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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선택할 자유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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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4월호>
오늘날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본래의 의미가 퇴색한 용어들이 많다. 그중 “신앙”이란 용어는 종교적 색채를 띤 믿음 또는 신념 등으로 여겨지는데, 올바른 의미의 신앙이란 “창조주를 숭앙하는 믿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믿음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새벽기도회에 가서 기도하고, 방언하고, 철야기도하고, 금식하는 일들은 신앙이 아니라 육신적인 종교 행위요 헛짓이다.“종교” 역시나 참 하나님, 곧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시며 심판주이신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도 한 종류이고, 종교도 한 종류이다. 그것은 에큐메니즘과 같은 오합지졸에 이합집산하는 자들의 모임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라고 해서 초교파니,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라느니, 카톨릭과 이슬람교의 화합이라느니(마귀의 종들은 다 한통속이다!) 하는 소리들은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아니다.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필그림들이 주창했던 “종교의 자유”는 하나님께 경배드릴 자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선진들의 뜻을 저버린 오늘날의 미국은 인종의 도가니를 넘어 종교의 도가니가 되었다. 불교 사원, 이슬람의 모스크들이 우후죽순처럼 지어지고 있다. “God Bless America!”(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시기를!)의 “God”이 하나님인지 잡신인지 의견이 분분해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킹제임스성경>을 버린 영국은 진즉 삼류 국가가 되었고, NASV와 NIV의 나라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슈퍼파워가 아니다.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교의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 곧 하나님을 잊어버린 민족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시 9:1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고 죄 사함 받았으며 영생의 소망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는 일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중 몇몇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명령이 아니다.
“어떤 성경으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다. “어떤 성경”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성경은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만을 쓰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영감으로 기록하셨고(딤후 3:16,17, 벧후 1:21), 섭리로 보존하셨다(시 12:6,7; 119:89, 마 24:35).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을 통해서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들을 영감으로 기록해 놓으신 집성체이다. 순수하시고 신실하시며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신 것이다.
반면 이 일을 누구보다도 싫어하고 혐오하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거짓말의 아비인 마귀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발휘하는 능력을(히 4:12) 알기 때문에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떨기까지 한다(약 2:19). 마귀는 자신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에덴의 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왔다(창 3장). 마귀는 모방의 귀재이다(고후 11:1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영과 마귀의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영적 전쟁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데, 이 계시는 먼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를 낳으며, 이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롬 1:16). 그러므로 이 영적 전쟁에서 사탄이 주로 파괴의 목표로 삼는 것은 성경의 원문이요, 또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다. 성경은 성도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위이며, 그 권위는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이기 때문에, 사탄은 이 권위를 혼란시키고 이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대로 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되도록 수호하는 데 앞장선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자기 앞길을 비추는 빛과 등불로 삼기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빛들로서 세상에서 비추는 자들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성경 곳곳에 약속해 놓으셨다.
신약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숱한 피를 흘렸다. 에베소에서 스머나, 퍼가모, 두아티라, 사데 교회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는 갖가지 방법으로 잔인하고 악랄하게 전개되었다. 정말로 눈앞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시뻘건 핏자국이 남은 발자취를 따랐던 것인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의 속박에서 구속해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당시 절대 권력이었던 로마카톨릭의 통제하에서 “이단” 소리 듣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암흑시대를 지나오며 다양한 이름들로 불렸지만 그들의 뿌리는 동일하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함께했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들의 생명을 내어놓았던 것이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들에게 약속하신 주님께서 신실하심을 믿었기에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붙들었다(히 10:23).
어떤 성경이 출간되었다면 그 성경이 왜 세상에 나와야 했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故 이송오 박사는 성경 번역과 출간의 목적에 대해서 <한글킹제임스성경>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성경을 번역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 있게 하자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구약의 번역은 처음부터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을 영어로 온전히 전수한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였고, 신약은 처음에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직역했으며, <킹제임스성경>과 대조하여 <킹제임스성경>에 철저하게 어휘를 맞추었고, 구약의 어휘는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과 비교, 투영시킴으로써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데 불가피하게 생길 수 있는 언어의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였다... <개역한글판성경>으로 익숙해져 버린 문화적 및 전통적 통념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성구사전(Young’s Concordance)의 어휘만을 획일적으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본 성경의 어휘로 새로운 성구사전을 만든다는 자세로 어휘의 통일성과 더불어 의미의 전달에도 중점을 두었다... 히브리어든 헬라어든 영어든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모두가 외국어이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어로 잘 번역된 한글 성경만이 쓸모가 있는 것이며, 그 성경만이 하나님의 절대권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절대무오한 말씀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이제야 한글로 보존된 성경을 갖게 되었다... 이 성경이 나옴으로 해서 지금까지 <킹제임스성경>을 인용하여 기록된 수많은 문헌들이 제한받지 않고 번역되고 출판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런 책들이 나와서 성도들의 손에서 읽혀질 때, 자유주의 신앙도 사라지게 되고, 거짓 목사, 학자들도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비로소 이 땅에 그렇게 바랐던 참다운 개혁의 물결이 일 것이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게 될 것이다.」
한 인간이 구원받는 데 있어서 “성경”은 필수 요건이 아니다. “성경을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심으로써 나의 모든 죄가 깨끗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것은 없다. 변개된 개역성경의 몇 구절들을 보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올바른 성경인 양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이다.
신앙은 가족의 것도 아니요, 교회의 것도 아니고, 교단의 것도 아니다. 신앙은 실로 개인적인 것이다. 목사의 아들이라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소위 모태 신앙이라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구원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그렇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믿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면 하나님께서 조명을 비춰 주시는 것이다. 이송오 박사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13년간 번역하여 출간하게 된 이유는 36,000군데가 변개되고 신약에서 2,200단어가 삭제된 개역성경을 도저히 하나님의 바른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역성경이 마귀가 변개시켜 놓은 저작들에 기반을 둔 것을 안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었기에, 이송오 박사는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서 성경을 번역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성경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듣고서 정말로 “빵” 터져 버렸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요즘 시대에도 바른 성경을 읽으면 마치 저 옛날 사데 시대처럼 카톨릭에게 박해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한글킹제임스성경>만 읽어야 한다고 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져서 그러는 것인가? <한글킹제임스성경>만 읽으면 죽을병에라도 걸리는 것인가? 대답해 보라. 인간에게는 성경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예수님에 관한 온전한 계시의 책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거부할 권리를 주신 적이 없다. 바른 말씀을 택하지 않고 “나에게 성경 선택의 자유를 달라!”라고 부르짖는 자들은 바른 말씀의 진리가 주는 자유를(요 8:32) 거부하고 변개된 성경의 거짓에 속박되어 버린 자들이다. 개역성경은 마귀가 그의 종들을 써서 만들어 놓은 졸작이다. 그런 성경을 쓰면서도 교회라고 불리며 십자가를 세워 놓고 종교 놀이를 하는 것이 현 교회 시대의 끝을 장식하는 라오디케아 시대 교회들인 것이다. 그들은 진리에 관해서 “짖지 못하는 개들”이다. 『그의 파수꾼들은 눈멀었고, 그들은 모두 무지하며, 그들은 모두 말 못하는 개들이니 그들이 짖지를 못하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느니라』(사 56:10). “성경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라니! 그 말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