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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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기도”를 헛되게 가르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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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5월호>

"주기도문 책"이 또 나왔다. 건국대학교 교수인 온누리교회 손기철 장로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책을 펴낸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는 실로 많은 이들이 "주기도문" 하나로 먹고살 만큼 그와 관련된 책들이 상당히 많다. 왜 이런 기현상이 생겨난 것일까? 사실인즉, 마태복음 6장의 소위 "주기도문"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손 장로 역시 최근 모 일간지에서 "주기도문의 회복이 한국 개신교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한국 교회가 주기도문대로 살지 않았기에 오늘날처럼 되었다는 것인데, 주기도문이 회복되면 한국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가 된다는 말인가? 과연 성경에서 그 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 "주기도문"이라 이름 붙이고 매주 예배 때마다 주문처럼 암송하는 기도문은, 주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제자들의 기도"라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눈앞의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고 알려 주신 기도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기도"를 가르치신 동기는 그보다 앞선 구절들에서 발견된다. 『또 네가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은밀히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마 6:5,6). 주님께서는 초림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만연하던 "외식적인" 기도를 정죄하시면서 골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은밀히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법은 신약의 기도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골방에서든 공개적으로든 원하는 곳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마친 후에 그가 빵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면전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것을 떼어 먹기 시작하더라』(행 27:35).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냄과 주저함이 없이, 어디서나 거룩한 손들을 들고 기도하기를 바라노라』(딤전 2:8).

그러나 초림 당시로 말하면, 여전히 구약에 속해 있던 때에 공개적으로 기도를 드렸으되 남에게 보이려고 위선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것을 정죄하시며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것이 마태복음 6장에서 가르쳐 주신 기도 방법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 "제자들의 기도"(마 6:9-13)인데, 이 기도를 개인이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해야 된다는 점에서도,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에서 공개적으로, 집단적으로 드려지는 "주기도"가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이교도적인 『헛된 반복』(마 6:7)에 불과한가를 알 수 있다.

손 장로는 주기도문에 관해 설명하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의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이루어 가는 자, 즉 킹덤 빌더"라고 했다(p.34). 그러나 『너희』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그 대상은 십자가 이전에 여전히 율법하에 있던 "유대인 제자들"이며, 넓게는 율법하의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민족적으로" 낳으신 "한 아들"이기에(출 4:22), 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개인적으로 "나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민족적으로 『우리 하나님』(수 24:24, 삼상 7:8, 왕하 19:19 등)이라고 한다. 따라서 제자들의 기도는, 기도드리는 대상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시옵고,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로 시작된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기도는 『아버지의 왕국』이 문자적으로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두고 있다. 바로 이 왕국에 관하여 주님께서는 유대인 제자들에게 그 통치를 약속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왕국을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가 나의 왕국에서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리라』(눅 22:29,30). 이 왕국은 주님께서 장차 재림하시어 "다윗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실 물리적인 왕국이다. 『보라, 네가 너의 태 안에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 』(눅 1:31-33). 초림 때는 주님의 왕국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지만(요 18:36), 재림 때에는 세상 왕국들을 접수하시어 그분의 왕국으로 삼으실 것이다(계 11:15). 이것은 교회 시대의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롬 14:17)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왕국이다.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다. 주님께서는 "왕의 계보"(마 1:1-16)를 통해 "왕"으로 오신 분이다. 왕국을 세우실 분은 "킹덤 빌더"라는 자들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말하자면 손 장로는 제자들의 기도가 "언제" 적용되고 실현될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 채 책을 쓴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이미 그분의 통치가 임한 것을 전제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p.55)라고 했는데, 이는 무(후)천년주의적인 해석으로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가려 버린 것이다. 주님께서는 유대인 제자들에게 미래에 "왕국이 임할 것"(마 6:10)을 구하면서 "세 가지" 사항에 대해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첫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왕국을 가져오시기 전 이 세상에는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있게 되는데(마 24:21), 그것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고도 불린다. "야곱," 곧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로 인해 민족적으로 고난당하는 때가 대환란인 것인데, 주님의 왕국이 임하기 전인 환란 시대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할 것이므로 유대인들은 그의 박해를 피해 광야로 가서 삼 년 반 동안 초자연적인 부양을 받게 된다(계 12:14). "셀라 페트라"라 불리는 바위 성읍으로 피신하여 매일의 양식을 하늘의 하나님께 공급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유대인 환란 성도들이 그날의 양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이다. 출애굽기 16장에서 광야의 이스라엘이 일용할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로 공급받았듯이, 주님께서는 미래의 대환란 때에도 유대인들을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들과 같이 초자연적으로 부양해 주실 것이다(시 74:14, 미 7:14,15). 즉 이 기도는 대환란 때 유대인 환란 성도들이 광야에서 드려야 할 기도인 것이다.

