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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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혼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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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6월호>

“바울은 이혼을 허락하였는가?” 이는 한신대 김판임 교수가 고린도전서 7:1-16 연구를 발표하며 내건 제목이다. 그녀는 이혼에 관한 신약성경의 언급으로 마가복음 10:1-9에 나타난 예수님의 견해와 고린도전서 7장의 바울의 견해가 대표적이라고 말하고서, 예수님과는 달리 바울이 이혼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보편적인 성경적 해석을 반대하며 자의적인 해석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따라서 우리는 2004년 4월 28일자 <크리스천투데이> 제11면에 게재된 기사를 바탕으로 김교수의 거짓 교리를 바로잡을 것이다.

김교수의 불만

김교수는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다. 그녀의 불만은 고린도전서 7:15에서 “믿지 않는 자가 스스로 헤어지고자 한다면 헤어지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그 불만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김교수는 고린도전서 7:10,11은 그리스도 신앙인들 사이의 이혼과 재혼에 관하여, 7:12-16은 부부 중 한 사람만이 신앙인일 경우에 관한 것으로 성경의 내용을 소개했다. 즉 남편과 아내가 둘 다 예수를 믿는 신앙인일 경우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이혼해서는 안 되고, 둘 중 한 사람만이 신앙인인 경우는 파트너의 의지에 따라 믿지 않는 파트너가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이혼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믿지 않는 파트너가 이혼을 원할 때에는 다투지 말고 이혼을 해주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신앙인은 이혼을 리드해서는 안 되지만, 파트너가 원하면, 이혼을 당해 줄 수는 있다고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믿지 않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는 바울의 말이, 믿지 않는 파트너의 의지에 따라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후 김교수는 “세례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은 예수이고, 주 예수를 부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형제요 자매의 관계인데,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이혼이 거론된 이유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가졌던 세례 이해(세례를 통해 거룩해졌다)와 기존의 부부 이념(부부는 일심동체)이 충돌하면서 생긴 문제이다. 예수 믿고 세례받은 부인이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남편과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주장 앞에서 바울은 이혼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혼의 사유가 된다면, 교회 외부인들로부터 받을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내부에서도 감당할 수 없을 문제들이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라고 아주 그럴듯한 해석을 전개해 간다.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김교수는 그후 고린도전서 7:15을 ‘문맥상, 그리고 바울이 표현한 그대로’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믿지 않는 사람이 갈리거든 갈리게 하시오. 이러한 일들에(즉, 믿지 않는 사람의 이혼 문제에) 믿는 사람(형제나 자매)이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혼하지 말라는 내 말은 믿는 사람들(형제나 자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혼하는 문제까지 간섭하여, 옳으니 그르니 하며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 전체를 통해 전하는 말씀에 대해서는 “남편은 안 믿는데, 혼자 자녀들과 함께 세례받은 여자 성도들의 이혼 문제에 관하여 믿는(여자 성도) 여러분들은 이혼하지 마시고 그대로 사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믿고 거룩해졌고, 안 믿는 남편은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도 거룩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자녀는 당신과 당신의 남편의 합작품이고, 당신의 자녀도 세례받아 거룩하지 않습니까? 자녀가 거룩하면, 부모도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니 안 믿는 남편이 믿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언제 구원받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혼하지 마시고 남편을 기쁘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약했다.
자, 여기까지가 김교수의 ‘사적인’ 견해이다. 세례를 구원으로 아는 가짜 신학자, 성경 위에 자신의 잘못된 견해를 두는 교만한 신학자, 그리고 초등학생도 읽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는 고린도전서 7장 전체의 내용을 세례받은 여자의 이혼 문제로 국한시키는, 코앞의 성경도 읽을 줄 모르는 엉터리 신학자의 얘기는 여기까지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녀의 주장에 대해 무엇이라고 바로잡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자.

