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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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본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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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6월호>

성경은 인간의 몸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는 성경이 그 안에 생명을 갖고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비록 1600년 간에 걸쳐 42명의 저자가 세 개 대륙에서 기록하였지만 성경은 통일성을 갖고 있으며,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하나의 계획을 제시한다. 해부학이 의사가 되기 위한 기본 과목이듯이 성경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성경의 전체 골격에 대한 지식이다. 인체가 뼈대, 순환기, 소화기, 호흡기 등으로 나누어져 있듯이 성경도 8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구분은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신 구분으로 성경을 공부하여 진리의 지식(딤전2:4)을 얻는 데 필수적이다.

1. 첫번째 부분은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이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창조물과 두 개의 “언약”을 체결하신다. 하나는 “에덴의 언약”이라고 하며 창세기 2:16,17에서 발견된다. 두번째 언약은 “아담과의 언약”이라고 불리며 창세기 3:14-19에 기록되어 있다.

2. 두번째 부분은 창세기 4장부터 12장까지이다. 이 부분에서 노아와의 언약을 발견할 수 있으며(창9:1-7), 그 다음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창세기 12:1-3에 나와 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후일 세 개의 추가조항이 덧붙여졌으며, 이것들은 창세기 13:14 -17, 창세기 15:18, 창세기 22:16-18에 나와 있다. 창세기 22장 16-18까지의 내용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그로부터 1900년 후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갈3:16-22).
창세기 22장과 갈라디아서 3장 사이에는 무려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책들이 놓여 있지만 성경은 1900년이라는 기간을 넘어서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3. 세번째 부분은 창세기 13장에서 출애굽기 19장까지이다. 이것은 창세기 3:15에서 약속된 “씨”가 어떻게 한 사람(아브라함)으로부터 한 민족으로 넘어갔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며, 그후 이 약속된 씨를 오게 할 “도구”로서 이 민족 가운데서 한 지파가 어떻게 선정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이다(창49:10, 계5:5). 이 약속된 씨를 중단시키거나 부패시키기 위해 성(性), 혹은 살인행위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창4:8; 6:2; 16:3; 27:41, 출1:16, 민25:1-3).
이 씨를 운반할 세 여인은 처음에는 불임이었으나(사라, 리브카, 라헬)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아들을 주셨다. 이것은 “여자의 씨”(창3:15)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태어날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눅1:35).
여기에서도 우리는 1800여 년을 뛰어넘어 성경에 미리 계획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그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경우도 있다(벧전1:11).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된 책은 지구상에 단 한 권도 없다.

4. 네번째 부분은 출애굽기 20장에서 마태복음 26장까지로 이것은 모세와의 언약이라고 불리며 “율법”이라고 불린다. 이 율법은 침례인 요한까지 제시된 것이었으나(눅16:16) 갈보리까지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갈3:13, 행13:39-41, 롬7:1-6, 고후3장). 이 율법은 믿음과 행위에 의한 구원계획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원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했는데(출19:8) 이 구원이 신약성경의 구원과 얼마나 다른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요1:17, 롬10:5-6, 신31장, 겔18장). 율법 하에서는 그 누구도 영적으로 할례받지 않았으며(골2:11), 그들의 죄들 역시 “제거”되지 않았고, “정결케 되지” 않았다(출34:7). 또한 구약에서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으며(엡3:1-10), 그 누구도 거듭나지 않았다. 그들은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났고(창5:1-4), 그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것이 아니다(골3:10을 창5:3과 비교해 보라).

