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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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미신적”인가, “종교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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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8월호>

성경은 “철학”에 대해 경고하기를,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 2:8)라고 말씀한다. “철학의 근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주요 사상”은 “자연주의”(Naturalism), “이상주의”(Idealism, 관념론), “현실주의”(Realism, 실재론), “실용주의”(Pragmatism)인데, 이 “사상들”은 진리의 성경, 곧 하나님의 위대한 “절대적 계시”를 고의로 부정하고 거부한 데서 나온 “지적인 쓰레기들”(Intellectual Garbages)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철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800여 개의 예언들 가운데 어떤 예언도 믿지 않는다. 특히 소위 유명하다는 “주요 철학자들의 명단” 그 어디에도 거듭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의 하늘나라”와 “실제적인 지옥”을 부인한다. “동정녀 탄생,” “갈보리 십자가의 피의 속죄,” “몸의 부활,” “성령 하나님을 통한 거듭남,” “교회의 휴거,” “문자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스라엘의 회복,” “천년왕국,” “새 예루살렘” 등을 믿지 않는다.

기원전 900년 이래로 이 땅에 살았던 “철학자들” 중에 “지혜”를 내놓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인류 최초의 철학자”요,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그리스 출신의 “탈레스”(B.C. 624-546)가 태어나기 350여 년 전에,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혜를 소유했던 한 사람, 곧 “솔로몬 왕”이 기록한 “잠언”과 “전도서”가 이미 그 모든 지혜의 초석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탈레스”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살았던 “솔론”(B.C. 635-559) 이후로, “아낙시메네스”(B.C. 585-524), “피타고라스”(B.C. 582-497), “크세노파네스”(B.C. 570-470), “헤라클레이토스”(B.C. 535-475), “애쉴러스”(B.C. 525-456), “파르메니데스”(B.C. 510-440), “아낙사고라스”(B.C. 500-428), “페리클레스”(B.C. 495-429), “고르기아스”(B.C. 483-375), 인류 역사상 가장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소크라테스”(B.C. 469-399), “데모크리토스”(B.C. 460-380), “원자론자”였던 “류시퍼스”(B.C. 460),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하나인 “안티스테네스”(B.C. 445-365), “이소크라테스”(B.C. 436-338),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가르쳤던 철학자 “아리스티퍼스”(B.C. 435-356), “철인 정치”를 주장했던 “플라톤”(B.C. 427-347), “디오게네스”(B.C. 412-323), “데모스테네스”(B.C. 384-322),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에피쿠로스”(B.C. 341-270), “제노”(B.C. 340-265), “유클리드”(B.C. 335-275), “아르케실라우스”(A.D. 315-240), 듀이, 러셀, 제임스, 아인슈타인처럼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가르쳤던 “카네아데스”(B.C. 314-209), “스토아 철학”에 속한 “클레안테스”(B.C. 310-232)와 “크리시퍼스”(B.C. 280-207), “히파르코스”(B.C. 190-120), “루크레티우스”(B.C. 95-20), “캐로니아의 플루타크”(A.D. 50-120), “필로”(B.C. 20 - A.D. 50) 등의 철학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모두 지극히 “자아중심적”이고 마귀에게 “기만당한” 사람들로, 솔로몬이 “잠언”과 “전도서”에 기록해 놓은 “지혜” 그 이상으로 밝혀 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철학자들은 “솔로몬”을, “참된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고 발견한 “최초의 진정한 철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철학”(philosophy)은 “사랑한다”는 뜻의 “필레오”(phileo)와 “지혜”라는 의미“소피아”(sophia)가 합성된 단어인데, 말하자면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지혜가 『세상의 지혜』(고전 1:20)로서, 『땅에 속한 것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약 3:15) 지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모든 철학자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지혜 및 사상들”과 더불어, 진정한 철학자인 “솔로몬 왕”의 “잠언 8:22-31”에 의해 완전히 분쇄되고 만다. 『주께서 태초에 일하실 때에, 옛적에 그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나[지혜]를 소유하셨느니라.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 깊은 곳들이 없었을 때 내가 나왔으니, 물이 솟는 샘들이 없었을 때라. 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작은 산들이 있기 전에 내가 나왔으니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 그가 하늘들을 마련하실 때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가 깊은 곳의 표면 위에 범위를 정하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 그가 위로 구름들을 세우시고 깊음의 샘들을 힘있게 하셨을 때, 바다에게 그의 법령을 내려 물들로 그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게 하시며 또 그가 땅의 기초들을 정하셨을 때, 그때 내가 그와 함께 양육된 자로서 그분 곁에 있어 날마다 그분의 기쁨이 되었으며, 그분 앞에서 항상 즐거워하였고, 그의 땅의 거처할 만한 곳에서 즐거워하였으며, 나의 기쁨이 사람들의 아들들과 더불어 있었느니라.』 철학자들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면서 시시껄렁하게 내놓은 소위 “지혜”라는 것들은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세움을』(잠 8:23) 받은 “하나님의 지혜” 앞에 모두 입을 다물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론, 20,21세기 현대 철학자들 역시 모두 다 “진화론자들”로서, “물질의 영원성”을 믿었고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신론자들” 아니면, “다신론자들”이거나 “범신론자들” 또는 “무신론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믿고 실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어리석고 미신적인 철학자들”을 철저히 무시해도 좋다. 성경은 이미 이런 “철학자들”에 대해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골 2:8)라고 “성경적 입장”을 분명히 해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고전 1:20) 만드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지혜”는, “악한 현 세상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들”을 거부하는 데 써 먹고자 적당히 둘러대기 위해 만든 매우 그럴듯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해, 최초의 인류가 타락했을 때 보였던 바로 그 반응, 곧 “자기들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늘어놓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앞서 언급한 “철학자들”이 정말로 현명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다음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기원전 7세기의 철학자 “탈레스”에서부터 20세기의 현대 철학자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자들이 탐구하고 추구했던 모든 지혜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둘째, 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만일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이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러면 현명한 자가 되리라』(고전 3:18). 셋째, 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혼을 이겨오는 일,” 곧 “구령하는 일”에 바빠야 한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 그러나 성경을 거부하는 철학자들은 이 “세 가지 일”에 관심조차 없는 “가장 어리석은 바보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미신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바울이 마르스 언덕 한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니 너희는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니라』(행 17:22). 철학자들은 매우 “미신적인(superstitious) 사람들”이다. 하지만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하나같이 “종교심이나 종교성이 많은 사람들”로 추켜세운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개역개정판). 여기 밑줄 친 부분을 “개역한글판성경”은 「종교성이 많도다」로, “표준새번역”은 「종교심이 많습니다.」로, “쉬운성경”은 「종교심이 강한」으로 변개시켰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종교적인 사람들” 축에도 들지 못하는 “미신적인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철학자들은 “사람이 동물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할 만큼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간단하고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복잡하고 완전한 것’으로 변하려고 애쓴다.”라고 말했다. “아낙시만드로스” 역시 모든 만물이 우연히 생성되었다고 맹신하는 “미신적인 진화론자”로, “진흙에서 생명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아닌 ‘태양열’이라” 믿었고, “남자와 여자는 본래 ‘물고기’ 같은 피조물에서 파생되었는데, ‘어린아이’는 스스로를 돌볼 수 없기에 ‘어른 상태’로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인류의 기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 동물은 본래 바다에서 살았으니, 곧 습기에서 태어난 것이다. 또한 가시 돋친 외피로 둘러싸여 물고기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땅 위로 올라오면서 태양의 온기로 인해 습한 요소가 증발했고, 그런 가운데 외피가 벗겨지면서 성년이 된 사람들, 곧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그로부터 나왔다.” 이렇듯 “진화론”은 “고대 이교도 철학”에서 비롯된 허무맹랑한 이론이다.

