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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선교 위기, 당연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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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0월호>

한국 교회의 선교가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여 년 만에 세계 175개국에 16,616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쾌거(?)를 이루었다지만(KWMA, 한국세계선교협의회 통계) 동시에 수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다고들 한다. 이번 분당 샘물교회 사태가 그 모든 문제들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로서, 터질 것이 터졌다는 여론이다.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타문화권에 대한 무분별하고 공격적인 선교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로 인해 기독교의 선교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극도로 나빠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믿지 않는 세상은 원래부터 복음을 반대해 왔으며, 교회가 어떤 좋은 일을 해도 욕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독교가 배타적이며 타종교에 대해 관용이 없고, 무조건 개종시키려고만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져야 할 십자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행 4:12) 우리는 어떠한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독교 여러 단체들에서 선교에 대해 반성하고 재점검하고 있는 것인데, 그 반성이라는 것이 고작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덜 받기 위해 안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KNCC 같은 자유주의 교회들은 “공격적 선교”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말하는 “공격적 선교”란 이교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예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하기야 그들이 언제 복음을 전했던가?
반면 보수주의 교회들은 “그래도 선교는 계속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선교 방식에는 변화를 주겠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선교 방식의 변화란 더 이상 직접적인 개종만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를 겸해서 이교도들이 기독교에 호의를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복음과 사회 운동을 혼동하고 있는 개념으로서, 이미 한국 교계에 만연되어 있는 사고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도 복음과 봉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교회로 인해 야기된 것이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선교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봉사라 한다. 봉사하러 가서 죽은 사람을 선교사라 하고, 그래서 선교도 하지 않고 돌아온 사람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선교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 진정한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 교회가 복음을 너무 열심히 전하다 보니까 부작용이 좀 있는 것인가? 세상에게 복음으로 인해 비난받을 만큼 순교자의 자세로 선교를 행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 한국 교회의 선교는 위기다. 한두 가지 개선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수많은 문제가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발생한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 교회가 언제 제대로 선교를 했었는가?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파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 나라 교계 자체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 잘못 들어온 한국 선교
우리 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자. 미국과 유럽에서 몇몇 선교사들이 와서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아마도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계 2:10).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선교사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바로 한국 선교의 핵심을 이룬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언더우드는 미장로교 선교사로서 우리 나라에 연세대학교를 세운 인물이고, 아펜젤러는 미감리교 선교사로서 배재학당을 세운 인물이다. 이들에 대한 업적은 복음에 대해 어떤 일을 했는지보다는 한국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실제로 그들은 한국 교육에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그러한 공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대한 것이지, 선교 사역 혹은 복음 전파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복음은 사회복음이었다. 학교를 짓고 문명을 개화시키고, 병원을 지어 질병에서 해방시키고, 특히 일제강점기 때에는 민족 운동에도 다소 도움을 주어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 운동에 앞장서게도 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국가 사회적으로는 “좋은” 일이나 성경적 의미의 선교는 될 수 없다. 선교는 오직 죄인을 구령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오는 거룩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서 의료 행위도 하고 글을 가르쳐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일 뿐,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단지 사회적 봉사로만 끝난다면 그것이 어찌 선교라 할 수 있겠는가?
선교사(missionary)란 말은 라틴어 “MISSIO”에서 왔다. 이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말인데, 이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ς)라는 말로서, “사도”라는 뜻이다. 물론 오늘날의 선교사들이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임무와 위치에서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도들에게 주어진 그 거룩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지, 사회 봉사를 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초기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했다고 말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 나라 초기 선교가 사회 복음이 아니라 순수한 복음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증거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1907년 평양 대부흥”이다. 1900년대 초에 있었던 평양 대부흥, 원산 대부흥을 예로 들면서 한국 선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자랑하지만, 당시의 부흥은 말 그대로 사람만 많이 모인 양적 부흥이었을 뿐이다. 대부분 한국 전통의 무속 혹은 기복 신앙에다가 신유의 이적을 가미한 은사주의적 부흥이었기 때문에 교회사에 큰 가치를 둘 수 없는 사건이다.
