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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성 70주년에 터져 나온 “성령”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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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2월호>

한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교수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절대 희망을 외치는 강력한 성령운동으로 세계 교회사에 큰 영향을 끼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 이하 기하성)가 창립 70주년을 맞았다.”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기하성은 지난 11월 1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창립 7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한국교회 회복과 열방의 복음화에 다시 한번 쓰임받기를 소망했다고 하는데, 그날 “진정한 부흥(행 2:37,38)”을 주제로 한 이영훈 목사의 설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흥의 놀라운 능력은 하나님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고 기도할 때 임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회개가 우선이다. 교회가 영적 능력을 상실하고 세상으로부터 비판받게 된 이 때, 첫사랑의 열정이 회복되길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1970-80년대를 지나며 놀라운 부흥으로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한국교회는 88올림픽 이후 35년간 제자리를 걷고 오히려 쇠퇴했다. 풍요와 탐욕, 교권주의로 분열되고, 다툼과 시기, 질투, 고소, 고발이 한국교회를 뒤덮었다. 선교를 위해 쓰여야 할 돈이 선거비로 쓰이고 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회개할 때 빈 마음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이제 기하성은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2만 교회, 300만 성도를 향해 나아간다. 향후 10년간 이전에 보지 못한 부흥이 한국교회에 임하길 함께 기도하자.”


언론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축하 영상 메시지도 있었다.
“전쟁 후 어려운 시기에 복음으로 희망을 주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보였다.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다. 앞으로도 오직 예수 오직 성령으로 시대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길 소망한다”(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
“기하성이 장로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오직 성령,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1953년 한국전쟁 후 주저앉은 국민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절대 희망의 메시지로 일으켰다. 다시 한번 이 민족과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힘써 달라”(예장 합동 오정호 총회장).
“나는 1970년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다 성령의 불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78년부터 4년간 이 대성전 구석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다. 절망의 땅에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뜨거운 불을 붙여 주신 것에 감사한다. 침체기에 처한 한국교회에 다시 한번 성령의 불을 붙여 달라”(예장 통합 김의식 총회장).


독자는 기하성 70주년을 축하한 교단들의 “총회장”과 “감독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에 유독 “성령”이 눈에 띄게 강조되는 것을 눈치 챘는가? 이것이 한국교회 목사들의 뇌리에 각인된 “기하성”이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적 들러리에 불과하며, 오직 “성령”을 영화롭게 하는 데만 급급하다. 성경에 성령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오셨다고 써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요 16:13,14).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고 오신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려고 오신 것이다!


자유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이 여의도순복음교회 때문이라는 실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착각을 하는 목사들이 위와 같은 진리를 알았겠는가?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기하성이 무엇을 가르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성령에 관한 쓸데없는 망발을 일삼았다. 특히 “예장 합동 오정호 총회장”이 했던 말은 그 일의 중심인데, 그는 “기하성이 장로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오직 성령,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라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말하는 “성령”과 장로교회가 말하는 “성령”이 같다는 것인가? 필자가 볼 때 그 두 “성령”은 “서로 다른 영”이며,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님이 아니다. 오 목사는 심지어 “하나님의 절대주권”까지 거론함으로써 여의도 측이 장로교의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의 이 “어설픈 축사”는 한국교회 목사들의 성경 지식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먼저 오정호 목사의 장로교회에서 가르치는 성령론을 보도록 하자. 성령님에 관한 일반적 교리는 어차피 진리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므로 거론할 필요가 없다. 성령님에 관한 그들의 무지는 교단 신학교와 소속 교회들에서 가르치는 칼빈주의 5대 강령 중 제4강령, 곧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으로 되어 있는데, 제4강령 “저항할 수 없는 은혜”는 제1강령 “전적 타락”에 기반을 둔 이단 교리이다. 전적 타락은 인간의 타락이 그의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스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지가 무능력해졌다”는 교리이다. 그렇기에 전적 타락을 “전적 무능력”이라고 해석해서 부르기도 한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옥으로 예정”하셨다고 가르친다(이중예정론).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에 대해 창세전에 “영원한 판결”을 내렸기에 그 판결을 번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구원으로 예정되었다는 사람들에 대한 칼빈주의의 구원 계획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귀결된다. 즉 어떤 사람들을 구원으로 선택하고(무조건적인 선택) 그들을 위해서만 십자가에서 속죄하신(제한적 속죄) 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들을 저항할 수 없게 압도하심으로써 그들을 강제로 거듭나게 하시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교리와 관련된 성령의 “위대한(?)” 사역이다.


칼빈주의자들의 위와 같은 주장은, 의지가 무능력해진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는 판단하에 성경을 그들의 논리에 억지로 꿰어 맞춤으로써 나온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인간에게 “의지가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죄로부터 돌이키라고 명령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를 찾을 만한 때에 너희는 주를 구하며 그가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악인은 자기의 길을, 불의한 사람은 자기 생각들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사 55:6,7). 의지를 사용해서 돌아올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죄인들에게 스스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겠는가! 『땅 끝들에 있는 모든 자들아,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너희가 너희의 온 마음으로 나를 찾으려 하면 너희는 나를 찾게 되고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이 무지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니라』(행 17:30). 자, 그렇다면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성령에 관해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가?

여의도 측이 가르치는 “성령”은 장로교회에서 가르치는 “성령”이 아니다. 순복음은사주의 교회들에서 역사하는 “성령”은 장로교회에서 역사하는 “성령”처럼 일하지 않는다. 순복음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창세전에 구원으로 예정하고 누군가를 지옥으로 버려 버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같은 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순복음은사주의는 “성령세례”(바른 표현은 “성령침례”)의 증거가 방언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후에 “성령을 한 번 더 받아” 방언을 해야 주님을 능력 있게 섬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령침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 것인가? “성령침례”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날 때 성령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잠기는 것,” 곧 “침례”로 표현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고린도전서 12:13은 “성령침례”에 관한 유일한 말씀이며, 여기서 “방언”은 단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성령침례는 죄인이 구원받을 때 받는 영적 침례일 뿐이다. 방언과 성령침례를 동시에 연관시키는 순복음은사주의는 사실 성령님과 무관한 방언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죄인의 구원과 관계없는 다른 침례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성령운동”을 주도하는 순복음은사주의자들은, 구원받을 때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을 또다시 받아야 하며 그 증거가 방언이라고 가르쳐서 그들의 교인들이 방언을 하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방언은 사도들의 시대에 실행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고전 1:22). 『방언들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지만』(고전 14:22). 성경적인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었으며, 은사주의자들의 뜻 없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태어난 곳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행 2:8) “외국어”였다. 유대인을 위한 것을 이방인이 취하면 그것이 바로 “사탄의 일”이다(계 2:9; 3:9). 악령이 발설케 한 거짓 방언으로 사도들의 표적을 흉내내는 자들이 바로 “은사주의자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두 번 받는 일은 없으며, 방언이 성령침례의 증거도 아니다. 장로교회는 여의도처럼 가르치지 않는데도 오 목사 왜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어서 그의 말을 들은 자들을 오염시켰는가? 이유는 단 한 가지, 성경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성령을 가장 모르는 자들이 순복음은사주의자들이고, 그에 버금가게 모르는 자들이 그들의 실행을 인정하는 배교한 교회들이다. 성령님께서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셨다. 결코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는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성령을 이야기함으로써 “악령”이 춤추며 좋아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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