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교계 비평 분류

구원의 커트라인?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5월호>

요즘에 잘 나가는 기독교 서적 중에 상하권으로 되어 있는 <구원의 커트라인>이라는 책이 있다(신만철 목사 저, 베드로서원). 얼마 전까지 이 책은 기독교 유명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필자는 그 책이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썼길래 600페이지를 넘게 썼는가, 굳이 구원에 대하여 600페이지를 넘게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책을 읽게 되었다. 필자가 아는 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한 페이지도 안되는 전도지를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커트라인”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아 분명히 구원의 기본이 되는 내용들을 쓴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분량으로 설명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600페이지 이상이나 되는 내용을 읽고 필자가 느낀 것은 그 책의 내용이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믿음으로 단순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나 어렵게 그 구원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의 주장을 직접 인용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구원을 얻기는 쉬워도 구원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즉 한 번 얻은 구원이지만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상실되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하권, 13쪽)
“의롭게 됐다고 할지라도 의를 지키지 못하고 옛적 죄악된 생활로 돌아가면 구원도 상실되고 영적 죽음, 즉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하권, 14쪽)
“그 길은 죄악으로 천국행 열차가 갑자기 지옥행 열차로 바뀐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히 6:4-6).”(하권, 14쪽)
“우리는 꼭 구원이 도중에 상실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이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믿음을 깨버리면 사탄의 자녀로 전락해버립니다...끝까지 이기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마 24:13).”(하권, 16-18쪽)
“지금은 내가 구원받아 천국의 시민권을 부여받았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 예수를 믿지 않으면 천국시민권은 취소되어 버립니다. 끝까지 구원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당신이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불의를 행하면 천국을 상실한다고...”(하권, 24쪽)
“이처럼 성령의 사람도 자칫 악령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삼상 16:14)...”(하권, 22쪽)
“비록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성경을 확인하지 못하면 언제 구원을 상실할지 모릅니다.”(하권, 28쪽)

이 책의 저자가 범하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믿는 데 있다. (필자가 알기로 저자는 분명히 장로교 목사인데 그는 이상하게도 알미니안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특히 사무엘상 16장의 사울 왕의 예를 들면서 성령이 임했다가 떠나가신 후 악령이 임하는 모습을 가지고 성도가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차이도 인식하지 못하는 생각이다.
구약과 신약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그 중에 성령님의 사역이 차이나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 임하셨다가 다시 그 사람을 떠나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사울의 경우가 그랬고, 우리가 잘 아는 삼손의 경우도 그랬다. 특별히 삼손은 성령이 떠나셨다가 다시 돌아오신 경우이다(판 3:10; 6:34; 11:29; 13:25; 14:6,19; 15:14,19). 다시 말해서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 개인의 영 속에 내주하지 않으시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임하셨다가 떠나기도 하셨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신약성도들의 경우는 다르다. 성령께선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엡 1:13-14; 4:30, 고후 1:22, 롬 8:9-11, 고전 6:19). 이것은 구약성도들과 구별되는 신약 성도들의 특권인데, 아무도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 비록 그가 죄를 범한 상태에서 회개하지 않고 죽는다 할지라도, 이 경우 상급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한 번 받은 구원만큼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
마태복음 24장을 예로 들어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고 말한 것도 문맥을 벗어난 사사로운 해석이다. 마태복음 24장의 전체적인 문맥은 대환란이다. 그러므로 거기서 말하는 “끝”은 개인의 삶의 끝, 즉 죽음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기간의 끝, 즉 대환란의 끝을 말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장에서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 때 남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마태복음 24:13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하지만 14절에서는 곧이어서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고 말하고 있어 문맥적으로 이 “끝”이 어떤 일정한 기간의 끝임을 말하고 있다. 만약 이 “끝”이 개인의 삶의 끝을 말한다면 왕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된 이후에 각 개인들이 죽는다는 말이 되는데, 그것은 전혀 올바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해석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받은 구원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구원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구원을 지키는 방법의 하나로서 교회출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는 교회에 나와야 구원이 있다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하권, 161쪽)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에 나와야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곳은 없다. 교회 출석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도들 간의 교제를 위해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자원함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구원을 얻거나 또는 구원을 유지하는 조건은 되지 못한다. 더욱이 성경대로 믿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데, 아무 교회나 출석하면 구원을 유지한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어떤 교회는 구원의 복음을 전해 죄인들을 구원시키지만 어떤 교회는 죄인들을 구원시키기는커녕 거짓 교리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믿음마저도 파괴시켜 버린다.

그는 죄인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신약성경의 방법대로 믿음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사도신경이나 세례 등 교회의 전통과 성례전에 의존하는 것으로 구원을 가르친다.

“사도신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상권, 311쪽)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라는 질문은 ‘세례받았습니까?’라는 말과 같습니다.”(상권, 316쪽)
“세례를 받은 사람은 천국시민이 된 것입니다”(상, 304쪽)
“세례는 구원받은 자기 확증이며, 스스로 믿음을 확인하는 증표가 된다는 것입니다.”(상권, 301쪽)

그러나 믿음은 사도신경을 고백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것이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 사도신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은 사람은 사도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중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오히려 사도신경의 카톨릭적인 요소 때문에 사도신경을 예배시간에 암송하지 않는 교회가 많은데, 그러면 그 교회들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또 요한복음 3장에서의 물은 결코 세례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례로 거듭난다는 교리 때문에 로마 카톨릭은 태어날 때부터 아기들에게 물뿌려 “유아세례”를 주는데, 그 아기들 중 대부분은 그들이 자랐을 때 믿음의 고백을 자기의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믿음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학습과 세례 문답을 받고 물뿌려 세례를 받는다 할지라도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통해 중생하게 된다고 결코 가르치시지 않았다. 아무리 자연적인 물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사람 속에 영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물은 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제시한 몇가지 사항들을 통해서 간단히 알 수 있듯이 <구원의 커트라인>의 저자는 전혀 성경적인 구원관을 제시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주장만을 제시했다. 그는 성경의 문맥을 사사롭게 해석했고, 교회의 전통들에 의존했다. 만약 그가 제시한 내용이 참으로 구원의 “커트라인”이라면 과연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으며, 구원의 영원한 보장 가운데서 안심하고 주 안에서 쉴 수 있겠는가? 그의 “커트라인”은 일류 대학의 커트라인 보다 훨씬 높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주신 구원을 결코 다시 빼앗지 않으신다. 『이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롬 11:29).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롬 6:23)은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영원히 거한다. 이것은 성령께서 친히 증거하시는 바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롬 8:16).
이러한 거짓 교리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교인들이 얼마나 구원에 관한 기본 교리에 있어서 무지한가를 드러내주는 증거이다.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확신이 없기에, 아니면 대부분 구원받지 못했기에 이러한 거짓된 구원론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만약 <구원의 커트라인>을 읽고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성경에 비추어 진정으로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전체 927 / 44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