둘째, 철학자들은 “철학”으로 국가를 경영하면 완벽한 평화의 “황금시대”를 도래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특히 그랬는데, 그는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인생 지도자의 지침”이요, “진정한 학문”이자, “인간 형성의 힘”인 “철학”으로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학”을 통해서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결코 이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가 오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철학자들은 “불가지론자들”로 『알지 못하는 신[THE UNKNOWN GOD]』(행 17:23)을 섬기기 때문이다. “불가지론”이란,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그들의 “무지” 속에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정한 숭배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 그래서 이런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이 모여 사는 곳은 “우상 숭배”가 극심할 수밖에 없는데, “아테네” 성읍 전체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후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 성읍이 전부 우상에게 바쳐진 것을 보고 그의 영이 그 안에서 몹시 괴로워하더라』(행 17:16).

자, 이런 “미신적인” 철학자들의 최후를 보라! “소크라테스”는 감옥 문을 빠져나가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고, 또 그를 정죄했던 “시의회”도 그가 도망가길 바랐지만, 결국 그는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한에 못 이겨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으며, “데모크리토스”는 늙고 쇠약한 몸으로 살고 싶지 않아 자살했다. 엘레아의 “제논,”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삶을 멸시하며 “철학적인 자살”을 선택했다. 평생을 “지혜”만 추구하며 산 자들의 말로가 결국 “자살”이라니! “소크라테스”가 일생 동안 깨달은 지혜는 고작 이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참으로 대단한 깨달음이지 않은가! 쯧쯧, 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미신적인 자들이여!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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