5. 다섯번째 부분은 마태복음 26장부터 사도행전 2장까지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과도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기간이 구약에서부터 신약으로,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넘어가는 과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교회라고 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과는 전혀 무관하다.
신약(새로운 언약)은 마태복음 26: 28에 가서야 비로소 수립되며 마태복음 27:50까지는 아직 발효되지 않는다(히9:14-17). 이 사실은 모든 사도들이 마태복음 27:50까지는 율법 하에 있었으며, 사도행전 10장까지는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는 것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말한다(골3: 14, 갈4:9,10). 사도행전 10장을 읽어보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몇 년 후까지도(행10:14) 여전히 베드로는 율법의 음식규례에 관해 오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사도행전 12장의 시기까지는 그 어떤 제자도 구약 성경만을 갖고 있었을 뿐 그 어떤 신약성경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은 시기적으로 사도행전 12장 이전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사도행전 12장의 시기까지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사도 혹은 제자들도 그것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마태복음 26장과 사도행전 2장까지를 “과도기”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6. 성경의 여섯번째 부분은 사도행전 3장부터 계시록 4장까지이다. 우리는 이 기간을 “교회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이 기간에 형성되기 때문이다(엡1-3장, 골1-2장, 요한복음17장). 예루살렘에 있던 지역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서야 유기체가 되었으며(고전12:13- 25), 그때까지 그 교회는 단지 조직체에 불과했다. 이 교회가 살아 있는 유기체로 된 것은 요한복음 17:21-23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의 기도의 성취였다.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 모두가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님의 기도가 아직은 응답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로마 교황이 아직 전 세계에 있는 지역 교회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 간구하신 영적인 하나됨은 오순절날 응답되었다(고전12:13). 교황이 그 사실에 관해 모르는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골1:24; 2:6-9, 엡5:30, 고전12:14-27). 따라서 모든 교황들은 모두가 “단합”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 목적이 로마를 중심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어 전세계를 교황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것임은 물론이다.
요한복음 10:16에 나오는 “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에 관해 시몬 베드로가 언급한 바 있다(벧전2:25). 또한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언급한 것도 읽고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히13:20). 로마의 보좌에 앉아 있는 “목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스카랴서 11:17을 읽어 보면 된다. 성령께서는 그를 「우상목자」라고 부르신다. 이 “목자”가 그렇게 불리는 것은 그가 십계명에서 제 2 계명을 없애고서 우상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7. 성경의 일곱번째 부분은 계시록 5장부터 계시록 19장까지이다. 이때는 교회가 벌써 들림받아 올라간 후이다(계4:1-3). “교회시대”는 끝나고 이스라엘이 교회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 된 것이다(롬11:25-29과 히8:8-12). 이 기간은 “다니엘의 70째주”라고 불리는 7년의 기간으로 성경은 이 기간을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라고 부르며, 이 기간에는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등장한다(계7:4-8). 오늘날 교회시대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이 없지만(갈3:28), 7년 대환란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지상으로 돌아오고(계11:1 -8) 구원 또한 지금처럼 오직 믿음만으로가 아니라 믿음과 행위에 의해 받게 되는 것이다.
이 구원의 방법에 대해 침례교도들을 비롯한 “복음주의자”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는 그들이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구원계획은 교회시대에 적용되는 것인 반면 “야곱의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래의 구절들을 읽고 비교해 보기 바란다(계12:17; 14:12; 22:14, 마24:13; 25:34-42, 히3:14; 6:1-6; 10: 26-31).
이 대환란 기간에는 신약이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며(히8:8-12),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그리스도께 회심하고 회복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로마서 11:26-28, 예레미야 50:20, 이사야 40:1-2을 읽어 보기 바란다. 바로 이 기간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해서는 90% 이상의 성경교사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카톨릭 교회는 A.D.300-500년 사이에 이미 이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해 버렸다(어거스틴, 오리겐, 제롬을 포함한 모든 카톨릭 “신학자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완전히 관계를 단절하셨으며 따라서 모세와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들은(신30:1-10, 삼하7:10-16) 모두 “영적”으로 해석되어 로마 카톨릭 교회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오늘날까지도 카톨릭 교회는 이사야 1장, 2장, 11장에 나와있는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정치적 회복과, 저주받은 자연이 실제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실제로 구절들을 읽어 보라). 카톨릭 교회에 따르면,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의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에스겔 40-48장) 모두 거짓말이 된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는 500여 개의 예언들을 뽑아내서 자신들의 사사로운 해석에 따라 “영적”으로 해석하고 나서 그 구절들을 훔쳐다가 자기들의 “교회”에다 적용시켜 버렸다.
오늘날의 현대 신학자들도 마태복음 24, 25장을 교회시대에다 억지로 적용하려고 할 때, 카톨릭 신학자들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다. 히브리서 6:1-5, 혹은 히브리서 10:26-33 등은 교회시대에 적용되지 않는 구절이다(계시록 11,12,14장, 22:14 역시 교회시대에 적용되지 않는 구절들이다).

