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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입은 AI, 휴머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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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7월호>
고되거나 귀찮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누가 좀 대신 해 줬으면”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용인, 노예, 하급자 등을 부릴 수 있는 처지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어떤 일을 강제할 때는 도주, 배신, 탈진 등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고, 보안이나 책임상의 이유로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있다. 그래서 인류는 자신의 일을 떠맡아 줄,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늘 바랐다.그와 같은 인류의 오랜 염원은 문학 작품을 통해 표출되곤 했다. 무려 기원전 7,8세기경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도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황금 하녀”를 만들어 주인을 섬기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 뒤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야기꾼들은 점차 그 개연성을 신적인 존재나 마법이 아니라 인간이 이룩한 기술에 의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2차 산업혁명이 완수될 무렵이었던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손에서 기념비적인 희곡
로봇에 대한 허구적 상상력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이전에도 장난감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기계는 존재했지만, 인류에게 유의미한 노동력을 제공한 최초의 “산업용 로봇”은 1961년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에 도입된 로봇 팔 “유니메이트”(Unimate)였다. 유니메이트는 처음에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기는 비교적 단순한 임무를 수행했으나, 시간이 흘러 1969년이 되었을 때는 용접 작업을 맡아 생산 속도를 2배로 끌어올리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 인간에게 유독한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고, 위험하거나 고된 작업을 수행하더라도 지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 로봇의 등장은 자동차를 포함한 제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여러 산업 영역에서 저변을 넓혀 가던 로봇은 1990년대에 이르러 공장 바깥으로 나와 인간의 생활공간으로 진입했다. 인간을 대신해 이동하거나, 물건을 나르거나, 바닥을 청소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서비스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이때 던져진 화두는 “이동성”이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 있는 문, 계단, 복도 등의 요소들은 그 구조가 인간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정해지기 때문에, 로봇에게는 꽤나 성가신 “극복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인식한 로봇공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 곧 “휴머노이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생활 인프라를 다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반대로 로봇을 거기에 맞추자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다른 로봇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대조적으로, 휴머노이드는 오랜 시간 동안 암흑기를 맞았다. 1973년 일본의 와세다대학교에서 최초의 휴머노이드 “와봇-1”을 선보인 이래로 5-10년 정도 간격을 두고 새로운 휴머노이드가 세상에 나오기는 했지만, 매우 느린 발전 속도 탓에 잠깐 관심을 끄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인간의 신체처럼 자연스럽게 걷거나, 방향을 전환하거나, 물건을 쥐는 행동이 생각보다 훨씬 고난도의 기계적 구동을 요구한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하드웨어(몸)가 아닌 소프트웨어(두뇌)에 있었다. 당시에는 상황과 단계에 따른 “답”을 개발자가 모두 직접 입력해 두는 “하드코딩” 방식으로 로봇을 제어했는데, 변수가 완벽히 통제되는 공장 안에서 붙박이로 일하는 로봇이라면 몰라도 무한대에 가까운 변수가 있는 바깥세상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로봇의 소프트웨어를 그런 방식으로 완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물건이 조금만 삐딱하게 놓여 있거나 가구 배치가 약간만 달라져도 휴머노이드가 어김없이 “바보 짓”을 했던 까닭도 바로 이 “하드코딩”의 한계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 휴머노이드의 상용화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2016년 이세돌 9단을 꺾은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를 통해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알려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들은 “답”을 일일이 알려 주던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택했는데,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을 구축한 뒤에 “방대한 데이터”와 “최종적인 목적”만을 던져 준 것이었다. 그러자 기계는 마치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여 데이터 안에서 패턴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학습 시간이 쌓이자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답”을, 심지어 인간 이상으로 훌륭하게 내놓기까지 했다.
