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주의 분류
성령운동이 교회 부흥의 원동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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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7월호>
은사주의에 대하여 : 성령님은 죄와 의의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신다.교회사의 매 시대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역사를 재현해 보려는 운동이 일어났었다. 2세기의 몬타니스트부터 시작해서 종교개혁 시대의 여러 분파들이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운동을 일으켰으며, 1830년대에 장로교파에서 분리된 영국의 어빙 운동도 그 맥을 잇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운동은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지고 교회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켄사스 주 토페카에 세워진 벧엘 성경학교에서 새로이 정립된 은사주의 교리와 운동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미 전역과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100년 동안 기독교를 새롭고도 비성경적인 양상으로 변모시키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때에 마귀들의 교리가 성행하게 된다는(딤전 4:1) 성경 예언대로 된 것이다.
이들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성령의 역사가 사복음서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방언과 신유, 축사의 역사들은 오늘날에도 일어나며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교회가 참된 교회의 맥을 잇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화려한 건물을 갖춘 대형 교회들은 대부분 이러한 은사주의 교회가 많으며 기독교 TV 방송도 은사주의 일색인 것을 볼 수 있다. 은사주의의 등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교리는 제쳐둔 채 감정과 치유, 축복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미국의 은사주의는 그나마 바른 성경과 성경적 복음이 몇백 년 동안 자리잡은 토대 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은사주의자들 중에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하지만 바른 성경도 없었고 성경적 복음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한국 땅에 들어온 은사주의는 교회를 완전히 무당 소굴로 만들어 버렸으며 만사형통을 추구하는 전통 무속 신앙과 혼합되어 한국식 은사주의로, 기복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나 미국 이민 사회에서는 더욱 은사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바쁘고 고생스런 생활 속에서 무언가 붙잡아야 되는데 정작 말씀은 없고 하니 체험 위주의 은사주의가 먹혀들어가 교회마다 은사주의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어렵게 생활하기 때문에 더욱 무언가를 붙들게 되고 또 제한된 한인 사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인 만큼 사업상 또는 사교상의 이유로 등록 교인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다 보니 뭔가 뜨거운 체험 위주의 목회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은사주의를 빼놓고서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것이 현 교회의 실태이다.
은사주의의 치명적 위험성은 그들 자신이 경험한 초자연적, 신비주의적 체험이 구원의 체험인 줄 착각하는 데 있다. 실제로 많은 거짓 목사들이 구원을 받았어도 성령을 따로 받아야 한다거나, 방언을 받아야 성령받은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교인들은 자신이 방언을 하기 때문에, 안수기도 받고 치유된 체험이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작 성경적 복음을 제시하면 자신의 체험만 굳게 붙들고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2년 간 미주 한국 신문에 광고 기사란에 매주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다룬 다양한 주제의 글(대부분은 거짓 교리를 성경적으로 비평하는 글)을 약 2년 동안 내보내 왔다. 그런데 교황을 성경적으로 비판하는 글은 실어주어도 조용기 목사를 비판하는 글은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신문사측에서 거절해 왔다. 신도들한테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싣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교계에서 조용기 목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한국 교인들에게는 어찌보면 교황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국 교회를 가장 많이 망친 것은 은사주의 교리이며, 이들의 잘못된 성령론으로 인해 성령을 부르짖는 무수한 교인들이 정작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채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오시면 그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리라』(요 15:26).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지 성령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요 16:13-1). 또한 성령께서는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 『그분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내 아버지께 가므로 너희가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기 때문이라』(요 16:8-11).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제쳐두고 은사주의자들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을 붙들고 그때와 동일하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자기들에게 그러한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자기들이 방언도 하고 병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곳곳에서 “신유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그런 집회에 가서 어떤 목사에게 안수받고 병이 나았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병자를 일으키기도 하신다(약 5:15). 그러나 한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로서의 “신유”는 유대인을 위한 “표적”(sign)으로 A.D. 1세기의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도들의 사역이 종료됨에 따라 없어졌다. 이것은 바울의 능력도 그의 사역 말기에 사라졌던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딤후 4:20; 4:11, 딤전 5:23을 볼 것). 따라서 “신유”의 은사 같은 것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이 그러한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전한 사기꾼이 아니면 마귀의 힘을 빌어 능력을 행하는 자들이다.