8. 성경의 마지막 부분은 계시록 20-22장이다. 이 부분은 계시록 5-19장에서 묘사되어 있는 “대환란”에 뒤
이어 등장하는 부분으로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의 보좌 위에 앉아서 다스리신다(마19:28; 25:31, 렘3: 17; 14:21, 행2:30, 사2:3, 슼14:9). 그리스도께서는 탄생하셨을 때, 이 구절들에 나와 있는 실제적이고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보좌를 차지할 것을 약속받았다(눅1:30-33). 그러나 방금 언급한 구절들을 그대로 믿는 교황들은 이제까지 한 명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로마에 있는 보좌에 앉아 왕관을 쓰고 왕노릇하고 있는데, 성경은 이 왕을 적그리스도인 “죄의 사람”이라고 말한다(살후2:1-13).
그리스도의 천년통치(계20:1-6)는 21장에서 영원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성경의 기본 “골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구분을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공부”하되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딤후2:15). 성경에는 합당한 구분이 있고 이 구분을 무시하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벧후3:16).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단순한 역사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고도로 복잡하게 의도된 계획이며, 그 계획은 인간이 아닌 어떤 분이 아니고서는 고안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에서 제시한 성경의 구분들은 일관성 있는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경은 18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개 대륙에서 40여 명의 저자들이 기록한 66권의 책을 모아 놓은 것인데 이처럼 엄청난 “유기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신비 중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1. 성경의 처음 두 장(창 1-2장)에는 첫 창조에 대한 기록이 있고 마지막 두 장(계 21,22장)에는 마지막 창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2. 사탄의 최초의 출현은 첫 창조에 뒤이어 나오고 있으며(창1:2) 사탄은 마지막 창조 바로 전에 다시 등장한다(계 20장).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했다. 그렇다면 요한이 창세기에 맞추어서 인위적으로 그렇게 기록한 것일까? 계속 살펴보자.

3. 창세기 1장에는 사탄의 출현에 뒤이어 회복과 축복이 나온다(창1:3, 창 2장). 사탄의 마지막 출현에 뒤이어서도 회복과 축복이 뒤따른다(계 21장).

4. 첫번째 회복과 축복에 뒤이어 사탄이 다시 등장한다(창3;1). 그러나 그는 계시록 21,22장의 마지막 회복과 축복이 있기 직전 불못으로 던져진다(계20:10).

5. 사탄이 등장한 후(창 3장) 인류 전체가 하나의 그룹으로 다루어진다(창 4-말 4장). 사탄이 불못으로 가기 직전에도(계20:1-2) 인류 전체가 다루심을 받는다(계 5-19장).

6. 역사의 시초에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중에 특히 유대 민족을 중점적으로 다루신다(창 12장, 출 20장, 말 1-4장).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역사가 끝나가는 대환란에도 유대민족을 특별히 다루신다(계 7, 11, 12장).
아직도 독자들이 읽고 있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 모르겠는가?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사람들(창 1-계 22장)은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나단, 스카랴, 사무엘, 다니엘, 스파냐, 호세아, 에스겔,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 마태, 유다, 바울, 아모스, 오바댜 등이었다(이외에도 25명이 더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은 그들이 기록한 것들이 기계부품이 조립되듯이 맞아 떨어지게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성경이 거룩한 책으로서 초자연적인 손길이 그 뒤에 계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록된 책은 역사상 단 한 권도 없다.