이 기술이 로봇공학자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엄청난 것이었다. 기존에는 “책상 위에 있는 컵을 들어 올려라.”라는 명령을 휴머노이드에게 수행하도록 하려면 “컵과 책상의 XYZ 좌표값 변화에 따른 관절 기어의 회전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복잡한 수식을 미리 입력해 두어야 했다. 그러나 “딥러닝”이 나온 이후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컵을 들어 올린다는 목적을 부여한 뒤, 컵을 들어 올리는 행동 데이터를 대량으로 학습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딥러닝”으로 학습한 휴머노이드는 알아서 가장 “인간다운” 팔의 각도나 손의 모양 따위를 찾아내 컵을 들어 올렸다. 이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어떤 행동이라도 로봇에게 학습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두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자 휴머노이드 연구는 급물살을 탔다.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언어를 학습한 AI, 챗GPT가 2022년 출시됨에 따라 흐름은 더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자본 시장이 AI에 열광하고 있는 가운데, AI에게 “몸”을 주어 가상 세계 바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 줄 휴머노이드 기술에 자본과 연구 역량이 집중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아직까지 대부분 “화이트칼라”(지식 노동자) 역할에만 머무르고 있는 AI가, 휴머노이드에 탑재됨으로써 그 수가 “화이트칼라”의 서너 배 되는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와 “핑크칼라”(서비스직 종사자) 역할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유용성과 경제적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기술사를 공부해 보면, 신기술은 근시안적으로 보면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것 같아도 결국 그 반대의 결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가령 방직기가 발명되어 공장에 도입되었을 때 직물공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이로 인해 기계를 때려 부수는 급진적 사회 운동인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방직기의 도입으로 인해 옷감이 흔해지자 디자인, 유통, 세탁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 시장으로부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다.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자동차를 만들고, 수리하고, 자동차 보험을 판매하고, 도로를 깔고, 중고차를 판매하는 등 수많은 영역에서 훨씬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휴머노이드에 대해서만큼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역사적 패턴과는 배치되는 미래를 점친다. 미국의 언론사 폭스 비즈니스는 지난 2023년 로봇 두뇌 설계의 권위자이자 싱귤레리티넷의 CEO인 벤 고어첼이 향후 수년 안에 직업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같은 해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개발하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영국 총리와의 대담 자리에서 “그 시점이 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더 이상 일자리가 필요 없어지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지난 역사와는 다르게 휴머노이드라는 기술이 “일자리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대는 근거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반박하기 어려운 것은 휴머노이드가 “싸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휴머노이드의 제작 비용은 매년 40%씩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산 휴머노이드는 판매가가 현재 차 한 대 값 정도로 떨어졌다. 따라서 앞으로 휴머노이드가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다면, 그 경쟁력은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천만 원의 연봉을 주고 하루에 고작 몇 시간 일하고 집에 갈 인간을 고용하는 것보다, 비슷한 비용으로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휴머노이드를 한 대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테니 말이다.
그러면 휴머노이드로 인해 설령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더라도, 그 일자리는 인간이 아니라 또 다시 “값싼” 휴머노이드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휴머노이드에게는 그 새로운 직무에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투입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간은 새로운 일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야 하지만, 휴머노이드는 “업데이트” 한 번이면 곧장 직무 수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인간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휴머노이드에 의해 “일자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자면 절대적 빈곤이 만연한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전문가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인건비가 0에 수렴함에 따라 물가가 폭락하고, 기업들의 생산성이 폭발함에 따라 엄청난 세수가 확보될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다. 그들은 그렇게 거둬들인 “부”를 적절하게 “재분배”하면, 사람들이 일을 안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여러 경제학자들과 실리콘밸리의 거물들 사이에서는 실제로 이런 미래가 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재분배”가 이뤄져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하지 않아도 풍요를 누리는 삶”이란 실현 가능성이 없다.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것”이라는 저주가 주어졌기 때문이다(창 3:19).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저주로부터 인류를 해방해 주시는 날까지,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란 올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만일 휴머노이드가 양산되어 싼값에 팔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풍요의 시대가 아니라, 빈궁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이 될 것이다. 노동 시장에서 휴머노이드와 경쟁해야 하는 인간에게 남는 선택지란 “불공정 계약”을 감수하고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거나, 아예 자기 자신을 파는 것 정도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날이 언제 올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부디 교회의 휴거 이후이기를 바란다). 다만 확실한 것은 대환란 시대에는 하루 품삯으로 저축은커녕, 당일 저녁상을 마련하는 일조차 버거워지고(계 6:6), 인신매매가 성행할 것이라는 사실이며(계 18:13), 역사는 지금도 그런 미래를 향해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담론을 이끎으로써 휴머노이드 기술이 불러올 재앙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런 무가치한 노력에 동참하지 않는다. 인류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그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실 분께서 약속하신 대로 속히 오시기를, 소망 가운데 기다릴 뿐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