또한 당시의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한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배일기독교(일제를 배격하는 기독교)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일본은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기독교인들을 많이 탄압했었다. 1911년에 있었던 “105인 사건”은 그 단적인 예를 보여 준다. 당시 일본은 평안도 중심의 항일 운동을 탄압하려고 데라우치라는 총독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하여 105인을 잡아 재판했는데, 그 안에는 민족 지도자들과 더불어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는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본부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교회와 민족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했다. 종국에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신사에 머리를 숙이고 말았지만, 끝까지 항거한 일부 교회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당시 교회는 우상 숭배라는 이유로 신사참배를 반대했고, 민족주의자들은 일본 신에게 고개숙이는 것을 반대했다. 내용이 같다보니까 이 둘은 하나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교회는 민족주의 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항일 운동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거듭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만 교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사회 참여의 성격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진정한 복음으로 부흥한 것이 아니었다.
WCC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WCC는 1948년에 공식 발족했지만, 이미 1920년대에 “교회 연맹”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 선교를 담당했던 미장로교와 미감리교는 WCC를 통해 활동했는데,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한국은 서서히 기독교화가 되었다. 하지만 WCC는 사회정의구현을 선교로 여기는 단체다. 그래서 제3세계의 인권 문제, 노동 문제, 환경 문제에 개입하고, 교회들에서 헌금을 걷어 그러한 운동들에 지원한다. 우리 나라도 바로 그러한 돈으로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교리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초기 선교부터 은사주의적 경향을 띠었던 한국 교계는 해방 후 미국 은사주의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그 신비주의적 이단 교리를 쉽게 흡수할 수 있었고, 순복음교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 거짓 교리를 퍼뜨리게 되었다. 또한 평안도에서 성공(?)한 장로교 덕분에 극단적 칼빈주의가 이 나라 주요 교리가 되어 버렸고, 세례, 더욱이 유아세례라는 비성경적인 교회 의식이 만연됨으로 인해, 이후 침례교회가 들어왔을 때 기존 한국 교회들은 침례교도들을 이단시하기도 했었다.
변개된 성경이 번역된 것 역시 한국 선교의 치명적인 오류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바른 성경이 번역되어 사용된 후 현대에 이르러 변개된 성서들로 바뀌게 된 반면,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부터 변개된 성경이 번역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말 최초의 신약성경인 <로스역성경>(1887)이 발행될 때, 영국 성서공회는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변개된 헬라어 성경을 보내어 이 성경대로 번역하라 지시했었다. 따라서 우리 나라는 변개된 성서와 더불어 선교가 시작된 나라다. 그러니 이 나라 기독교가 어찌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2. 선교와 교세 확장을 동일시
처음부터 잘못 진행된 한국 선교는 국내 교회들의 양적 성장으로 더욱 겉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60-70년대에 소위 “부흥회”들은 완전히 은사주의 집회장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해서 양적 부흥을 이뤄 온 한국 교계는 이제 교단들의 난립으로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되었다. 장로교만 해도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로, 또 예수교장로회에서 통합측과 합동측으로, 또 거기에서 정통과 보수와 개혁과 진리... 이루말 할 수 없는 많은 이름을 붙여 가면서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분열된 교단은 서로의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해외 선교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국내에 선교 보고를 해야 했고,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교회로 이끌어와야만 했다. 이것은 곧 현지에서의 교단들의 다툼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자기 교회로 이끌어오기도 했다. 서로가 이단이라고 싸우는 경우 또한 많았다.
이러한 일들은 한국 선교사들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러한 일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일조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단끼리의 다툼이 문제되다 보니, 서로 모여서 합의 내지는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서로 교리가 다른 교회들이 연합하는 웃지 못할 일들을 만들어냈고, “선교사”라 하면 그가 무엇을 전하든지 무조건 인정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례받아야 구원받는다는 교리(baptismal regeneration)를 전파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아 세례를 전파하며, 어떤 사람들은 행위 구원과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어떤 사람들은 방언과 신유를,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 칼빈주의를 전파한다. 그래도 그들 모두는 “선교사”라고 취급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해 주고, 어떤 사람들은 고아들을 찾아다니며 죽 쒀주고,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서 글을 가르쳐 준다. 심지어는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요가를 가르쳐 주면서도 선교사라 불리는 것이 한국 선교사들의 실태이다. 사랑과 봉사의 행위를 하는 것을 선교라 하고, 문화를 전파하는 것을 선교라 한다.
