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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술수의 산물인 “니케아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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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6월호>
A.D. 325년의 니케아 공회는, 콘스탄틴 황제가 A.D.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교회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국가교회를 수립하고 기독교에 대한 황제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소집한 공회이며, 역사적으로 개최된 첫 번째 공회이다. 이 공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삼위일체 교리, 니케아 신조, 부활절 날짜, 그리고 교회 규범 20개 항목이었다. 친카톨릭 교회사가들은 이 공회를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된 중요한 공회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 공회에서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 고백을 담은 니케아 신조를 채택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였기 때문이다.니케아 공회의 삼위일체 논쟁에서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된 신”으로서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유사 본질)이긴 하지만 동일한 존재(동일 본질)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아리우스파의 주장에 반대한 아타나시우스파는 아들 하나님은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낳아진 존재”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아리안주의라고도 일컬어지며, 현대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그들의 교리로 삼고 있다.
니케아 신조는 “사도 신경”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마지막 부분에 아리우스파의 파문을 염두에 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성자께서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서 생겨났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또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다른 실체나 본질에서 생겨났다거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창조되었거나 변할 수 있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을 가톨릭 교회는 파문한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번역, <하인리히 덴칭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pp.125,126). 니케아 신조는 이후 보완되어 A.D.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명명된다.
A.D.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의 통치 체제를 굳건히 할 목적으로 기독교의 통제권을 갖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콘스탄틴이 필요로 했던 것은,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종교 지도자들을 황제의 통제하에 두고 그들의 종교적 주장을 받아들여 줌과 동시에, 콘스탄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콘스탄틴은 당시 기독교계에 있었던 문제들 중에서 “삼위일체” 문제와 “부활절 날짜” 문제를 기회로 삼아 황제의 주관하에 공회를 소집한 것이었다. 콘스탄틴은 종교 계급을 자신의 독재하에 통제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콘스탄틴의 진심은 결국 자신이 교회들의 권위가 되려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논제는 “삼위일체”나 “부활절 날짜”가 아니었다. “삼위일체”는 이미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연한 교리였고, 부활절은 성경에서 날짜를 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논제는 “침례”와 “교회의 순수성”과 “재림”이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물침례에 의한 구원”과 “기독교 공인 전의 배교자들”과 “후천년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교회들로부터 “분리”를 실행하고 있었으며, 이미 “노바티안”과 “몬타니스트”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오염된 교리를 실행하는 사람들로부터 “성별”을 실행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니케아 공회는 황제의 정치적 술수에 휘말려 그에게 기독교 통제권을 넘겨 준 기념행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제50차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회장 유창형 박사) 정기학술대회가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보내며”라는 주제로 지난 5월 9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니케아 신조를 통해 본 기독론 해석과 신학적 교훈”을 주제로 안명준 박사(한국성서대 초빙교수, 평택대 명예교수)가 기조 강연을 했는데, 니케아 신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성경적 이해가 잘못되었기에 이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안 교수는 니케아 신조에 대해 “교회사적으로 가장 보편적·규범적 신앙고백으로, 기독론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이단적 신학 사상을 평가하는 초석이자 규범으로 기능해 왔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카톨릭이 정한 “신조”나 “규정”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친카톨릭적 사고에서 나온 평가이다. “신조” 같은 것을 만들어 예배 등의 의식 때마다 암송하며 “헛된 반복”을 계속하는 것은 카톨릭의 전통에 불과하다. 하물며 그가 말한 “기독교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이단적 신학 사상을 평가하는 초석이자 규범”은 “니케아 신조”가 아니라 “성경”이다. 그는 잘못 배워도 한참 잘못 배운 것이다. “신조” 따위를 “성경”이 있어야 할 권위 위에 올려놓는 것은 늘 카톨릭이 해 온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 교수는 니케아 신조가 원래 “예배와 고백을 위한 언어였으나, 아퀴나스에 이르러... 니케아 신앙을 철학적으로 완성했지만, 성경의 구속사 중심성과 은혜의 급진성을 약화시킨 한계를 가진다.”라고 말했는데, 니케아 신조는 결코 “예배와 고백을 위한 언어”가 아니었으며, 역사적으로 콘스탄틴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인위적인 문서였기에, 그와 관련하여 “구속사”라든가 “은혜”와 같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치를 억지로 찾아내어 비판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는 “니케아 신조가 오늘날까지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를 묶어 주는 유일한 ‘신학적 분모’이자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만들어 왔다.”라고 주장했다. “신조” 하나를 과대평가하고 신성시하기까지 하는 표현에 더하여,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카톨릭이 스스로를 칭할 때 사용하는 명칭을 가져다가, 카톨릭과 정교회와 개신교를 묶어 하나의 교회라고 칭한 것은 극단적인 친카톨릭적 성향을 보여 준다 하겠다.
안 교수는 “니케아 신조는 교회 예배 시 ‘사도신경’과 더불어 함께 고백돼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고백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사도신경”에 관한 그의 역사적, 신학적 평가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드러내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과는 무관하게 로마의 히폴리투스(A.D. 170-235)가 세례 시 사용한 신앙고백문에 기초하고 “니케아 신조” 등의 영향을 받아 8세기경 현재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카톨릭에서 주로 “유아 세례”나 “묵주 기도”를 할 때 사용한다. 이교도인 카톨릭의 잘못된 전통이 개신교에도 그대로 전해져서 마치 불교의 염불처럼 암송되고 있는 것인데, 한국 교계에서 소위 “주기도문”과 함께 가장 많이 암송되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다. 이러한 “헛된 반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하신 것이다(마 6:7). 안 교수는 “니케아 신조”나 “사도신경”이 신학적으로 무가치한 카톨릭 전통임을 모른 채 실로 무지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바른 신앙 고백은 “신조”나 “신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 하나하나를 믿는 “믿음” 그 자체가 바른 신앙 고백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