성경적 방언이나 성경적 신유는 모두 유대인에게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고전 1:22). 유대인은 출애굽 때부터 표적과 더불어 시작했으며, 표적과 더불어 움직인 민족이다. 모세는 지팡이의 기적과 문둥병 치유의(최초의 신유) 표적을 보임으로써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음을 증명했다. 예수님께서도 여러 가지 표적(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등)을 보이심으로써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 파송하신 사도들도 표적을 행함으로써 말씀을 확고하게 했는데, 성경은 그것을 “사도의 표적들”이라 부른다. 『정녕 사도의 표적들이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력 행함으로 판명되었거니와』(고후 12:12). 그 표적은 이런 것들이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들이 따르리니, 즉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내고 또 새 방언들로 말하리라. 그들은 뱀들을 집을 것이요,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막 16:17,18). 따라서 신유주의자들이 뱀을 집고 독을 마셔도 멀쩡할 수 없다면, 그들이 가졌다고 주장하는 신유의 은사란 100% 가짜다. 또한 당시에 사도들이 권능을 행할 때는 낫지 못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며, 환자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에 구애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거짓 신유주의자들은 안수해도 병이 낫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뻔뻔스럽게 변명들을 한다.
그들 중에는 진짜로 기적을 행하는 자들도 있다. 짧았던 한쪽 다리가 그 자리에서 쭉쭉 늘어나기도 하고 불치의 병이 낫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마귀의 능력이다.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도 여러 가지 기적을 베풀며 나타난다.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살후 2:9,10). 어떤 이들은 어떻게 마귀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반박하지만, 마귀는 항상 좋은 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그래야 사람들이 속아넘어가기 때문이다. 어떤 무당이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굿을 함으로써 악귀를 쫓아내어 이혼 직전까지 갔던 부부가 다시 화목해진 이야기와, 귀신이 붙어 걷지도 못하고 말도 알아듣지 못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제발로 산을 걸어내려간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그러면서 그 무당은 “무속인으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무당이 누구의 힘을 빌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는가? 성령의 힘이겠는가 마귀의 힘이겠는가? 마귀의 힘을 빌어서도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거짓 신유주의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병이 나은 자신의 체험을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하나님을 찾기 원하는 순수한 교인들이 지식 없음으로 인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에 실린 우리의 글을 읽고 상담을 위해 (때로는 우리를 비판하기 위해) 전화를 해 온다. 그들에게 일일이 구원 간증을 해 보라고 하면 성경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극소수고 나머지는 하나같이 은사주의에 빠져 방언받은 경험, 기도원에 갔다가 병 나은 경험, 환상을 본 경험을 구원 간증으로 제시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화상으로 성경적 복음을 전해 주면 간혹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체험 때문에 한 귀로 흘려 듣고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한번은 동부에 계신 이모님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며느리가 허리가 아파 직장에 다니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귀에서 윙윙 소리까지 나는데 부흥집회에 다녀왔다가 믿음으로 나아야 하는 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병원도 가지 않고 무작정 금식만 하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됐는지 구원 간증을 해 보라니까 3년 전 웬지 성경이 읽고 싶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아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는데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꿈에서도 찬송가 소리가 들리고 하나님이 자기 귀에 말씀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가 자기는 구원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녀에게 구원은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고 그런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의의 종으로 가장한 사탄의 종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믿고 있다가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이것 저것 그동안 본인의 마음 속에 가졌던 의문들을 질문해 오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성경적으로 답해 주자 본인의 잘못된 영적 상태를 깨닫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성경적인 구원은 육신으로 오셨으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받게 되는 것이라고 전해 주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통화 끝에 결국 그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하나의 귀한 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이렇게 거짓 목사에게 속아 몸과 혼이 멸망으로 향하고 있는 혼이 과연 얼마나 많은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사역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바른 말씀에 근거한 바른 복음 및 교리를 전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한국 교회를 마귀 소굴, 무당 소굴로 둔갑시켜 놓은 사탄의 종들과 그들의 사역을 폭로함으로써 진리에 눈이 멀고 귀가 막힌 한국 교인들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게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