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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에서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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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8월호>

박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학장


성경에서 “하나님의 ‘히브리어’ 이름들” 가운데 하나인 “여호와”(Jehovah,)는 무려 5,500회 등장하고, 이 “신성한 이름”을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는 “LORD”로,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주』로 번역했다. 이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을 일컫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들 하나님,” 곧 『만주의 주[LORD OF LORDS]』(계 19:16)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기도 한다. 장차 “천년왕국”에서 민족들을 철장으로 다스리실(계 19:15) 『만왕의 왕[KING OF KINGS]』(계 19:16)께서는 『만주의 주[LORD OF LORDS]』이시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이름이 『주』(Lord)로 번역되었는데, 학자들 대부분은 성경 변개자 “오리겐”(Origen, A.D. 184-254)의 “칠십인역”(LXX, A.D. 240)에서 “퀴리오스”(κύριος, “주”)라고 잘못 사용한 전례를 따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말씀들”이 “라틴어”와 “시리아어”로 각각 올바르게 번역되어 보존, 전수된 <구라틴어역본, Old Latin, A.D. 150>과 <구시리아어역본, Old Syriac, A.D. 120>이 “칠십인역”보다 먼저 그렇게 번역했다.


한편 학자들은 “여호와”( )라는 이름이 히브리어 자음 “네 개,” 곧 “요드”(י), “헤”(ה), “와우”(ו), “헤”(ה)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 이름을 “테트라그람마톤”(τετραγράμματον)으로 부른다. 여기서 “테트라”(τετρα)는 “넷”을 의미하고, “그람마톤”(γράμματον)은 “글자”를 뜻한다. “네 글자,” 즉 “네 자음 문자”로 이루어진 이름이라는 것인데, 라틴어로는 네 글자 “YHWH”(YHVH, JHVH, JHWH)로 표기된다. 이 칭호는 발음하기에 너무나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이름이 본래부터 발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하고, 또 “여호와”로 음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비평하는가 하면, 원래 발음은 “아도나이”의 모음인 “a, o, a”를, 앞선 “네 자음 문자”(YHWH) 사이에 넣어 만든 “YaHoWaH”(야호와, 야훼, 야웨)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칼빈주의 신학자 “이종성”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영국의 ‘흠정역,’ 곧 1611년에 번역, 출판된 성경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호와’로 부르고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성서에 나오는 ‘야웨’라는 이름의 ‘원어’를 잘못 발음한 데서 나온 이름이라는 사실을 근년에 와서 알게 되어, 현재는 ‘여호와’라 부르지 않고 ‘야웨’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주장들은 모두 틀렸다. 이는 “야훼”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과는 전혀 무관하고, 바빌론, 시리아, 카나안 및 그 주변 지역 등지에서 섬기던 “잡신들” 가운데 수용된 “신”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는 시내 산에 거주했던 한 “이단 종파”의 “기후를 관장하는 신”이나 “레아 지파”가 섬겼다고 하는 “시내 산의 신” 정도에 해당하는 “신”의 이름이다. 심지어 “암몬인들”이 섬겼던 “몰록”(Moloch)과 동일시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그런 “잡신”의 이름으로 폄하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네 개의 자음 문자”에 “아도나이의 모음 부호”를 붙여 만든 “인위적인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히브리어 단어들은 모두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테트라그람마톤” 역시 너무나 거룩한 이름이어서 함부로 발음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 원래부터 발음 자체가 불가능한 단어가 아니었으니, 곧 처음부터 “여호와”로 불리고 인용되어 온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인 것이다.


