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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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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5월호>
1. 성령의 증거『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거니와』(롬8:16). 사람이 회개하기 이전에 성령께서는 그에게 죄와 의와 다가올 심판을 깨닫게 하시지만, 거듭난 사람 안에서 성령께서는 영적인 평안과 현재 그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음을 확신케 하는 내적 평안을 주신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시어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갈4:6). 성령께서는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계심을 증거하신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우리는 구원의 확신의 근거를 하님의 말씀에 둔다. 이것은 절대무오하고 변할 수 없는 근거이다. 구원을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성경을 보기 때문에 구원을 의심한다.
구원의 근거를 말씀에 두지 않고 경험에 두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성경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개의 성경을 참조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올바른 교리를 고수하지 못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교사들에게 의존하여 진리로부터 돌아서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기에 후회하지 않으시며, 그가 하신 말씀을 반드시 행하시고, 또한 최선으로 행하신다(민23:19).
사람들은 사람들이 한 말은 곧잘 믿으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만일 마귀가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의 구원을 의심하게 하고자 할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하여 마귀에게 이렇게 단호히 말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성경 말씀은 올바른 적용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이며, 이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거듭난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상으로 기록된 말씀(약1:1)이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멸을 불러들인 거짓 교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벧후 2)을 적용해서도 안된다. 환란 가운데 있는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히브리서 6장, 10장)을 적용해서도 안된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적용되야 한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현재시제),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5:24). 바울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믿는 자는 모두 그 분을 통하여 의롭게 되느니라.』(행13:39)고 말했다.
성경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 13:39에 근거하여 천국에 가려고 하기보다는 사도행전 2:38에 근거하여 지옥에 가고자 한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요한복음 5:24이나 에베소서 2장에 근거하여 천국에 가기보다는 산상수훈이나 고린도전서 13장에 근거하여 구원을 의심함으로 지옥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어떤 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가복음 7:48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죄들이 용서되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1:1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3. 사랑의 증거
성경은 구원의 확신의 한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요일3:14). 우리는 거듭나서 구원받고 피로 씻겨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 이는 거듭난 체하는 모든 사람과 관련을 맺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그리스도인인 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형제들이다.
누구나 알듯이 신앙고백은 종종 혼동을 가져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말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마7:22-23).
거듭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애착, 새롭게 좋아지는 것, 새롭게 싫어지는 것, 새롭게 사랑하는 것, 그리고 새롭게 증오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것만이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증오하게 되는 것도 포함된다. 만일 당신이 구원받기 전에 좋아했던 어떤 것을 지금 증오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구원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애매하지 않고 분명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가? 이는 그들이 마귀의 고소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의심하지는 않더라도 잘못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고보서 2장을 적용하여 행위를 구원의 한 부분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야고보서가 누구에게 기록되었는지를 모른다. 그들은 야고보서를 적용하여 구원을 의심케 하는 것이 마귀의 소행임을 알지 못한다.
<리빙 바이블, Living bible>에는 야고보서가 구원받은 유대인들에게 기록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역사적 필사본 증거로서 야고보서가 구원받은 유대인들에게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헬라어 필사본은 단 하나도 없다. 야고보서 1:1에는 야고보서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뿐 아니라 행위에 의해서이다.”라고 말할 때 그들은 이 성경구절이 어디에서 인용되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당신이 이 사실을 모를 때, 계속하여 이런 사람들과 같이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이다.
질문을 한 가지 하겠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는가?
이 질문을 제외한 다른 질문들에 대해서는 용케 회피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라고 질문하였다면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 8장으로 달려가, 마술을 행하던 시몬을 가리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구원받지 못했음을 말할지도 모른다. 만일 캠벨 추종자들(그리스도의 교회)처럼 “믿음과 침례”에 대하여 물었다면 마태복음 26장을 지적하며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를 믿었고, 침례를 받았으며, 사도들의 표적을 행하였으나 지옥에 간 사실을 말할지도 모른다. 유다는 마태복음 27:1-4에서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였고, 마태복음 10:1-4에서 사도로서 예수를 믿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예수의 피가 무죄한 피라고 고백했고, 그리스도의 피가 순전하고 의롭다는 것을 마태복음 27장에서 고백했으며, 그리스도는 요한의 침례에 순종하지 않는 사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믿음, 고백, 회개 등등을 구원과 결부시켜 말할 때, 마귀는 종종 이러한 말들을 구원의 주제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에 관해 묻는 이 질문은 구원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는가? 침례나 성찬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는지를 묻는 것이다. 단순히 온 인류의 “구주”가 아니라 “당신 개인의 구주”를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구주”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신을 구원해 준 그 누군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구원을 의심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구원받기 위해 올바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제단에 엎드려 경험적인 그 어떤 것만을 추구한다. 생애의 시간들을 “성령이여, 성령이여, 성령이여!” 하며 소비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두 가지 질문을 하겠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주님으로 영접하였는가? 당신은 진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주님으로 믿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당신이 분명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이 알건 모르건,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즐거워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당신은 구원받았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어림잡아 추측하거나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추측하는 것이요, 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당신편에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사악한 행동이다. 성경은 요한일서 5:10-13에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나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악한 죄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구원을 의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진실로 구원받았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고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만 한다. 하나의 성경 번역본을 신뢰하다가 또 다른 번역본을 참조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만일 모든 번역본들이 모두 권위가 있고 그 번역본들이 서로 상충한다면 어떤 성경도 신뢰할 수 없게 되어 처음의 상태, 즉 아무 권위도 없는, 그리하여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던 때로 돌아가고 만다.
자유주의 교육은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파괴시킨다. 그리스도인 교육(미션 스쿨 등)도 빈번하게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파괴시킨다. 오늘날 미국의 거의 모든 기독교 대학들은 최종권위가 한 가지 이상이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이 권위들은 30,000군데 이상 서로 불일치한다. 킹 제임스 성경과 새미국표준역본 사이에는 30,000군데의 서로 다른 구절들이 있다. 킹 제임스 성경과 영어 개역본, 미국표준역본 사이에는 36,000군데의 서로 다른 구절들이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는 주범은 그 주체가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드는 교육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영향 때문에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세상적인 영향력 하에 있을 때 하나님과 말씀, 기도에 대한 열심이 사라지고 또다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의심하게 된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할 때 의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영적으로 둔감해져서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잃어버린다. 구원에 대한 확신도 잃어버릴 수 있다.
치료책은 간단하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지 않는 것이다. 두 권위를 두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한 가지 성경을 가지고 그 성경만을 믿는 것이다. 당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 저의 마음을 살피셔서 제가 구원을 소유하였는지 알게 하소서. 만일 제가 진실로 구원받았다면 저의 구원에 관한 알기 쉬운 말씀을 결코 의심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만일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오 주님, 저의 거짓됨을 제거하여 주십시오. 진리를 알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면 보다 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목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추측하는 것이나 자만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이다. 당신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 때 겸손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써만이 구원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 스스로의 행위로 천국에 가기에는 당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원받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구원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의존하기 때문이며, “구원받기를 바란다”라는 말 속에는 구원의 한 부분으로서 자신의 선한 행위를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나를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를 지켜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나를 본향인 천국에 데려갈 분도 하나님이시다. 나를 그 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일을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헹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은 우리에 대해 죽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