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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수 없는 은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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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6월호>
칼빈주의자들에 의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의 판결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뜻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적이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네가 내게 “어찌하여 그 분께서 여전히 잘못을 찾고 계시며, 누가 그 분의 뜻을 거역하였느냐?”라고 말하리라』(롬9:19).거의 모든 칼빈주의자들은 TULIP에 눈이 가려서 로마서 9:19의 바울의 말을 잘못 해석합니다. 이 구절을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로마서 3장과 모순되는 결과를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는 데 대한 중요한 대답이 로마서 3장에 나옵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겠느냐?』(롬3:6)
베드로후서 3:9의 모든 사람을 칼빈주의자는 “선택된 자”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어떤 “선택된 자”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선택된 자들”을 오래 참으시겠습니까? “선택된 자”는 그들이 노력해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할 수 없음이 아니라 원치 아니함입니다.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5:40).
하나님의 의지의 이러한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인 오래 참으심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실 뿐만 아니라 슬퍼하시고(판10:16) 오래 참으심으로(롬9:22) 참아주십니다(행14:16).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참으신다는 것은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악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생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그들 안에 그러한 마음이 있어 나를 두려워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항상 지켜 그들이 잘되고 그들의 자손이 영원히 잘되기를 원하노라!』(신5:29)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이와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이 모든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일찍 일어나서 말하였으나 너희는 듣지 아니하였고,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였도다』(렘7:13).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역하였고,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나의 모든 조언을 무시하였고 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므로』(잠1:24-25).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용어를 모두 “선택받은 자”로 바꾸어 인용하고자 하지만 성경의 “선택받은 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안다면 입을 다물 것입니다. 『그러나 내 백성들이 내 음성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이 나를 전혀 원치 아니하였도다』(시81:11). 『정녕,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괴롭혔도다』(시78:41). 그러므로 칼빈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교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적인 경영방침을 거부하고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못함으로 인한 넌센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심지어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동할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로 인하여 너희는 어리석게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5:17)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뜻은 입증되야 하고(롬12:2), 마음으로부터 행해야 합니다(엡6:6).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사도로서 복종했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를(골1:9)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음행을 삼가고』(살전4:3).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그러나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1세기부터 지금까지 음행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칼빈주의자가 음행과 감사치 않음을 하나님의 뜻이요 판결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까?
만일 사람이 죄 가운데 죽어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신다면 하나님의 의지가 훼방받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강제로 그들의 의지를 바꾸셔서 그들이 믿을 수 있게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그가 안전하게 믿을 수 있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살리심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는 칼빈주의자들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구원받았기에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지를 영적으로 강탈해 버리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처럼 구원의 계획을 뒤집는 것은 성경에 모순될 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의 교리 자체와도 모순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실 칼빈주의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나 거듭나는 것이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남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의롭게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 이전의 거듭남을 주장하는 모든 논쟁들은 부적절하고 일관성 없는 무익한 것입니다.
만일 “선택된 자”가 영원부터 그리스도에 연합되었고 아담이 타락했을 때에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거듭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만일 “선택된 자”가 아담의 타락 때 떨어져나가게 되었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떨어져나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의롭게 됨과 영적 축복의 기초인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가 사람이 믿은 후에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믿음이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롬1:16, 고전1:21).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요3:18,36; 8:24). 문제는 사람의 죄에 있지, 하나님께서 “선택된 자”에게만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사59:1-2).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구원을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강제로 자신을 믿게 하시지 않기 때문에 영접하든지 거절하든지는 그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잠18:21). 그러므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의한 구원은 “또다른 복음”(갈1:6)이며 저주받을 소식입니다(갈1:8).
사람이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는 절대적 필요에 관한 말씀들을 만나기만 하면 칼빈주의자들은 주권적 은혜를 가지고 회개와 믿음이 주어져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들의 마지노선을 견지합니다. 혹세마도 “선택받은 사람은 그가 믿을 수 있기 전에 믿음의 능력을 지녔고, 그가 회개할 수 있기 전에 회개의 선물을 가졌다.”라고 말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문을 왜곡시켜 TULIP 체계에 맞춘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 『이 분을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높이셔서 왕과 구주가 되게 하셨으니, 이는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사함을 주시기 위함이라』(행5:31). 『그들이 이런 말을 듣고 조용해지더라.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녕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하니라』(행11:18).
만일 칼빈주의자들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에게 회개를 주신다.
면 모든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행5:31). 핑크는 본문을 “영적 이스라엘”로 바꿔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방인들은 모두 구원받는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해석대로 한다면 본문이 말하는 바를 놓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행11:18). 이 본문들은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 죽은 이방의 죄인들은 저항할 수 없게 구원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9-11장과 같이 이스라엘 민족의 특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유대인, 이방인, 그리고 교회를 구분합니다(고전10:32). 칼빈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거듭남이 믿음 이전에 있다는 주장)을 “Faith gift” 이론이라고 합니다. 즉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의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이 내세우는 성경구절은 에베소서 2:8-9입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8-9).
은혜란 하나님의 과분한 호의이기 때문에 “너희의 것이 아니며”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믿음은 단지 받아들이는 매개체입니다. 믿음이 “병고치는 은사들”과 같
이 영적 은사로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고전12:9) 제시되지만 이것도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롬5:5). 또한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와 함께 주어집니다.
칼빈주의자들이 믿음을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선물로 만드는 주된 이유는 믿음을 행위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은혜와 행위를 반대로 놓았을 뿐만 아니라 믿음과 행위도 서로 반대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은혜에 반대되지 않으며 오직 행위와 반대됩니다.
믿음과 은혜의 조화는 구원을 이루며 로마서 4장에서 잘 설명됩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를 따라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되거니와...』(롬4: 16).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4:4-5).
믿음은 하나님께서 “값없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수단으로 지적하셨습니다(롬5:15,16,18).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을 제공하시고 사람이 그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만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한 교리인 “faith-gift” 이론을 거부할 경우 칼빈주의자가 말하는 유일한 대안은 알미니안주의와 은혜에 의한 구원의 거부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는 “알미니안 교리”가 확실히 성경적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의 말씀이라』(롬10:8).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10:17).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사람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은혜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신약교리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읽을 필요가 없고, 눈을 감고 누워서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를 감싸도록 기다려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주의자의 망상이며, 성경을 믿고 성경을 하나님의 최종권위로 받아들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속지 않는, TULIP의 결론인 것입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