우선 그 이름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났으나 여호와[JEHOVAH]라는 나의 이름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출 6:3). 이 구절을 위시해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 “네 번” 등장하는데, 나머지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름이 홀로 여호와[JEHOVAH]이신 주께서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신 분임을 알게 하소서』(시 83:18).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는 주 여호와[JEHOVAH]는 나의 힘이시요, 내 노래시며, 그가 또한 나의 구원이 되심이라』(사 12:2). 『너희는 주를 영원히 의뢰하라. 이는 주 여호와[JEHOVAH] 안에 영원한 힘이 있음이라』(사 26: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성경의 “주 하나님,” 곧 “여호와”의 이름을 실제로 “여호와”라 불렀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시니, 그가 그곳에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께 제단을 쌓았더라. 그가 거기서부터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그의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주[ , JEHOVAH]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 , JEHOVAH]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2:7,8). 말하자면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주 하나님”을 실제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한편 “여호와”(Jehovah)와 결합된 형태의 “이름들”이 성경에 나오는데,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 “여호와이레”이다. 이 이름의 뜻은 “공급하시는 주”이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Jehovah-jireh]라 불렀더니, 오늘까지도 말하여지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하더라』(창 22:14). 두 번째로는 “여호와닛시”로서 그 의미는 “주는 우리의 깃발”이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것의 이름을 여호와닛시[Jehovah-nissi]라 부르고 말하기를 “이는 주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고 주께서 맹세하셨기 때문이라.” 하더라』(출 17:15,16). 다음으로 “여호와샬롬”이 나오는데, 그 뜻은 “우리의 평화이신 주”이다. 『그때 기드온이 거기서 주께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샬롬[Jehovah-shalom]이라 하였더니, 그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비에셀인에게 속한 오프라에 있더라』(판 6:24). 이상 “결합된 형태의 이름 세 가지”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네 구절”을 합하면,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모두 “일곱 번” 나오게 된다. 참고로 숫자 “7”(일곱)은 “완전함, 완결, 계시의 완성”을 의미하며, 특히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라고 말씀하실 때, “맹세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일곱을 행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맹세한다”는 것은 “일곱의 법칙”으로 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표현인 것이다.


그 외에도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호와라파”(Jehovah-rapha, “치료하시는 주,” 출 15:26), “여호와사바오스”(Jehovah-sabaoth, “만군의 주,” 삼상 1:3), “여호와엘욘”(Jehovah-elyon, “우리의 복이신 주,” 시 7:17), “여호와라아”(Jehovah-raah, “우리의 목자이신 주,” 시 23:1), “여호와칫케누”(Jehovah-tsidkenu, “우리의 의이신 주,” 렘 23:6), “여호와샴마”(Jehovah-shammah, “가까이 계시는 주, 현존하시는 주,” 겔 48:35) 등의 이름들도 언급된다. 또한 “여호와”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인명들과 지명들”도 성경에는 다수 등장하는데, 이런 사실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원래부터 그런 발음으로 불려 왔음을 잘 보여 준다. 일례로 “여호수아”(Jehoshuah, 민 13:16), “여호사팟”(Jehoshaphat, 삼하 8:16), “여호야다”(Jehoiada, 삼하 8:18), “여호나답”(Jehonadab, 왕하 10:15), “여호야킴”(Jehoiakim, 왕하 23:34), “여호야킨” (Jehoiachin, 왕하 24:6), “여호사닥”(Jehozadak, 대상 6:14) 등이 있다.




그렇다면 왜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여호와”를 『주[LORD]』로 번역한 것인가? 우선 신약성경에서 “여호와”라는 히브리어 이름을 “주”를 의미하는 헬라어 “퀴리오스”(κύριος)로 번역했기 때문이다(마 1:20,22; 2:15; 3:3; 4:7; 11:25; 21:9,42, 막 12:29,30,36, 눅 1:68; 2:9 등). 다시 말해 히브리어 “여호와”는 굳이 음역을 하지 않아도 “주”라는 이름으로 번역이 가능한 것이다.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라고 읽으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성경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 이는 주[Lord]께서 하신 일이라.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마 21:42) 여기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약의 본문은 시편 118:22,23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주[LORD]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라운 것이로다.』 즉 『주[ ]』를 『주[κύριος]』로 읽으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그 “신격”(Godhead)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나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노라.”고 하시더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를 더욱 죽이려고 하니, 이는 그가 안식일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본 것은 할 수 있나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친히 하신 모든 것들을 그에게 보여 주심이며, 또 그분께서는 이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보여 주시리니 이는 너희로 놀라게 하려 하심이라』(요 5:17-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니라』(요 8:5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나의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하시니』(요 10:28-30).




만일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인 『여호와[JEHOVAH, ]』를 바르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처럼 『주[LORD]』로 번역하지 않고 “음역”으로만 일관하다가 “갑자기” 신약성경에서 “중단한다면,” 그래서 『주[Lord]』라는 이름이 “갑작스럽게” 등장한다면, 과연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동등한 신격이 온전히 설명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변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이원화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꼴이 되었다. 『주』 대신 “여호와”로 음역하면 구약의 “여호와”가 신약에는 사라지게 되어 “성경의 통일성”이 파괴된다. “킹제임스성경”은 히브리어를 올바로 번역하여 향상시킨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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