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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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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3월호>
에덴에서 아담의 실패는 순수했던 시대를 끝맺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한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기 전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아담의 언약(Adamic Covenant)이 맺어 진다. 이 언약으로 인간 역사는 두 번째 경륜(Dispen- sation)으로 접어들게 되며, 이때부터 노아의 시대까지는 동일한 방법에 의해 역사가 운영된다. 선과 악을 아는 양심(conscience)에 의해 인간들이 다루어졌다고 하여 이때를 일반적으로 ‘양심의 시대’라고 부른다. 아담의 언약으로 인해 새로운 경륜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이 언약은 그 시대만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에덴에서의 언약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이 언약은 이후로의 모든 인간 역사를 규제한다.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다시 오셔서, 세상에서 저주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 언약은 유효하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지금도 아담의 언약은 파기되지 않았다.아담의 언약에 포함된 내용은 저주와 약속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뱀에 대한 저주이다. 뱀은 모든 가축과 들짐승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평생토록 배로 기어다니게 되며, 흙을 먹게 된다. 또 뱀과 여자 사이에는 적의(enmity)가 있게 된다. 창조로부터 이 순간까지 뱀은 아름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파충류의 모습을 갖게 된다. 지금도 뱀을 혐오하지 않는 여자는 거의 없다. 둘째는 여자에 대한 저주이다. 여자에게는 고통과 임신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고통 가운데서 자식들을 낳게 되었다. 또한 여자의 바램은 남편에게 있게 되어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게 된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기본적 질서를 나타낸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지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언약에 포함된 저주에 대해 항변할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셋째는 아담에 대한 저주이다. 그가 자기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까닭에,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음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된다. 아담은 일생 동안 고통 가운데서 땅의 소산을 먹으며 얼굴에는 땀을 흘려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로 인해 저주받은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땅을 경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게 된다. 이때 아담에게 허락된 것은 단지 식물 뿐이다. 결국 불순종의 댓가로 아담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됐으며,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놓인다. 죄는 인간에게 영(spirit)과 몸(body)의 죽음을 야기시켰다.
아담의 언약은 저주뿐만 아니라 약속도 담고 있다. 그 약속은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수게 될 것이고, 뱀의 씨는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약속된 ‘여자의 씨’를 기다려 왔으나, 반대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은 계속해서 그 씨가 출현하는 길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아담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사탄의 계속적인 시도를 보여 준다. 각 시대마다 반복되는 인간들의 실패도 이 사실을 설명한다. 이러한 약속에 포함된 사실들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자체가 은혜로 연결됨을 볼 수 있다. 더우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아내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그들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인가의 피가 흘려져야 됨을 아담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으로 아담에게 입혀 주심으로 피로 드리는 제사를 계시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이 그러한 제사를 드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은 아벨이었다. 카인은 저주받은 땅의 소산만을 의지하였으나 아벨은 자기의 양 중에서 첫배 새끼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위에서 살펴 본 ‘아담의 언약’에 담긴 내용들은 아담 이후 모든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금도 여자들은 고통 가운데 아기를 낳으며, 동서를 막론하고 남녀 사이의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다. 혹, 출산의 고통을 피하려는 시도가 행해지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권위에 대한 여자들의 도전도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아울러 남자들은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예외없는 법칙이다. 만약 남자가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는 몸에 쌓인 노폐물로 인해 병들어 죽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피(The blood)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담의 언약에 포함된 인간들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들은 계속해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아담의 언약으로 죽음과 고통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것들은 하나님만이 그치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20장에 묘사된 날들이 오면 이것들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현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들은 단지 아담의 언약을 뒤엎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남성들의 권위를 제거하는 것, 환경을 통제하는 것, 고통없이 아기를 낳게 하는 것, 땀을 흘리지 않게 하는 에어콘 시설 등등.... 이러한 현실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로 ‘하나님의 아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에덴에서 지식의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열매를 먹은 인간은 선악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고, 선악을 아는 능력인 양심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환경 속에서 실패한 인간에게 양심에 따라 살도록 허용하심으로써 인간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 주셨다. 양심은 후회와 두려움을 가져오나, 저항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담의 언약이 선포되는 때부터 인간들은 전체적으로 다루어졌다. 양심에 의해 지배받던 이러한 시대를 ‘무지했던 때’(행17:30)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 하에서는 즉시 사형에 처해져야 하는 죄도 이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다. 하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영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죄에 대한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뿐이다. 인간들은 이 점에 대해 율법이 없던 시기의 죄에 대한 심판은 부당하다며 자신들을 변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의미가 없다. 세상의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God- head)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분명하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양심에 의해 행동하던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았고, 오히려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다. 그들에게 율법은 없었으나, 그들에게 심판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율법없이 멸망할 것이다. 무지했던 때라도 심판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본성에 의해 율법의 내용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에서 특별히 구분된 이후에도, 이방 민족들은 아담의 언약과 함께 양심에 대한 경영원리에 계속해서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동일하다.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은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1> 복음을 알지만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2>복음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죄인들이다.
아담의 언약이 맺어진 이후로도 양심에 의해 하나님을 만나고 선을 행할 수는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롭게 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라서 바르게 행했다면 의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사실로 양심을 근거한 이방인들의 구원을 설명할 수 있다. 양심에 따라, 그들은 본성에 의해 하나님을 찾았다. 아브라함이나 코넬료처럼 경건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사 가운데 전개되는 모든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담의 언약과 더불어 시작된 이 시대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진적인 타락이 있었고 죄와 일치된 세상 속에서 불경건하고 찬란했던 문명은 파멸을 맞게된다. 오직 에덴에서 선포된 아담과의 언약만은 불변한 채 존속되어 온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