둘째,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들도 용서해 주시오며』(마 6:12)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대환란 때의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죄의 빚"(눅 11:4)을 진 사람들을 용서할 때 그들도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환란 때 죄를 용서받는 방식, 곧 구원의 방법은 신약 교회 시대와 다르다. 왜냐하면 교회 시대에는 누군가의 죄를 용서했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속 사역을 근거로 그분의 보혈을 통해 죄 용서를 받아 구원받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누군가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은 분명 행위 구원이며, 이것은 교회 시대 이후 대환란 때 구원받는 방법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계명을 끝까지 지켜 인내의 행위로 견디는 일이 뒤따라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 이 있느니라』(계 14:12). 요한계시록과 동일하게 "대환란"을 다루는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왕국을 전파하는 왕국 복음과 관련하여 행위로 "끝까지" 견디는 자의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마 24:13,14). 따라서 제자들의 기도는 믿음과 행위로 끝까지 견뎌 왕국에 들어가는 환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인 것이다.

셋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마 6:13)라고 말씀하는데, 환란 성도들은 믿음에 더하여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광야의 시험의 날과 같이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히 3:8) 죄를 지으면 구원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같은 "악에서 구함을 받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목베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계 13:15; 20:4). 그런 급박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 믿음을 부인하는 죄를 지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구원을 잃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 역시 행위로 구원을 지켜야 할 환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인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들의 기도"는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마 6:13)로 끝마쳐진다. 기도의 시작과 동일하게 끝에서도 "왕국"을 강조하신 것이다.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자 왕으로 오셔서 처음부터 "왕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또 왕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고쳐 주시더라』(마 4:23). 초림 때 왕국을 가져오시려 했지만 그분의 백성인 유대인들의 거부로 왕국은 "미래로 연기"되었다. 십자가로 가시기 전 마태복음 24장에서 "왕국 복음"이 "다시" 전파되는 "대환란"을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거부한 그 왕국이 미래로 연기되었다는 점과 그 거부된 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왕국 복음이 다시 전파되는 대환란이 있을 것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후 얼마 안 있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 그 뒤로 펼쳐진 것이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 시대이다. 이제 곧 교회가 휴거되면 대환란이 펼쳐지고 그 후 "연기된 왕국"이 임하게 된다.

이렇듯 마태복음 6장의 "제자들의 기도"는, 신약 교회 시대와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미래의 "물리적인" 지상 왕국과 교회 시대의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혼동한 자들에 의해 잘못 가르쳐지고 있다. 손 장로 역시 시종일관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만 하다가 책을 끝마친다. 이런 책을 그리스도인들이 봐야 할 양서라고 속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님의 지상 왕국을 기다리지 않은 채 마귀가 통치하는 현 세상에서 교회의 영적인 통치나 이야기하는 영적 미숙아들로 교회가 채워지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서 말하기를 주기도문의 "응용" 요점이 "내가 아니라 가족, 교회, 직장, 사회, 세상에까지 확대하는 기도"라고 했다. "제자들의 기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응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대환란 때의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구원받으라고 유대인들에게 주신 기도임을 알라! 성경에서 장로는 목사를 말하는 것인데(벧전 5:1-4, 딛 1:5-9, 딤전 3:1-7), 성경적인 장로도 아닌 이가 장로라면서 엉터리 책을 써서 오류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수라 해서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 조명을 받아 바른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진리를 가르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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