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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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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1월호>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Q
안녕하세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4 에서 “your election of God”이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선택하심을 아노라"로 번역되어야 되지 않나요?
A
먼저 질문하신 데살로니가전서 1:4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Knowing, brethren beloved, your election of God).
이 구절에서 질문하신 표현은 단지 "election of God"이 아니라 "your election of God"입니다. “election of God”은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읽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선택은 “너희의 선택”(your election)이 우선적이며 of God은 2차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of의 용법이 단지 소유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격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번역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표현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하면 "your"를 제대로 번역할 수 없습니다. 이 표현은 “너희의 선택”인데, 무엇을 선택한 것인가 하면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즉 “너희의 선택”과 “하나님에 대한”(하나님을)이라는 표현이 하나로 결합되는 의미로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선택”이며, 완성된 문장으로 번역하면 <한글킹제임스성경>에 기록된 대로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목적에 맞게 선택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아직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선택(elect 혹은 election)이라는 용례를 찾아보면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롬 8:33, 골 3:12, 딛 1:1, 벧전 1:2, 요이 1:1,13). 이런 점에서 칼빈주의 5대 강령 중에서 제2강령인 무조건적인 선택은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비성경적입니다. 칼빈주의에서 가르치는 한 개인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택은 성경에 없습니다. 이 구절을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처럼 하나님께서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번역하면 비성경적인 칼빈주의 교리에 짜맞추는 번역으로 성경을 변개시키는 것이 됩니다.
반면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죄인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둘 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1장의 전후 문맥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죄인이었을 때, 즉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그들이 죄인의 상태에서 전파된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6,9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성령의 기쁨으로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그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었으므로』(살전 1:6).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서...』(살전 1:9). 이런 구절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들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도 성경에 나오는 성경적 교리이며, 사람들의 선택도 성경적 교리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1:4은 설명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BB
“왕의 두려움”은 “왕에 대한 두려움”
Q
잠언 20:2의 『The fear of a king is as the roaring of a lion』이 한글 번역에서 『왕의 두려움은 사자의 포효와 같으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서의 fear가 뜻하는 바가 “왕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인지 그런 속성이 있다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 fear에 대한 한글 번역이 두려움이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으로의 번역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A
잠언 20:2 전체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의 두려움은 사자의 포효와 같으니, 누구라도 그를 노하게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혼을 거슬러 죄를 짓느니라.』
이 왕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누구라도 “그를,” 즉 “그 왕”을 노하게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혼을 거슬러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인간 왕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인간 왕을 노하게 했으나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히 11:27), 그것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혼을 거슬러 죄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두려움”은 왕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될 수 없으며, 이 두려움은 “사람들이 갖는 왕에 대한 두려움”으로, 왕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분임을 알려 줍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공의 등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십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잠언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되면, 즉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게 될 때 당연히 두려워하게 됩니다. 왕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이 왕은 잠언 20:8의 “심판의 보좌에 앉은 왕”입니다. 『심판의 보좌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 버리느니라.』
요한계시록 5:5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잠언 20:2에서 말씀하는 “사자의 포효”는 심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해야 함을 잘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잠언 19:12에 유사한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의 진노는 사자의 포효 같으나, 그의 은총은 풀의 이슬 같으니라.』 왕은 단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왕의 진노는 요한계시록 6:16,17과 데살로니가전서 5:1-6에 기록된 진노입니다. 이것은 또한 침례인 요한이 말했던 진노이기도 합니다(눅 3:7). 반면 『그의 은총』(잠 19:12), 즉 “왕의 은총”은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세워짐으로써 나타나게 됩니다.
한편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fear”에 대한 다른 번역이 가능한가를 질문하셨는데, "fear“는 <한글킹제임스성경>에 기록된 대로 “두려움”이 적합한 번역입니다. <개역성경/개역개정판>은 ‘진노’로, <표준새번역>은 ‘노여움’으로 번역했는데, 모두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