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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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하지 못하는 “가짜 부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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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8월호>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이니 이들을 위하여 흑암의 안개가 영원히 간직되어 있느니라』(벧후 2:17).

교회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경에 비추어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엄격하게 평가하여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씩 틈이 생기고 갈라져서 쓸모없게 된 건축물처럼 “철거 대상”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교회에 영적인 틈은 없는지 늘 주시하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개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여해야 하는데,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 개개인도 자신을 점검하고 성경에 비추어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개선하지 않으면 발전은커녕 오히려 도태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교회에 누가 되는 비참한 교인으로 전락함으로써, 실로 깨닫지 못하는 짐승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시 49:20).

교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성도는 누구인가? 자기를 성경대로 올바로 성찰할 줄 아는 성도이다. 성경에 비추어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성도만이 영적 시력이 유지되어 교회의 사역에서 부족한 부분을 올바로 판별할 수 있다. 믿음이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성도가 교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담임목사 한 사람의 설교가 교회의 체질을 개선하여 강성한 교회로 만들 수 있고, 그러한 목사와 동역하는 성도들의 헌신적인 협조로 더 많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교회의 수준은 성도들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그렇기에 교회의 부흥은 성도들의 부흥을 통해서만 이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흥”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소위 “부흥회”를 열면 교회의 부흥이 저절로 보장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부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부흥의 기초”는 무엇인가?

첫째, 부흥은 “바른 성경”을 통해서만 온다.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하는가? 교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많은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게 되는데,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 바로 “바른 성경”이다. 즉 올바른 결정을 위한 최종 권위가 없으면 그 교회는 난파한 여객선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바른 성경은 “나침반”이며 등대처럼 교회와 성도를 인도하는 “등불”이다(시 119:105).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바른 성경도 없이 부흥을 이루어 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끌어모아 교회를 “기업”처럼 유지하려는 “경영학”적 발상이며, 예배라는 이름의 쇼를 보여 주고 관람료를 받으면서 “다음 주에도 쇼는 계속됩니다.”라며 호객 행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둘째, 부흥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통해서만 이룩된다. 교회는 기업과 같은 조직체가 아니라 유기체, 곧 생명체이다(엡 2:20-22). 그렇기에 지역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성도”여야만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온전히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은 교인들을 “헌금”을 내려고 오는 손님으로 대접할 뿐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설령 담임목사가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자기가 속한 “교단 교리”에 막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런 교회는 사람 수를 늘릴 수는 있어도 영적 생명을 낳을 수는 없다. 죽은 교회인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목사와 영적으로 죽은 교인들이라면 그런 교회는 생명력 있는 사역을 펼칠 수 없다.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데려와서 앉혀 놓은 “공동묘지” 교회인 것이다.

셋째, 부흥은 “질적 성장”이지 “양적 팽창”이 아니다. 많은 교회의 목사들이 교회의 부흥을 이루기 위해 “원칙”에 충실한 교회 운영을 하지 않고 “부흥회”나 “전도 대회” 등을 통한 “교인 수 늘리기”에 연연한다. 이것은 그들이 “돈만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증거이다(딤전 6:10, 딤후 3:2). 부흥은 교회의 구원받은 성도 개개인이 영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그 성도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평소”에 성도들에게 올바른 설교와 성경 공부를 제시하고 있다면, 그 성도들 안에 끊임없는 각성과 함께 개인적인 부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며, 따로 “부흥회”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성경대로 믿는 교회들”이 별도로 “부흥회”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흥의 기초”대로 목사가 “바른 성경”을 최종 권위로 인정하고, 교인들을 “올바른 구원의 복음”을 통해 구원받게 하며(롬 10:9), 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바른 “지식”을 가르치고 매주 영적 각성을 이룰 수 있는 적절한 “설교”를 제공한다면, 그 성도들은 그러한 “계기”들을 통해서 개별적인 “부흥”을 이루게 될 것이며, 그 교회는 별도로 부흥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현재 “부흥하고 있는 교회”임이 분명하다.

