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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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살된 아브라함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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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7월호>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800개의 예언이 있고, 신약성경에는 200개 정도의 예언이 있다. 구약성경의 예언들 가운데 333개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상세히 예언하는데, 성경에서 최초로 “선지자”로 언급되는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는 선지자니,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네가 살 것이라』(창 20:7).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예언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같은 선지자를 세우신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예언”을 하시기 위함이다.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는 우상들과 달리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렘 10:10)이심을 증명하기 때문이다(사 46:9-11).

성경의 예언은 성경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는데, 그 예언들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그분에 관한 예언들의 성취 또한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는 핵심적인 지표가 된다. 『또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다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참되신 그분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참되신 그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노라.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니라』(요일 5:20).

선지자의 특징은 그가 예언한다는 사실에 있지만, 백성들이 그 예언들을 하찮게 여긴 탓에 선지자들은 존중을 받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초림 때 선지자로서 사역하셨고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적과 말씀에 권능을 가진 선지자이셨으나, 특히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언이 그것을 더디 믿는 자들에 의해 하찮게 여겨졌다. 그것도 그분의 제자라는 이들에게서 그런 대우를 받으셨으니 세상의 죄인들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무서워서 땅에 엎드려 있을 때에, 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는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주께서 갈릴리에 계셨을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나 기억하라.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야 하겠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며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야만 하리라.’고 하셨느니라.”고 하더라. 그들이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와 이 모든 일을 열한 명과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더라... 그들의 말이 사도들에게는 하찮은 이야기로 여겨져서 그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라』(눅 24:5-11).

이처럼 예언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은 온 세상에 충만하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온 적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나타내셨다. 성령님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되었으며,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진리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고전 2:9-13). 교회 안에는 말씀과 말씀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연인들도 끼어 있어서(고전 2:14,15) 성경의 진리에 관해서 혼란이 야기되기가 쉽다. 전자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후자는 성경의 진리를 증오하는 더러운 영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 그 특징인데, 성경을 믿지 못해서 그 말씀들을 변개시키는 자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영의 인도를 받기에 동일한 구절들에서 동일한 변개를 가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였다. 선지자라면 예언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예언이 어디에 들어 있는가? 바로 창세기 22:8이 아브라함이 했던 최초의 예언이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창 22:8). 선지자의 이 예언은 그의 아들 이삭이 『나의 아버지여... 불과 나무를 보소서. 그런데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라고 물었을 때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라는 예언은 성경 변개자들에 의해서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유주의자들의 이러한 불신은 전체 교회들에 전염되어 교회들은 그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아브라함의 그 예언은 220종 이상의 현대 역본들에서 변개되었는데, 믿음 없는 교회들이 그 역본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읽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아브라함의 예언과 관련하여 바른 성경과 변개된 성경들을 비교한 것이다. 우선 한글 성경들을 보도록 하자.

한글킹제임스성경 -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한글개역성경 -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보다시피 바른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변개된 개역성경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번제할 어린양을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어 성경들은 어떠한가?

KJV -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NKJV -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그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이다.)
NIV -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이다.)
ESV -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그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이다.)
NASB -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그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이다.)

당신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킹제임스성경>을 대적해서 동일한 유형의 변개를 가했는지 알고 있는가? <킹제임스성경>의 원래 번역을 그대로 놔둔다 해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그 어린양을 마련하실 것이다.”라고 읽힌다면 왜 그들이 그 번역에 손을 댔겠는가? <킹제임스성경>의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이 <한글킹제임스성경>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라고 읽히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그 점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himself를 for himself로 바꾸거나, 아예 himself의 위치를 옮겨서 God himself(하나님께서 친히)로 변개시키든지 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는 진리를 피해 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신다면 그것은 갈보리 십자가에 대한 예언이 되고,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자들이 그 의미가 명백한 위대한 예언을 묵살하고 다른 의미로 왜곡시켜 버린 것이다! 가짜 흠정역을 펴낸 정동수는 어떠한가? 그 역시나 성경 변개자들의 본을 따라 그의 흠정역에서도 동일하게, 그것도 영어 사전의 용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 변개를 가했다.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흠정역). “영어 사전”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두고서 말씀을 변개시킨 자가 어떻게 하나님께 승인받은 성경 번역자이겠는가!

