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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노래 (신명기 31-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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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1월호>
31-32장은 보통 “모세의 노래”라고 불린다. 이 노래의 구체적인 내용은 32장에 나오며, 31장은 이 노래를 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으로서, 앞에서 지속적으로 경고한 내용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떤 은총으로 베푸셨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룬다. 그들이 온전히 섬겨야 한다고 명령받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감동적인 메시지가 예언적인 노래로 주어지는 것이다.1. 여호수아와 제사장들에게 주는 권면 (31장)
(1) 담대히 진군
모세는 자신이 요단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그들을 위해 싸워 주신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믿었다(3절). 그래서 모세는 온 백성들에게 “강건하고 담대하라.”고 확신을 준다(6절). 왜 담대하라 하시는가? 이미 승리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네 앞에” 건너가 싸우시는 분임과 동시에(3절), “너와 함께” 가시는 분이시다(6절). 특히 6절은 『그분께서는 너를 단념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시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히브리서 13:5에서 인용되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는 신약 교리를 증거하는 말씀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단념하지 않으신다는 이 말씀은 얼마나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많은 반역들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적절하게 징계하시기는 했지만, 결코 그들을 단념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주신 약속을 이행하셨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끝까지 이행하실 것이다. 우리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7절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강건하고 담대하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이 용기의 권면은 23절과, 여호수아 1:6-9에서도 반복된다. 새 땅을 향해 진군하는 백성에게, 또 새로운 지도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담대함이다. 이 명령이 신명기 마지막과 여호수아 시작에서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모세와 여호수아 사역의 연속성을 보게 된다. 둘의 임무는 동일하니, 즉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단지 모세가 시작한 것을 여호수아가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표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즉, 율법(모세)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게 했고, 예수님(여호수아)은 율법의 의를 완성시키셨다.
모세는 담대함을 명령함과 동시에 제사장들에게 율법 준수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9-13,24-29절). 당장 싸움에 필요한 것은 담대함과 믿음이지만, 그 땅을 지속적으로 소유하는 데 필요한 것은 율법 준수이기 때문이다.
(2) 배교에 대한 경고 (31:14-30)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회중의 성막으로 함께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권위를 이양시키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함께 부르시어 하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배교를 예고해 주신다. 『...이 백성은 그들이 가서 그 가운데 거할 그 땅의 이방 신들을 좇아 음란한 짓을 하러 가리니...』(16절).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재앙이며(17,18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노래를 기록하여 가르치라 하신다. 이 노래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될 것이다(19,21절).
성경에는 “증거”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언약궤도 증거궤라 부르고(민 17:4), 십계명 돌판을 증거판이라 부르고(출 25:16), 성막도 증거의 성막이라 부른다(민 17:7). 여기서는 율법을 증거로 삼는다고 말씀하고, 앞서는 “노래” 역시 증거로 삼는다 하셨다.
증거란 어떠한 사실을 확실히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떠한 사실을 증거해 주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증거해 준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백성 삼으셨는지 그분의 은총을 증거해 준다. 그들이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관계성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 성막이나 언약궤가 그것을 증거하고, 율법과 이 “노래” 역시 그것을 증거한다. 모세는 자신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더 큰 배교를 행할 것임을 알기에(27절), 율법을 증거로 주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모세는 하늘과 땅까지 불러 증거를 삼고 있다(28절, 32:1). 온 하늘과 땅 앞에서 이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한 증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2. 모세의 노래 (32:1-43)
모세의 노래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그분의 위대한 베푸심을 보여 주고(1-14절), 둘째는 이스라엘의 배교한 모습과 그로 인한 심판을 보여 주며(15-26절),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27-43절).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 혹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1)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심 (1-14절)
일단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선언된다(3절). 그분은 반석이시다(4절). 변치 않고 완벽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진실하시고 악이 없으시고 의로우시고 정직하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사셨으며, 지으시고 세우셨다(6절). 사셨다는 말은 구속하셨다는 말인데, 노예 상태가 된 사람을 값을 지불하고 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구약에서 구속은 가족이나 친족이 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종된 이스라엘을 풀어 주셨으며,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신 것이다.
이 “노래”는 그들이 고난받을 때 기억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어떤 일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유업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9절).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민족들을 나누실 때도 이스라엘이라는 유업을 염두에 두셨다(8절). 또한 광야 생활에서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10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독수리가 새끼를 다루듯이 인도하고 보호하셨다(11절). 독수리가 새끼를 다루는 법은 일종의 훈련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셨다. 이스라엘은 오직 그분만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12절). 이것은 그들의 영적 위치가 다른 모든 이방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광야 생활 가운데 다양하게 부양하셨음도 기억해야 한다(13,14절). 출애굽 상황에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지만, 본문에 따르면 들의 소산과, 꿀과 기름을 먹었고(13절), 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들의 기름과 바산에서 기르는 숫양들과 염소들과 기름진 밀알, 그리고 “포도의 순수한 피” 즉 포도주(즙)를 마셨다(14절). 하나님께서는 땅의 높은 곳들, 즉 산지를 통해 인도하셨는데 그 가운데에서 이러한 음식들을 먹이셨고, 요단 동편 특히 바산 지역을 차지하면서 좋은 것들을 먹이셨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만나만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고, 이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 준다. 아울러 요단 동편 정복활동의 승리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특별히 14절의 “포도의 순수한 피”를 주목하라. 이것은 포도주를 말하는데, 순수하다는 말을 통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임을 알 수 있다. 이사야 65:8은 이것을 “새 포도주”라고 말한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피 혹은 성령님을 예표하기도 한다. 특히 포도의 순수한 “피”라는 묘사를 통해 본문이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함을 알 수 있는데, 성경은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피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죄인들의 피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져서 죄인들은 구원받지만, 그 피를 믿지 않는 죄인들은 자신들의 피를 흘리게 된다. 여기 14절은 그리스도의 피를 보여 주지만, 32-33절에서는 죄인들의 피를 보여 준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들에서 나온 것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 송이들은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 이것은 멸망할 죄인들이 흘릴 피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초림 때는 자신의 피를 흘리셨지만, 재림 때에는 세상 죄인들의 피를 흐르게 하실 것이다. 이사야 63:2,3에서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포도즙틀을 밟듯이 죄인들을 밟아, 그 피가 그분의 옷을 얼룩지게 한다고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9:15에서는 그것을 “진노의 포도즙틀”이라고 말씀한다. 요한계시록 14:20에서는 그 피가 말고삐까지 닿을 정도라 말씀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피는 순수한 피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피로서, 하나님 자신의 피이기 때문이다(행 20:28). 한편 주의 만찬에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피가 순수한 피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상징적인 의식에서 발효된 포도주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 포도주는 “새 포도주”여야 하며, 그렇다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본문은 그리스도의 피와 악인들의 피를 대조하지만, 그리스도의 피와 동물의 피에 대한 대조도 있다. 동물들의 피는 일시적인 속죄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룬다(히 9:12).