모 신문에 「대구․경북지역 초교파 연합 영적각성대성회 - 와 보십시오! 당신의 불가능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라는 광고가 실렸기에 어떤 내용의 행사인가 알아보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대구․경북 영적각성을 위한 예수생애부흥사회 초청 연합대성회」로 행사 명칭이 바뀌어 있었다. “초교파”라는 말이 없어지고, “예수생애부흥사회 초청”이라는 말이 첨가되었는데, 신문 광고에서 “예수생애부흥사회” “주최”로 되어 있었던 것이 인터넷에서는 “초청”으로 바뀌고 누가 “주최”인지 나오지 않아 행사가 엉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생애부흥사회”는 자기들의 부흥회를 「말씀에 따르는 이적과 표적이 나타나는 부흥회」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적과 표적”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은사주의 순복음교회”의 느낌을 표절하는 무지한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적과 표적”은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은사”로서,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면서 중단된 것이다. 그 중단된 은사를 흉내 내는 흉내쟁이들이 무슨 “부흥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당황스럽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은사주의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생애부흥사회”는 연세중앙교회(기독교한국침례회, 서울, 윤석전 목사)의 하위 기관으로서, 여기에 소속된 부흥사들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의 목사들이었다. “은사주의 순복음교회”의 목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연합 기관인 것처럼 모양새를 내려고 한 것 같았는데, 연세중앙교회 홈페이지 안에 “예수생애부흥사회”가 들어가 있는 것과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에게 “총재”라는 명칭을 주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하위 기관임이 분명하다. 소위 침례교회란 곳의 하위 기관에 장로교, 감리교 목사들이 부흥사로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들의 부흥회가 은사주의자들처럼 “이적과 표적이 나타나는 부흥회”로 소개되는 것이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언제부터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가 부흥회에 “이적과 표적”을 내세웠는가? 이것은 “은사주의자”들이 써먹던 부흥회 수법이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예수생애부흥사회” 홈페이지에는 변개된 개역성경의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가 주제 구절로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초림 때 왕국복음에 수반되던 표적을(마 4:23,24) 언급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은사주의자들”은 그 구절을 그들의 “사도적 신앙”이란 것을 뒷받침하여 교인들을 속여 먹기 위해 사용해 온 것이다.

실제 행사 동영상을 보니 처음 30분은 찬송가를 불렀는데, 여러 명이 앞에 나와서 CCM 풍으로 찬송가를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었다. 강사들은 나와서 반은 만담식, 반은 해설식으로 설교라기보다는 강연을 했는데, 나름 영적인 교훈 같은 것을 제시하려고는 하나, 교리적인 정확성도 없고 영적 교훈도 끼워 맞추기식이라 「각성대성회」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각성”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수준이었다. 매회의 강연이 CCM풍의 찬송가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나, “각성”을 일으키지 못하는 강연으로 처진 분위기를 “통성 기도”로 만회하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통성 기도” 역시 “순복음교회”의 예배 순서에 항상 감초처럼 등장하는 주메뉴가 아니던가! “은사주의식”의 “부흥”과 “각성” 레퍼토리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목사들의 부흥회에서 버젓이 등장하는 것은 지난 세월 동안 “은사주의 순복음교회”의 행태가 얼마나 한국 기독교계를 잠식하고 파괴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어쨌든 그들의 「각성대성회」에서 “이적과 표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성대성회」라 이름 붙여진 “예수생애부흥사회”의 “부흥회”가 아무런 “각성”이나 “부흥”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은 “바른 성경”이 없기 때문이다. “바른 성경” 없이는 “성령”의 역사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또한 그들의 강연에는 “구원의 복음”이 없었다. “교리”를 무시하고 “연합”과 “초교파”를 말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성경과 복음에 무지할 뿐이다. 장로교는 “창세전에 구원이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고, 감리교는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인데, 그들이 무슨 “복음”을 전하겠는가? 그들이 “초교파 연합”을 했으니 구원받지 못한 청중에게 “구원의 복음”도 없이 “각성”과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올바른 성경 지식이 없는 목사들이 강연을 함으로써 “각성”과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지식”을 전혀 제공해 주지 못했다. 설혹 청중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올바른 “지식”이 없는 “감정적인 분위기 고조”만으로는 부흥을 일으킬 수 없다.

실제로 다양한 이름의 “부흥회”가 끊임없이 기독교 관련 신문들과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광고에 현혹되고 있다. 한 번도 참된 성경적 진리를 제시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번에는 뭔가 얻을 만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참여해 볼 수도 있겠지만, 결과는 전과 다르지 않다. 뭔가 믿음이 고조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성경 지식을 전달받은 것이 아니기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갈증만 남게 된다. 진정한 성경적 진리를 제시받았다면, 그 말씀이 그를 “구원”받게 해 주고 “성령 충만”하게 해 주었겠지만, “영적 양식”이 될 수 없는 쓰레기들만을 얻었기 때문에 행사가 끝나면 “영적 공허함”만을 느낄 뿐이다.

진정한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점검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었다면 구원받은 것이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구원과 바른 성경 없이는 영적 성장과 부흥이 불가능하다. 구원받았다면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가르치고 설교하는 교회에서 배우라.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통해 영적 성장이 일어나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다. 또한 그 열정이 끊임없는 동력이 되어 나날이 부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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