3. 단기 선교의 폐해
이러한 잘못된 선교는 소위 “단기 선교”가 붐을 일으키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단기 선교란 짧게는 2-3주, 길게는 2-3달 정도를 선교지에 가서 체험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선교 현장을 보면 1년에 한 명도 구령하지 못하는 장기 선교사들이 허다하다. 이는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더욱이 타종교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1달 정도 머무르는 단기 선교사들이 해외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들의 선교는 대부분 이미 기독교가 전파된 지역, 즉 “쉬운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아니면 봉사 활동만 하거나, 단지 해외 체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도 대학 때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온 바 있다.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고 싶었던 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참여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오직 선교를 빙자한 낭만적인 대학생 해외 캠프였을 뿐이다. 단기 선교를 떠나기 전 한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었다. “그 기간 동안 무슨 선교를 하나? 선교를 당하고 오는 거지.” 당시엔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필자가 갔던 필리핀은 90% 이상이 카톨릭을 믿는 국가였다. “사영리”라는 전도용 소책자로 복음을 전하면 대부분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영접하자고 하면 대부분이 영접 기도를 따라한다. 하지만 그들 카톨릭 교인들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다. 매주일 미사 때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까짓거 한 번 더 영접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냐는 식으로 영접한 것이었다. 그들도 예수님을 알고 십자가를 알기에, 예수님 믿으라고 말하면 당연히 “Yes”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선교겠는가? 그들에게 진정 선교를 하려면 카톨릭이 거짓 교회라는 것을 알려 주고, 진정 구원받으려면 마리아에게서 벗어 나와 오직 예수님만을 섬기라고 해야 한다. 그들이 행하는 마귀들의 교리들을 지적해 주고 그곳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 카톨릭권에서는 카톨릭과 교리적으로 싸울 수 있는 역량을, 인도에서는 힌두의 신들과, 일본에서는 일본의 신들과 싸울 수 있는 역량을, 이슬람권에서는 코란이 얼마나 잘못된 책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역량을,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와 용의 문화와 뿌리 깊은 도교적 정신 세계와 싸울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그게 선교사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훈련받지 않은 “단기 선교사”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 선교에 참여했던 수백 명의 대학생들은 카톨릭이 뭐가 잘못된 종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오직 “사영리”만을 전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문화행사를 겸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찬양과 율동, 특히 당시 유행하던 경배와 찬양류의 노래와 “워십 댄스” 등이었다. 당시 참여한 어떤 팀은 심지어 마술쇼를 보여 주면서 사람들을 모았다. 모아서 영접 기도만 시키면 된다. 단언컨대 당시 필자를 포함한 수백 명의 대학생 “단기 선교사들”에게 전도받은 카톨릭 교도들은 전혀 구원받지도 개종되지도 않았다.
훈련받지 않은 단기 선교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선교에 동참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사실은 그들의 활동을 낭만적인 봉사 활동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진정한 선교사들이 겪는 고난과 위협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이들에 의해서 선교는 하나의 오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 교계의 잘못된 선교 열풍 때문이다. 경쟁적인 선교열 때문에 교회들이나 선교단체들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선교사의 숫자를 채우기 위해 단기 선교를 보낸다. 또한 회중들에게는 쉽게 헌신할 수 있는 거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목사들은 회중들에게 선교사가 되라고 설교하고 싶지만, 그게 어디 아무나 헌신할 수 있는 일인가? 그래서 단기 선교라는 명목으로 헌신케 한다.
필자가 속해 있던 C.C.C.에서도 여름수련회만 되면 김준곤 목사가 학생들에게 선교사가 되라고 설교했었다. 설교가 끝나면 초청시간을 통해 “선교사 될 사람은 모두 일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 일부 학생들이 일어선다. 아직 일어서지 않은 학생들을 향해 김목사는 “빨리 일어서라”고 강요하며, 심지어 옆사람에게 머리채라도 잡고 끄집어 일으키라고 말한다. 물론 다소 농담이 섞인 말이겠지만, 이렇게 서원한 사람들이 어찌 선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김목사는 단기 선교사로라도 헌신하라고 말한다. 영어를 못해도 좋고, 복음을 전하지 못해도 좋으니까, 선교사들 심부름만 해 줘도 좋으니까 무조건 나갔다만 오라고 한다.