(2) 이스라엘의 배교와 심판 (15-26절)
『그러나 여수룬이 살찌자 걷어찼도다...』(15절). 여기서 여수룬은 이스라엘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배부르게 되자 자기를 먹이신 하나님을 버렸으며, 그들의 반석을 가볍게 여겼다(15절). 반석은 굳게 있어, 그들이 그 위에 설 수 있는 기반이다. 그들이 그 반석을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설 기반이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정체성이 있는데, 그 언약을 버린 이상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도 없어져 버렸다. 그들은 우상에게로 나아갔으며, 그들의 희생제는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17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셨다(16,21절). 그들이 우상들로 하나님께 질투를 일으켰기에, 하나님께서도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에게 질투를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신다. 즉 그분의 진노를 이방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퍼부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내용들이 모세를 현재로 해서 이스라엘이 미래에 배교할 것을 염두에 두고 부른 노래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 배교하는 내용들도 과거 출애굽 때 배교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에도 그들은 종종 우상들에게 나아갔으나(출 32장, 민 25장), 구약 역사서를 통해 그들의 배교한 모습들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된다. 모든 선지자들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책망했다. 결과적으로 앗시리아와 바빌론을 통해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다.
22-26절의 내용들은 앗시리아 혹은 바빌론 침입 때 당하는 고난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 “불”을 일으키실 것이라 하셨는데(22절), 이 불심판은 그들의 멸망을 말한다. 재앙, 화살들(23절), 굶주림, 타는 열기, 혹독한 멸망, 짐승들의 이빨, 뱀의 독(24절), 밖으로는 칼, 안으로는 공포(25절), 그리고 사방에 흩어 버림까지(26절)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배교했을 때 당하는 크나큰 심판을 보여 준다.
특별히 26절에서는 “내가 그들을 사방에 흩어서 그들의 기억을 인간에게서 끊어지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십자가 이후 유대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까지도 예언하는 말씀이다. 그때 그들은 완전한 파괴를 당해서, 어느 누구도 그들의 회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또한 22절에서는 그분의 진노가 “가장 낮은 지옥”까지 사른다고 했는데, 이는 그 민족의 멸망을 극심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실제적인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배교한 이스라엘의 운명은 민족적으로는 멸망이요, 개인적으로는 지옥이다.
(3) 이스라엘의 구원 (27-43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끊어 버리려 하셨다(26절). 하지만 이방인들로 하여금 비방하지 않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다시금 구원하실 것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아 이스라엘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한다(27절). 따라서 그들 역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멸망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이 부분의 말씀은 그 이방인들을 멸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치실 때 그들이 신뢰하는 자기들의 신들은 전혀 자기들을 지켜 주지 못한다(30절).
여기에 두 종류의 반석이 등장한다. 31절은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않음을 그들, 즉 원수들까지도 스스로 판단한다고 한다. “그들”과 “우리”(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서로 다르다. 그 의지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철저히 하나님과만 맺어진 관계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포도와 이스라엘의 포도 역시 다르다(32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포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방을 좇아갈 때 이방의 포도를 내었다. 이사야 5:4은 그것을 “야생 포도”라 말한다. 여기 신명기 32장에서는 “쓸개 포도”라 말하며(32절), 그 포도주는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 말한다(33절). 이것이 주님의 창고 속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34절) 주님이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35절에서 “복수와 보응이 내게 속해 있으니”라고 말씀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다. 그것은 “그들(이방인들)의 재앙의 날”이다. 앞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시지만, 여기서는 이방인들에게 재앙을 내리신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은 대환란이고, 이방인들에게 내리는 재앙은 지상 재림 때 이루실 큰 심판이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의 위엄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하늘에 내 손을 들고 말하노니, 나는 영원히 사노라』(40절). 얼마나 위엄있는 말씀인가. 그렇다.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칼과 활로 복수하신다고 하신다(41-42절). 여기서 복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일에 대한 복수이다(43절).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은 곧 하나님의 대적이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민족들에게도 선포한다. 『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43절). 주의 백성과 함께하는 자는 복을 받고 주의 백성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이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언약이다(창 12:3).
결국 이 노래는 이스라엘을 향한 자비로 끝맺는다(43절). 비록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심판하시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크신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대대손손 이 노래를 부른다면 범죄 가운데서도 돌이킬 수 있을 것이요, 비록 범죄함으로 심판받는다 해도 회복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 노래를 들려주신 이유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