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일시적 정죄 vs. 영원한 정죄
컨텐츠 정보
- 85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9월호>
“종교 개혁”(1517년)이 일어나기 72년 전(1445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마틴 루터”의 개혁을 전 유럽에 빠르게 확산시키시려고 “한 사람”을 예비하셨는데, 그가 바로 인쇄업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활자, 인쇄기, 잉크, 종이 등 “인쇄에 관한 모든 기술”이 집약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룩된 결과물이었다. 특히 그가 인쇄기를 통해 처음 찍어 낸 책은 “성경,” 곧 <구텐베르크 성경>이었다.하지만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로 성경을 찍으려 했을 당시, “로마카톨릭” 사제들과 수도원장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중세 암흑시대 수도원들의 주된 업무가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는데, 인쇄기로 성경을 쉽게 찍어 내면 당장에 그들의 “밥줄”이 끊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는 2,3년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필사한 것은 “변개된 성서들”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공들여 필사한 성경이니, 가격도 상당히 비쌌을 것인데, ‘그런 성스럽고 고귀한 책을 세속적이고 무지한 대중들에게 너무 쉽게 나눠 주면 안 된다는 것’이 사제들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소위 성직자들만 갖고 있어야 하는 책이며, 무지한 대중들은 성경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고 사제들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구텐베르크”는 이런 반발을 무릅쓰고 성경을 인쇄했는데, 1,272페이지에 달하는 성경을 “180부” 찍어 냈다. 당시 그는 이 일을 반대했던 “수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든지 글을 깨치고 지식을 얻는 것이며, 또한 ‘성경의 값’이 저렴해져서 돈 없는 농부들도 성경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평범한 인쇄업자가 교황이나 사제들 및 수도원장들보다 훨씬 더 똑똑했던 것이다. 물론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은 “변개된 성서”인 “제롬”의 <라틴벌게이트>였기에 이런 사실은 별도로 평가해야 할 문제이지만, “최초로 성경을 인쇄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텐베르크”를 역사상 매우 위대한 발명가들의 반열에 오르도록 해 주신 것이다. 사실 서양 최초를 넘어 “세계 최초”라고 알려진 “금속 활자 인쇄기”는 13세기 후반의 우리나라 고려 시대의 인쇄기였는데, 이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을 인쇄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와 달리 “고려 시대의 인쇄기”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불교 경전”을 찍어 냈으니, 도대체 “세계 최초”면 뭐하겠는가? 아무 쓸모도 없는 불경이나 찍어 낸 그 인쇄기를, 하나님께서는 전혀 인정해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한편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인쇄하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변개된 성서”였기에 계속 번성하지는 못했다. 성경을 찍은 이후 얼마 안 가 파산하고 말았으며, 지병으로 시력까지 잃는 바람에 인쇄업을 완전히 그만두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채 쓸쓸히 사망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종교 개혁”을 이끈 <루터성경>과 “마틴 루터”가 쓴 여러 가지 책자들이 그의 인쇄기를 통해 인쇄되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성경과 성경적 진리를 담은 책자들을, 귀족들은 물론 평민들 및 농민들에게까지 나눠 줌으로써 “종교 개혁”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던 데는 그만큼 “인쇄기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가리켜 “이것은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극찬했다. 이렇듯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인해 “성경”이 더 많이 제작되자, “루터”의 “종교 개혁”과 그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복음의 불길을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했고, 그 결과 유럽의 여러 다른 나라들도 “자기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게 되었다. 특히 각국의 언어로 성경이 인쇄되고 출판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성경을 쉽게 구입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로마카톨릭’에서 주장했던 상당수의 내용들이 비성경적이었다는 사실”과, “교황은 절대 무오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면서 “종교 개혁”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종교 개혁 성경”인 <루터성경>과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보존된 성경 계보”를, “한글”로 올바르게 잇고 있는 성경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인데, 이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지켜 냈다. 성경 전체 66권, 1,189장, 31,102구절을 모두 지켜 낸 성경으로, “삭제하거나 첨가한 구절”이 없으며, “(없음)”이란 구절이 “전혀 없는 성경”인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에서 36,000군데 이상 변개되고 “신약 성경”에서만 2,200단어 이상 삭제된 “개역한글판성경,” “공동번역성서,” “현대인의성경,” “현대어성경,”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 “쉬운성경,” “우리말성경” 등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지켜 내지 못했다. 거기에는 “로마서 8:1”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 “변개된 성서들”에는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삭제되어 있는 것이다. “NIV,” “NASV”를 위시한 230여 가지의 변개된 영어 성서들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의 “로마서 8:1 전체 내용”은 이렇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변개된 성서들” 앞에서 비겁하게 굴복해 버린 사람들 중에는, 그 “삭제된 부분”을 가리켜 “중복된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필사자들”이 “성경”을 필사하다가 “로마서 8:4”의 똑같은 표현을 “실수”로 집어넣은 것이라고 거짓말하는 자들도 있다. 『이는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참으로 궁색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 부분을 삭제한 것인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문제가 마음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여기까지만 있으면 문제가 없어 보이나,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라는 말씀이 뒤따라오면, 왠지 모르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할 경우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오해”였는데, 이에 그들은 자기들의 “오해”를 바로잡기는커녕, “성령 하나님” 또는 “필사자들”의 “실수”(?)를 바로잡아보겠다며 “성경 변개자들”이 되고 말았다. 성경의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될 때, 그것을 “사사롭게”(벧후 1:20) 해석하거나 “억지로”(벧후 3:16) 풀면 안 된다. 심지어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생각으로 성경 말씀을 제멋대로 고쳐서도 안 된다. 항상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기록된 그대로” 놓아둔 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가르침으로 올바르게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누가 감히 『위대하시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느 9:32)의 “거룩한 말씀”에 함부로 “더러운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오해한 것은 “정죄”에 관한 “성경의 용례”인데, 성경에는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고통받아야” 하는 “영원한 정죄”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의미하는 “일시적 정죄”도 언급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함을 받으리라』(막 16:16). 이상 “두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죄』는 『영원한 정죄』(막 3:29)를 가리킨다. 이에 반해 “로마서 8:1”의 “정죄”는 “영원한 정죄”가 아닌 “일시적 정죄”인데, 이는 “전후 문맥” 어디를 보더라도 “하늘나라”나 “지옥,” 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다루고 있는 “요한복음 5:24”에 연결될 만한 언급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앞선 문맥인 “로마서 7장”에서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안에 공존하고 있는 “두 성품” 사이의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롬 8:1)은 어떤 경우에라도 『영원한 정죄의 위험』(막 3:29)에 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정죄”도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하면 “징계”에 따른 “일시적 정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의 이어지는 문맥에서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13절)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영원한 정죄”를 받지 않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육신”을 따라 행할 때 “일시적 정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2,23). 『사람이 자신을 살펴보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하리니 이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라.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일시적 정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영원한 정죄] 않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11:28-32). 중요한 것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롬 8:1) 행하는 성도는, “영원한 정죄”든, “일시적 정죄”든, “어떤 형태의 정죄”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주의 말씀들”을 모두 갖고 있어야 하는데, 시편 12:7에서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말씀들』은 『주의 말씀들』이며,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은 『순수한 말씀들』이다(시 12:6). “순수한 성도들”은 그 마음이 『순수한 말씀들』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주의 말씀이 매우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그것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40). “성경 변개자들”은 물론, 삭제되고 첨가되고 “(없음)”이라 표기된 구절들을 보면서도 어떤 심각성도, 의로운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교인들은 “순수하지 못한 자들”로서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기에 결코 “정죄”를 피할 수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