7. 하나님께서 인간 전체를 다루신 후(이때 유대인을 먼저 다루셨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번째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셨다(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대환란 동안(계 5-19장) 인류 전체를 다루신 후에(이때도 유대인들을 먼저 다루신다. 계시록 7,11,12장을 읽어 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번째로 나타나실 것이다(계19:10-16).

8. 그리스도의 초림에 이어 과도기가 뒤따랐으며 사도행전이 이에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그의 재림에 앞서 “교회시대”라 불리는 기간이 있게 된다(로마서 1장,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등을 읽어 보라).

이와 같이 여덟 쌍의 상응하는 내용이 완전한 질서 안에 잘 짜여져 있는 것이 성경이다. 66권의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자기가 쓰고 있는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또는 왜 자기가 그것을 기록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도 몰랐다. 다시 말해 성경 기자들을 인도하고 계셨던 분은 1800여 년 전에 이미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를 알고 계셨다는 말이다. 성경의 저자되신 그 분은 B.C. 4000년부터 A.D. 3000년까지의 역사를 통찰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런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될 수 없다. 이사야 41,42,43,44,45,46,47,48장을 읽어보면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성경의 놀라운 구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십수 가지의 경이적인 내용들이 성경의 신비로운 구성을 입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잠언 11:28에는 “가지”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 가지는 네 가지 적용을 갖고 있다. 예레미야 23:5에서는 “가지”가 왕이며, 스카랴 3:8에서는 “가지”가 종이고, 스카랴 6:12,13에서는 “가지”가 사람이며, 이사야 4:2에서는 “가지”가 주(主)이시다. 만약 그들이 각자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서 했다면 그들은 인간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죽은 후 400-700년 후에 태어날 어떤 사람을 묘사하는 네 가지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죽은 지 700여 년 후에 마태는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책을 썼고(이것은 예레미야 23:5과 일치한다), 그 다음은 마가가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썼으며(이것은 스카랴 3:8과 일치한다), 그 다음은 누가가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고(이것은 스카랴 6:12,13과 일치한다), 그 다음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요한복음 1:1-8을 읽어 보라. 그 분은 “주님”이시다) 묘사하고 있다(이것은 이사야 4:2과 일치한다).
이 모든 기록을 조정하고 계셨던 분은 과연 누구신가? 700여 년 후 사복음서가 기록될 것을 알고 구약의 “가지”에 대한 네 가지 의미가 사복음서에 나타날 한 사람에게 적용될 것을 사전에 알고 계셨던 그 분은 누구신가?
이와 같은 사실들을 접하고도 성경은 코란이나, 불경이나, 몰몬경이나, 카톨릭 미사집이나 사서삼경과 같은 책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임에 틀림없다.
성경은 예언의 일곱 시대를 계시하고 있으며 이 예언자들 속에는 모하메드나 교황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1.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3. 모세부터 요엘까지
4. 요엘부터 말라키까지
5. 침례인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
6. 교회시대의 성령의 사역
7. 대환란 때의 엘리야와 모세(계 11장)가 그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는 아무도 예언하지 않는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스카랴 13:3-4을 읽어 보라). 참된 예언은 미래의 사건을 미리 말하는 것이며, 그것도 구체적으로 예언함으로써 애매모호한 추측이나 해석을 불허하는 정확한 방식으로 주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예언들은 근거없는 “맹신”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분명히 성취되어야 한다. 예언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은 자명하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역사책이다. 당신의 손에 쥐어진 “성경”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이다. 따라서 원수 마귀가 이 책을 변개시키고 모조품을 만들어내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올바른 성경 선택의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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