성경에도 이 같은 “단기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자기 고향 쿠프로 섬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 전하러 간다니까 좋다고 따라나섰다. 그의 이름은 마가 요한이다(행 13:5). 그는 파포에서 바울이 요술사의 눈을 멀게 하고 총독에게 복음을 전할 때 신나게 구경했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가 피시디아와 루카오니아로 간다고 했을 때 겁을 먹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루카오니아 사람들은 포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그래도 어찌보면 마가 요한은 샘물교회 봉사단원들보다는 낫다. 만약 그가 믿음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루카오니아에 따라가서 루스트라에서 바울이 돌에 맞을 때, 샘물교회 회원들처럼 살려 달라고 애원했더라면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우습게 되었을 뻔했는가? 또한 마가 요한은 후에 회개하고 바울의 귀한 동역자가 되었다(딤후 4:11).]
4. 진정한 선교사의 모델, 사도 바울
선교사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사도 바울을 동경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모델을 따라 선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바울의 선교 사역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선교사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 바울은 복음의 열정이 있었다.
오늘날 선교사들이 이러한 열정이 있는가? 물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만 있지, “복음” 자체에 대한 열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혼을 구령하지는 않고 사랑과 봉사로 그들을 도와줄 생각만 하는 것이다.
(2) 바울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함이 있었다.
“담대함” 하면 또 한국 선교사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아프간 같은 위험 지역에 수차례의 경고도 무시하고 갔던 그 무모할 정도의 담대함! 하지만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우리는 지난 2004년에 있었던 김선일 씨 피살 장면을 기억한다. 오늘날 교계에서는 그를 김선일 선교사라고 하는데, 그가 죽기 전에 부르짖었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는 “살고 싶다. 살려 달라.”고 목이 메어 외쳤었다. 한 인간의 처절한 부르짖음에는 마음이 아프지만, 적어도 선교사로서의 연민은 느낄 수 없다.
(3) 바울은 무엇을 전할지 알았다. 즉 교리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다.
반면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무엇을 전할지 모른다. 흔히 선교사를 파송할 때면 마태복음 10장이나 24:14을 설교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왕국 복음”이다. 왕국 복음, 혹은 천국 복음은 예수님께서 지상 왕국(천년왕국)의 왕으로 오신다는 복음인데, 이 복음은 유대인에게 전파되는 복음이고, 또 환란 시대에 전파되는 복음이다(마 24:21). 그 복음은 표적과 행위의 복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죄를 씻으셨다는 “은혜의 복음”이 아니다. 행위의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갈 1:8,9). 그것은 “다른 복음”이다. 순복음도 다른 복음이고, 문화 선교도 다른 복음이고, 극단적 칼빈주의도 다른 복음이다.
(4) 바울은 현지 언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이 통역을 썼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바울은 “많은 방언들”을 말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고전 14:18). 이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이상한 헛소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지역 방언이다. 바울은 히브리인으로서 히브리어를 말했고, 헬라어를 사용하여 신약성경을 기록했으며, 카이사에게는 라틴어로 상소했다. 스페인으로 갈 준비까지 했으니 고대 스페인어도 했을 것이다. 그는 어느 지역을 가든 그 지역 언어로 설교했다. 따라서 오늘날 현지어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사람들은 선교사가 아니다.
(5) 바울은 안티옥 교회에서 파송받아 교회들을 세웠다.
신약성경에서 선교는 철저히 지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역 교회가 지역 교회를 낳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단체는 정식 선교 기구가 아니다. 선교 단체는 원래 지역 교회들이 복음 전파를 소홀히 하니까 복음이라도 제대로 전하자고 뜻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하지만 선교단체가 지역 교회의 위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또한 선교단체는 그 특성상 에큐메니칼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교파와 관계없이 어떤 교회로부터도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단체는 교리적으로 매우 빈약하다. 이런 곳에서 선교사를 파견한다면 도대체 어떤 교리를 전할 수 있겠는가? 선교사는 반드시 지역 교회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학교나 병원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유일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전하는 방법은 지혜롭게 또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외에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배울 것들은 많지만, 이 정도만 해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잘못된 선교를 지적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던 그 초기부터 많은 것들이 잘못되었고, 그 잘못된 출발을 한 이 나라 교회들은 비성경적인 교리와 육신적인 면들로 인해 더욱 이상한 길로 나아갔으며, 그러한 교회들이 행하는 선교 역시 매우 비성경적인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어느 오지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하는 순수한 선교사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한국 교회들의 이러한 잘못된 선교 행태들이 그들의 설 자리마저 잃게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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