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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장과 은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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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6월호>
요즈음 우리 주위에는 교회 건물만 크고, 사람만 많이 모이고, 헌금만 많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주로 하는 것들이 “교회 성장 운동”이고 “은사주의” 집회이며 “영성 훈련 세미나”이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하나님께 헌신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열심히 헌금하는 사람들만 많이 모이면 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비그리스도인적인 발상이다.“단 한 번 참석으로 교회를 전도 체질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귀 교회도 100명에서 200명으로, 200명에서 400명으로, 1,000명에서 2,000명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성장 세미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도 전문가가 시범을 보이므로 단 시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5분 내에 전도 대상자가 아멘하고 영접기도를 받아들인다.”
위의 문장들은 요즈음 기독교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들이다. 이러한 문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양적인 팽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교회에 사람들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영혼들을 주님께로 모으지는 못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사업”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실한 사역”을 요구하신다. 주님의 사역은 신실함이 그 생명이다. 돈을 목적으로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일들은 신실할 수가 없다. 한 교단이 형성되면 신학교 하나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많은 신학생들이 졸업하게 된다. 그 학생들 중 대부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상관없이 너도나도 다른 직업을 택하기보다 교회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교회들을 세우기에 교회들이 양적인 “성장”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에 있는 집회 광고에는 심지어 이러한 말까지 등장한다. “영적 불황은 경제적 불경기의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에서 해방되길 원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교회 성장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은사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앞에 인용한 광고 문구는 신현균 목사(성민교회)가 주최하여 세계적 “성령 능력사역자들 20명”을 초청한 대규모 은사주의 집회의 광고인데, 거기에는 영어로 “CATCH THE FIRE”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들은 이 말을 좀 고상하게 “성령의 불을 잡아라.”로 번역했지만, 이 말은 우리 나라 7,80년대의 부흥회에서 많이 쓰이던 말, 즉 “불 받아라!” 하는 말이다.
은사주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며, 여기에 “긍정적 사고방식”까지 더해 더 많은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은사주의의 대표적인 사람 중에는 로버트 슐러가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한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존 크린이란 부호가 지방 YMCA 건립에 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기사를 읽은 슐러는 크린을 찾아가 1백만 달러를 자신의 교회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크린은 거절했다. 그러자 슐러는 떠나기 전에 기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존 크린에게 1백만 달러를 기부하도록 요청한 것이 당신의 생각이었습니가? 아니면 저의 생각이었습니까? 만약 저의 생각이라면 저를 용서하시고 크린도 저를 용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길을 찾아 주십시오.” 그는 백만장자들을 찾아다니며 구걸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불어난 교회를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 은사주의가 등장했을 때 그들을 이단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그 교회들이 외형적으로 커가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신들도 그들의 교리대로 방언을 구하게 되고, “더 많은 은사”를 구하며, 더 많은 복들을 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을 만드는 데서 돌아서, 교파를 초월해서 다 함께 양적인 “성장”을 위한 모임들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한 곳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은 이러한 것이 마치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인양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모아진 사람들은 전혀 쓸데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며, 그들 중 소수가 구원받았다 해도 그들은 바른 성장을 할 수 없고 구령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상황이 어려워지고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나 버릴 쭉정이들이다. 7,80년대에 부흥회에서 뜨겁게 “불받았던” 사람들이 지금 모두 어디에 가 있는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지금 교회가 다시 양적 팽창을 하는 것은 경배와 찬양이니 제자훈련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로 꾸준하게 교인들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인 프로그램들로는 교인들을 끝까지 교회에 붙잡아 둘 수 없기에 그들은 교계에서 일어나는 유행에 따라 계속 교회성장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단지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은사주의가 그래도 한국사람들의 정서에 가장 맞기에 약간의 형태만 바꾸어 꾸준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쭉정이들만 있는 교회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사람들과 그러한 교회가 주님께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양적인 팽창만을 원하는 교회 성장은 사람들만을 기쁘게 할 뿐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곧 다시 오실텐데, 그때 이러한 교회가 어떻게 될지는 눈에 훤하다. 그들은 지금 “불받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분은 이 모든 쭉정이들을 그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받기 원했던 그 “불”로 다 태워버리실 것이다(마 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