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기자의 논단 분류

세상의 인기나 바라는 세속화된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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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2월호>

교회가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서 “인기투표” 점수를 받는다면 몇 점을 받아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100점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면 세상에 좋은 “인상”을 주고 세상의 “인정”을 받아 “인기”를 누리게 될 것이므로, 인기투표 100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일 것이다. 많은 교회들과 교인들이 “좋은 점수”를 위해 교회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있다. 성경은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딤후 3:12)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세상과 친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친구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세상과 친구가 되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원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라면 그 교회는 당연히 세상에서의 인기투표 점수가 “0점”이어야 한다.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스스로 나서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의 인기투표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한국 기독교계는 세상 설문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에서 2020년부터 실시해 온 “한국 5대 종교에 대한 국민 호감도 설문조사”에 매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매년 말에 실시하는 이 “호감도” 설문조사에서 2023년 한국 5대 종교에 대한 국민 호감도 결과는 불교(52.5점), 천주교(51.3점), 개신교(33.3점), 원불교(29.4점), 이슬람교(14.3점) 순이었다. 기독교 신문사들은 이 설문조사를 기사화하면서, 개신교에 대해 49점 이하의 낮은 호감도를 갖고 있다는 반응이 전체 응답자의 59%로 높게 나타났고, 특히 24점 이하의 매우 부정적인 호감도를 보인 응답자가 49%로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달했다는 내용도 함께 보도했다.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의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2024년 신년 한국교회에 바란다」는 논평에서 이 호감도 설문조사에 관해 “기독교는 한국 국민들 가운데... 비호감 종교로 감지되고 있다... 세상의 강함과 번영을 추구하지 않고 약한 자를 돌보고... 사회적 공적 선함이라는 십자가 신앙을 실천하자.”라고 말했다. 그는 “십자가 신앙”이 “사회적 공적 선함,” 즉 “세상의 강함과 번영을 추구하지 않고 약한 자를 돌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사회적 공적 선함”을 실천하여 기독교를 세상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종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성경은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골 1:20)라고 말씀하신다. “십자가 신앙”이란 “죄인이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거듭나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지, 그의 생각처럼 “약한 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과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라는 성경 말씀 사이에는 하늘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교회의 사명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 즉 성경 지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교회와 교회의 사명에 대한 “무지”가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오늘날 바른 성경적 교리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를 배격하고 후천년주의나 무천년주의를 믿는 교회들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 기독교가 세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잘못된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는 사명을 다하지 않고, 세상에 기독교 왕국을 세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상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적인 일을 하는 곳이다. 교회의 사명은 지옥에 갈 구원받지 않은 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올바른 말씀으로 양육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영적 전쟁을 수행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 교회는 세상과 “원수”가 되는 것이지 결코 세상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들이 교회의 사명이 아닌 것에 목소리를 높이고 열정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사회 개혁 운동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많은 교회들이 그 운동을 기독교계의 사명인 것처럼 목소리를 내며 무지한 교인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회장인 윤창섭 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지켜야 할 가치로 생명, 평화, 정의를 꼽은 바 있다. 작년 취임사에서 그는 “생명은 캄캄하고 차가운 어둠 끝에도 새 아침을 열어 낸다. 종잡을 수 없이 가파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기후 재난, 인류적 위기를 몰고 온 역병의 재난, 부와 가난의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양극화는 우리 사회에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기후 위기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교회의 다각적 참여를 확대시켜 나가겠다.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는 전쟁의 막다른 길이 아닌 평화와 생명의 길을 택하도록 헌신하겠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주변인들을 외면하고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에서 빈곤과 소외,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생명”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사명을 복음과 진리의 전파가 아닌 사회 개혁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총무 김종생 목사는 신년 인사에서 “2024년 새해를 우리의 주제 ‘생명의 하나님, 사랑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로 시작한다... 생명의 하나님을 부르는 이유는... 지구촌 곳곳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이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배타적 편익만 추구하는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난으로 나타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위한 탄소중립실천은 우리가 해야 할 책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므로 생명의 하나님과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기후 재난을 극복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생명”과 “기후 재난”을 억지로 연결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교회의 사명인 “복음과 진리의 전파”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계의 목사들이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생명 경시” 풍조는 오히려 복음을 무시하는 목사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죽어 가는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요 3:16, 롬 5:8)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셨다(엡 5:6, 골 3:6).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다고 하셨다(요일 2:15).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셨으며(요 17:9), 오히려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7:14).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신은 마귀이고(고후 4:4),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세상 사람들은 호감이 아닌 박해로 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딤후 3:12). 그런데도 왜 한국 교회들은 그와 같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가? 그런 자들이 과연 하나님의 교회인 것인가?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내게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는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정녕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전 9:16)라고 말했다. 교회의 사명은 사회 변혁이 아니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과 진리의 전파이다. 교회라면 이 점을 명심하고 세상에서 인기나 얻으려고 하지 말고 복음과 성경의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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