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나팔 분류
담벼락에 오줌누는 자
컨텐츠 정보
- 8,037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11월호>
나는 종종 성경 번역에도 영감이 작용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최초에 성경을 기록할 때와 같은 영감(딤후 3:16, 욥 32:8)은 더 이상 필요없지만(성경 기록이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번역에도 성령님은 강하게 역사하신다고 믿는다.성경 번역은 직역이 생명이다. 번역자에게는 원문을 자기 나라의 언어로 옮겨 놓는 철저한 책임감 외에 어떤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직역이 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문학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글이고 글에는 독자
가 있어야 하고 또 많이 있어야 하는데, 글의 문학성이 가독율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성에는 초등학생도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어휘로 기록되어야 함도 포함된다.
성경 번역이란 접속사, 전치사, 조사까지도 번역하여야 하기에 본문에 있는 것을 가감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또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올 때, 민족성과 전통과 관습, 문화 등에 스며 있는 언어의 특성이 갖는 언어적 유격(gap)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느냐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된다.
“담벼락에 오줌누는 자”라는 표현이 한글개역성경에는 없다. 한글개역성경이 원본이 아니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 보면, RV, RSV, NRSV, ASV, NASV, 림즈 듀웨이(Rheims Duway), 칠십인역(LXX)에도 없다. “담벼락에 오줌누는 자” (any that pisseth against the wall)는 사무엘상 25:22,23,34, 열왕기상 14:10; 16:11; 21:21, 열왕기하 9:8 등에 나오는데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서들에서는 남자, 한 남자, 사내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사무엘상 25:22 『만일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자 중에서 담벼락에 오줌누는 어떤 자라도 아침까지 남겨 둔다면...』
<한글개역성경>
사무엘상 25: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우리는 객관적인 견지에서 이 두 번역을 보기로 한다.
먼저 직역을 보면 “담벼락”(wall)은 히브리어로 “키라우”(Kee Rau)이고 “오줌을 누다”(piss)는 히브리어로 샤우탄(Shawthan)인데 한글 개역성경은 이것을 한 남자로 번역했다.
원본을 이야기할 때 이들은 구약 맛소라 원본을 이야기한다. 맛소라 원문은 “키라우”와 “샤우탄”이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원문을 변조한 것이 틀림없다. 성경은 경건한 글인데 “담벼락에 오줌누는 자” 같은 경건치 못한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이사야서 30:22에서도 볼 수 있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이사야 30:22 『너희는 새긴 은의 형상들의 덮개와 주조한 금의 형상들의 장식을 더럽히리니, 네가 그것들을 월경대같이 던지며 말하기를 “여기서 꺼지라.” 하리라.』
<한글개역성경>
이사야 30:22 『또 너희가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RSV, NRSV와 ASV, NASV는 각각 “불결한 것”(unclean thing)과 “더러운 것”(impure thing)으로 쓰고 있다. 거룩한 경전에다 ‘월경대’처럼 불결한 어휘를 어떻게 쓰겠냐고 번역자가 바꿨을 것이다. 말하자면 번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월권을 행사한 셈이다. 문학성은 직역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직역의 범주를 벗어난 문학성은 곧 오역으로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성경의 어휘 약 840,000 단어는 유기체로 얽혀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어휘 하나가 생소하게 튀어나오게 되면 이 퍼즐은 맞지 않게 되어 있다.
성경번역은 문학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역이 더 중요하다. 문학성을 위하여 직역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성경으로 평가받지 못하게 되며, 유기체로 얽혀 있는 어휘들이 일체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그저 전화번호부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 이름들은 있는데 번호는 없는 전화번호부 말이다. 번역자가 이 점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머리가 돌아버리게 될 것이고, 박만수 전도사(?)처럼 ‘내가 망하려고 이 일을 한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어휘들은 성도들이 알맞게 구사할 수 있다. 요즘 보면 교회 이름들이 참 다양하다. 형용사로 된 이름들도 많이 눈에 뜨인다. 지역의 이름을 딴 것이나 성경에서 따온 어휘들은 무난하다고 본다. 어느날 우리 학회 사무실에 온 어떤 출판사 사장의 명함에는 출판사 이름이 “영원한 복음 출판사”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그에게 영원한 복음은 환란 때 천사들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계 14:6)이라고 했더니, 그가 즉시 그 이름을 고치는 것을 보았다. 성경에 있는 어휘들이라도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담벼락에 오줌누는 자”는 “한 남자”나 “사내”보다는 더 정확한 성경적 표현이다. 첫째는 원문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요, 둘째는 문학성을 잃지 않은 직역인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성서는 일반 성도들이 관심을 표명해도 수정이 불가능했지만, 우리는 성경적 근거로 제안해 오는 충실한 조언을 받으면 심사숙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