성경 변개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교회들이 모르는 것은, 첫째, 아브라함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언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라는 말씀은 선지자 아브라함의 최초의 예언으로서, 그는 신약의 『하나님의 어린양』에 관하여 예언적으로 말했다. 『그 다음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요 1:29). 침례인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는데, 이는 예수님을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의 제단에 드려질 제물로서 제시한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라는 아브라함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딤전 3:16) 바로 그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자신을” 친히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주실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벧전 2:24).

선지자 아브라함은 십자가에 친히 매달리실 하나님, 곧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관해서 예언했다.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친히 담당하셨던 하나님의 어린양께서는 그 뒤 셋째 하늘로 돌아가시어 찬양을 받고 계신다. 『내가 또 보니, 그 보좌와 짐승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라고 하더라』(계 5:11,12). 갈보리 십자가에서 “도살당하신 어린양”은(계 5:6) 셋째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그분의 몸을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드리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예언했을까 하고 의심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 발라암의 예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발라암은 무아지경에 빠져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브올의 아들 발라암이 말하며 눈을 뜬 자가 말하였나니,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은 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안 자, 전능하신 분의 환상을 본 자, 무아지경에 빠졌으나 자기 눈을 뜬 자가 말하였도다. 내가 그를 볼 것이나 지금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볼 것이나 가깝지 않도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며[초림, 마 2:2] 한 홀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서, 모압의 구석구석을 쳐서 셋의 모든 자손들을 멸망시키리라[재림]』(민 24:15-17).

구약의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예언하곤 했다. 그들은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예언했는데(벧후 1:21) 선지자 자신은 그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 구원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던 것이며,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 그들이 행한 사역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고 이것이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으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이제 전해졌으며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니라』(벧전 1:10-12).

성경 변개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교회들이 모르는 두 번째 사항은, 성경 전체에서 창세기 22장이 갖는 중요성이다. 창세기 22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에 관한 진리가 장 전체에 포진되어 있다.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2절)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제물로 바치는 것을 예표한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러 가는데도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아들과 함께 돌아오리라고(5절) 말한 부분은 이삭의 부활에 관한 것으로서, 이 일은 제단에서 칼로 죽이려 하던 이삭을 하나님께서 막으시어 그를 “모형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히 11:19) 것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다. 또한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을 이삭 대신 번제로 바친 일은(13절)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말하자면 여기에 더하여 십자가에 관한 “선지자 아브라함의 예언”이 주어진 것이다! 고로 창세기 22장은 “십자가의 장”이다. 십자가는 마귀의 멸망을 확정했다. 생각해 보라. 마귀가 창세기 22장을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창세기 22:8을 뜯어고친 자들이 과연 누구의 편이겠는가!

창세기 22:8을 변개한 현대 역본들과 자칭 흠정역은 하나같이 “어떤 영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것이며, 그 영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성을 싫어하는 더러운 영이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딤전 4:1,2). 변개된 성경들에서 뿜어 나오는 악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고 십자가의 피를 희석시켜서 그 왜곡된 책들을 읽는 자들을 마귀들의 교리들로 오염시켰다. 그들이 <킹제임스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말씀을 읽고서도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이 죄로 명철이 어두워진 마귀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요 8:43,44). 죄로 찌든 마음으로 암흑 속에서 행하는 자들이 성경을 번역하겠다고 나섰는가? 바른 말씀의 바른 번역을 조롱하는 자들은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지만 깨닫는 자에게는 지식이 쉽다(잠 14:6). 성경은 아무나 번역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손을 대면 댈수록 그들이 들어가야 할 지옥의 깊이만 깊어지게 된다. 그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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