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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갱신을 꿈꾸는 옥한흠 목사의 가치관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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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5월호>

교회 갱신을 꿈꾸는 옥한흠 목사의 가치관 혼란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교갱협)”의 대표회장이자 사랑의교회 원로 목사인 옥한흠 목사는 교갱협 창립 9주년을 맞아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을 평가하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가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으로 방향이 전환됐고, 그 흐름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옥한흠 목사의 지론이다.
과연 어떻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일까?

1. “교회 예배는 일주일에 한 번 참가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사회와 문화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문화를 몰라도 목회 활동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이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과 시대사조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이번에 한국 교회를 평가한 옥한흠 목사의 말 중의 일부이다. 옥한흠 목사가 상황은 바로 보았다. 그의 말대로 20년 전만 해도 수많은 교인들이 세상 문화의 흐름 속에 푹 빠져 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한 교인들은 전부 세상 문화의 흐름 속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소위 일주일에 한 번만 “하나님 앞에서” 살고 나머지 시간들은 모두 세상 문화의 흐름 속에 잠겨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것인가? 질적으로 향상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인가? 그런 상태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평가하다니 옥한흠 목사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은 괴이하기 그지없다.
교인들의 이 같은 세태를 바라본 옥한흠 목사는, 세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목회활동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과연 어떤 곳에 정신이 팔려 지내게 되어 버렸는지 그 정확한 상황을 잘 알아야 그들의 상태를 제대로 분별하고, 그들의 영적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말씀들을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옥한흠 목사는 그가 늘어놓은 말로 미루어보아, 이런 면에서 한 말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목사가 세상 문화 속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계속 다룰 것이다. 우선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옥한흠 목사의 또 다른 평가를 들어보자.

2. “신도들이 목회자나 교단의 벽에 갇혀 있지 않고 (교회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어떻게 하다 보니 어떤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해서, 그 교회가 성경적으로 실행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또 확인할 줄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그 교회의 목회자의 말대로 모든 것을 복종하는 것은 분명히 우매한 일이다.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어떤 교단에 속한 교회에 들어가게 되어 오랫동안 그 교단의 교리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 교리가 성경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확인하지도 않고 또 확인할 줄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그 교단의 교리대로 외우고 주장하며 전하고 가르치는 것 역시 분명히 우매한 일이다.
“신도들이 목회자나 교단의 벽에 갇혀 있지 않고 교회를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말이 오직 이런 우매한 일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얼마나 되는가?
실제로 많은 경우에 신도들이 교단의 벽에 갇혀 있지 않고 이 교단, 저 교단으로 자유롭게 교회를 옮기는 이유는 그들에게 성경적 분별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많은 경우에 교인들이 자유롭게 교회를 옮기는 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교리에 대해서 아무런 신중함도 없고, 교리적인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태한 영적 상태 때문이다. 그들 상당수는 거짓 교리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없고 다원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교리”에 대해서 경계하라고 경고하셨고(마 16:12), 또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지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폐기시키는 사악한 짓이라고 경고하셨고(마 15:6-9), 어떤 “교리”를 지키는 자들을 증오하신다고 말씀하셨다(계 2:14-15). 성경은 사람이 구원받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것도 “교리”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며(롬 6:17,18, 요이 9), 사도 바울이 가르친 성경의 “교리”에 역행하고, 다르게 가르치는 자들은 몹쓸 자들이니 그들과 함께 있지 말고 떠나라고 하셨다(롬 16:17,18, 딤전 6:3-5). 그런 다른 “교리”를 가지고 오는 자는 받아들이지도, 인사하지도 말아야 할 악한 자라고 하셨다(요이 10,11). 온갖 “교리”들이 그리스도인을 속이려고 기다리고 있다고도 경고하셨고(엡 4:14),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성경적 “교리”를 지루해 하며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를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셨다(딤후 4:3, 딤전 4:1). 또 자기의 생각이 성경적 “교리”로부터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고(딤전 4:16, 딛 2:7) 이상한 “교리”에 끌리지 말라고 하셨고(히 13:9), “교리”에 전념하라고도 하셨다(딤전 4:13).
교리에 관해 해이해진 상태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이기만 하면 그냥 안심하고서 자유롭게 교회를 옮기는 것은 하나님의 증오를 사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옥한흠 목사의 다른 말들로도 미루어볼 때,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 향상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옥한흠 목사가 별 증거도 없이 한국 교회를 칭찬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준 다음,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가 주장하는 대로 따르게 하려는 것뿐이다. 물건 파는 장사꾼들이 흔히 써먹는 방법이다.

