹화된 중계 화면으로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어린아이, 임산부, 노약자, 심장이 약한 사람들이 볼까 봐 염려되어 “삭제한 장면”이나 “신호음으로 대체된 대화 내용”은 한 가지도 없다. 보기 불편하고 듣기 거북하다는 죄인들의 불평불만이 듣기 싫어, 걸러 내거나 “모자이크” 처리한 장면도 전혀 없다. 반역과 저주를 상징하는 숫자 “13,” 곧 본문 “열세 개의 구절”(19-31절)을 통해 “지옥의 실상”을 문자 그대로 아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지옥의 냄새”를 풍기고, “지옥의 소리”를 들려주고,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 등, 인간의 오감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4D 상영 시스템”으로 아주 현장감 있게 “지옥의 실황”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글킹제임스성경>과 영어 <킹제임스성경>에는 “지옥”이란 단어가 총 54회 기록되어 있지만, 변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지옥”이라는 단어를 41회 삭제했고, 그 대신 “음부”나 “스올”로 변개시켰다. 변개된 영어 성경 “NIV”에서는 “지옥”이라는 단어를 40회 삭제했는데, 그중에서 27회는 “무덤” 또는 “음부”로, 5회는 “죽음”으로, 3회는 “깊음”으로 변개시켰고, 나머지 5회는 번역을 거부한 채 “음역”해 버렸다. 하지만 “지옥”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처럼 “무덤”이 아니다! “지옥”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지만, “무덤” 안에는 없기 때문이다. “지옥”에는 생생한 “고통”이 있으나, “무덤” 안에는 어떤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옥”은 “음부”가 아니다! “음부”는 “낙원”과 “지옥”을 아우르는 “지하 세계” 전체를 일컫는 용어이지만, “지옥”은 지하 세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특정 장소,” 곧 꺼지지 않는 불이 영원히 타오르는 “고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hell]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라는 말씀에서 “지옥”이란 단어를 “음부”(“Hades” - NIV)로 변개시켰다. 또한 『말하기를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hell]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라는 말씀에서도 “지옥”을 “스올”(“grave” - NIV)로 음역해 버림으로 지옥의 실체를 가려 버렸다.


그런가 하면 “음부” 역시 “무덤”과 다르다! “무덤”은 죽은 사람의 시체나 유골이 묻히는 장소, 곧 “흙구덩이 매장지”를 의미하는 반면, “음부”는 “죽은 자들의 집단적인 상태”로, “히브리어 <마소라원문>의 판본들”에서는 “지하 세계”라고 부른다. 특히 구약성경에서는 “음부”라는 단어가 “죄인이든, 의인이든,”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장소를 총칭하는 표현인데, “음부,” 곧 지하 세계 안에 있는 장소들 중에서 죄인들은 “지옥”으로 갔고, 의인들은 “낙원”(눅 23:43, “지하 세계의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눅 16:22)으로 갔던 것이다. 당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이 완성되기 전이었으므로,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죽은 후에 곧바로 “셋째 하늘의 낙원”에 올라가지 못하고, “십자가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지하 세계의 낙원에 가서 임시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렇듯 “구약 시대”에는 “구원을 받았든지, 받지 않았든지 간에”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장소들(낙원, 지옥)이 모두 “지하 세계”에 있었기에, 흔히들 “사람이 죽으면 음부에 간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음부,” 곧 “지하 세계”의 낙원에 “사로잡혀 있던 구약 성도들”을 데리고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마 27:50-53, 엡 4:8,9). 사도 바울은 생전에 『셋째 하늘로 끌려』(고후 12:2) 올라가 그 『낙원』(고후 12:4)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지하 세계, 곧 음부로 내려가지 않는다. 구원받지 않은 죄인은 여전히 음부로 내려가 “지옥”으로 던져지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신약성경에서 “음부”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서처럼 자주 등장하는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고린도전서 15:55”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죽은 자들의 집단적인 상태,” 곧 “죽음 혹은 사망 그 자체”가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을 입고(고전 15:54) 저 공중으로 “휴거되는 성도들”을 쏘거나 붙잡아 패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이렇듯 음부는 무덤과 다르기에 성경에서 영어 “grave”를 번역할 때 일괄적으로 “무덤”으로만 번역해서는 안 되고, 문맥에 맞게 “음부”와 “무덤”으로 올바르게 구분해서 번역해야 한다. 우선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 “grave”가 “무덤”을 의미할 때, “히브리어”로는 “베이”(bei, 욥 30:24), “케부라”(qeburah, 창 35:20, 겔 32:24 등 4회), “케베르”(qeber, 창 50:5, 나 1:14 등 34회)가 사용되고, “헬라어”로는 “므네마”(mnema, 계 11:9), “므네메이온”(mnemeion, 마 27:52, 요 12:17 등 8회)이 쓰인다. 이에 반해 “grave”가 “사람이 죽으면 일반적으로 가는 장소”라는 뜻의 “음부”(陰府)를 의미할 때는, “히브리어”로 “스올”(sheol, 창 37:35, 호 13:14 등 32회), “사하트”(shachath, 욥 33:22)가 사용되고, “헬라어”로 “하데스”(hades, 고전 15:55)가 쓰인다. 이처럼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는 “grave”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베이,” “케부라,” “케베르,” “므네마,” “므네메이온”일 때는 “무덤”의 뜻으로 사용되고, “스올,” “사하트,” “하데스”의 경우에는 “음부”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성경 번역의 “일관성”만 내세워서 영어 “grave”를 모두 “무덤”으로만 번역하면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 오류투성이의 변개된 성경들이 바로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등이며,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흉내 내는 “흠정역”같은 “짝퉁 성경들”이다.


“세 가지 사례”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 그의 혼이 음부[grave]에 다가가고 그의 생명이 멸망자들에게 다가가는도다』(욥 33:22). 『그러나 하나님은 내 혼을 음부[grave]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니 그가 나를 받아 주시리라. 셀라』(시 49:15).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할 사람이 누구리이까? 그가 자기의 혼을 음부[grave]의 손에서 구해 내리이까? 셀라』(시 89:48). 이상 세 구절에서 “개역개정판”은 순서대로 각각 “구덩이”(“pit” - NIV), “스올”(“grave” - NIV), “스올”(“grave” - NIV)로 변개시켰고, “흠정역”은 모두 “무덤”으로 변개시켰다. 말하자면 “개역개정판”은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번역”조차 포기한 것이고, “흠정역”은 사람이 죽은 후에 그 “혼”이 “무덤”에 간다는 이상한 “이단 교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따른 성경적 교리에 의하면 “무덤”으로 가는 것은 인간의 “몸”이지, “혼”이 아니다. “혼”은 “구약 시대”의 경우 모두 “지하 세계,” 곧 “음부”에 있는 낙원 또는 지옥으로 갔고, 현 “교회 시대”에는 구원받은 혼은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 가고, 구원받지 않은 혼은 음부에 있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 도대체 뭘 알아야 “면장”(免牆)을 할 것 아닌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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