옥한흠 목사가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개신 교회가 개인주의화에 따른 인간성 황폐화, 도덕성 추락, 가치관 혼란,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는 불건전한 문화 등에 책임감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이젠 목회자들도 신도들이 분식회계나 외국산 농수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행위, 나쁜 인터넷 문화 등 사회 문제에 대해 (신앙인의 모습으로)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해야 변화하는 시대에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한국 교회의 미래는 암울한 것인가? 존경받는 원로목사가 한국 교회가 “살아남기 위한” 방향이라고 내놓은 것 치고는 너무도 좀스럽지 않은가?
현재는 그리스도인이란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터에서 인간성 황폐화, 도덕성 추락, 양심과 가치관의 혼란, 불건전한 인터넷 문화, 분식회계(기업의 회계조작 사기행위), 외국산을 국산으로 속이는 사기행위 문제에 부딪쳤을 때 ‘아니오.’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동조하며 살아왔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평가하다니, 그렇다면 옥한흠 목사 자신 또한 무언가 “가치관의 혼란”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개신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 혼란뿐 아니라 이런 목사들의 가치관 혼란에도 잘 대처해야 할 것이다!

옥한흠 목사가 “한국 교회가 살 길”이라고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교회는 세상의 잘못된 문화에 책임감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2. 교회는 사회의 잘못된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반대해야 한다.
옥한흠 목사는 조심스럽게도 꽤 어중간한 표현들을 썼는데, 여기서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제 또 본분을 잃어버리고 세상 제도 개혁에 나서는 정치 목사가 탄생할 판이다. 원로 목사의 이 말을 듣고 그 이후 세대에서 수두룩한 정치 목사들이 탄생하지 않도록 여기서 좀 제동을 걸어주어야 할 것 같다.

잘못된 세상 문화가 되었건, 잘못된 사회 문제가 되었건, 개인의 잘못된 언행이 되었건, 교회들의 잘못된 실행이 되었건 간에 성경에 어긋난 죄악이 행해지는 장면을 목도하면 그 죄악을 거부하고 반대하며 질타하는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미워한다. 그렇기에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관련된 각 분야에서 그처럼 세상의 타락을 좀 더디게 만들고 건전한 것을 좀더 오래 지속되게 한다.
그러나 이와는 신중하게 구분해서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죄악이 급히 팽배하는 것을 막아내더라도 그 일을 “세상 제도 개혁에 헌신함으로써” 이루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은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의 본분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정부에서 할 일이며, 자기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없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인들 개개인의 양심을 찌르고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전달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죄짓기를 두려워하게 만듦으로써 그 일을 하며, 또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주고 말씀을 가르쳐 주어 그들도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성장하게 함으로써 그 일을 한다.
자기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빌 3:20)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순례자다(벧전 1:17; 2:11). 제정신인 나그네와 순례자는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곳을 수리하느라고 깊숙이 개입하며 힘을 소진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가 살 길”은 목사가 사회 문제를 놓고 궁리하며 교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가 살 길”은 목사가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서” 하나님의 심판과 그분의 두려우심, 그리고 구원의 복음을 제대로 전할 줄 아는 성도들을 많이 양성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골 3:1,2).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느니라...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빌 3:18,19).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 내라. 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하리라』(딤후 2:3-5).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딤후 4:2-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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