잘못된 구원관
김교수는 세례로 거룩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교인이고 종교주의자며,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신학자 그룹의 일원일 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는 말씀에 따라 “세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만일 물을 뿌리거나 침례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목사가 소방차를 몰고 다니며 지옥불 속에 던져질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물을 뿌려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침례란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는 행위라고 말씀한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몸이 더러우면 목욕탕에 가서 씻으라.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침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다. 이에 비하면, 세례는 구원의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행위일 뿐이다.
또한 김교수는 믿지 않는 남편이 그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도 그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며, 그들의 자녀들도 덩달아 거룩하게 된다는 고린도전서 7:14을 세례받은 한 배우자로 인해 가족 구성원 전체가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거룩하게 되고』라든가 『거룩하니라』는 말은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남편이 믿으면 아내도 덩달아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으며, 이는 자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족 중 아무도 믿지 않는 경우에 비하여 배우자 한 사람이라도 믿는 가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만큼 “구별된” 가정으로 여겨진다는 말씀인 것이다.

잘못된 성경 해석에서 비롯된 이혼관
이혼(離婚)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 관계를 인위적으로 끊고 헤어지는 것’이지만, 성경적으로는 배우자와의 “혼인 관계가 어떤 이유로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논하는 이혼은 성경적인 이혼이다. 비록 그것이 세상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할지라도, 이혼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사전이 아닌 성경으로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혼에 대해 뭐라 말씀하시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마가복음 10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타당하니이까?』(2절)라고 묻는 사건이 나오는데, 그후 대화가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하였느냐?”라고 하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 주고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나이다.”라고 하더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너희에게 이런 명령을 기록하였으나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느니라. 이런 까닭에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니,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결합시켜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느니라.”고 하시니라』(3-9절).
분명 주님께서는 부부가 “한 몸”이며, 하나님께서 결합시켜 주신 그 몸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이후 제자들의 질문에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그 아내에 대하여 간음하는 것이요 여자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면 그 여자도 간음하는 것이라.』(11,12절)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합해 주신 몸을 떠나 다른 몸과 합하는 “이혼 행위”를 “간음”이라고 말씀하며 이혼을 금하고 계신 것이다(자기 몸을 떠나 다른 몸과 합하는 예는 고린도전서 6:16에서 창녀와 합하는 예에서 볼 수 있는데, 성경은 창녀와 합하는 것을 창녀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다른 몸과 합하면 원래의 몸이 쪼개져 이혼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혼을 명백히 금하고 계시다면, 그분의 종이요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일부 예외적인 사유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혼을 해서는 안 되며, 누군가의 이혼을 부추겨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 없었던 김교수가 고린도전서 7장을 근거로 내린 그리스도인의 이혼관은 잘못된 것이었다. 위처럼 이혼을 금하셨던 예수께서도 이혼의 가능성을 마태복음 19:9에서 제시하셨고,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이혼 사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이혼 사유#1 - 음행
마태복음 19:9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버려진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
구약에서는 (약혼한 아내가 처녀가 아닌 것이 발견되면, 그녀를 돌로 쳐 죽일 수 있었던 반면,) 남편이 아내를 맘에 들어 하지 않거나 미워하면, 즉 “무슨 사유로든지”(마 19:3)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고 내보낼 수 있었다(신 24:1,3). 이는 마태복음 19:8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완고함 때문에 모세가 그렇게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신약에서 새로운 선례를 제정하시는데, 이제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릴 수 없게 되었다. 만일 한 남자의 아내가 그에게서 나가서 다른 남자의 몸과 그녀의 몸을 합하면, 그는 그녀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고 『자기 아내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② 이혼 사유#2 - 남편의 죽음
로마서 7:2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그녀는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남편의 법에서 벗어난다”(be loosed from the law of her husband)』는 말은 말 그대로 남편의 법에서 풀려나고 해방된다는 뜻이며, 성경에서는 이것을 남편과의 혼인 관계가 끊어지는 “이혼”으로 보고 있다. 고린도전서 7:39도 『아내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혼인하게 되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자유롭게 되어” 주 안에서 재혼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죽음은 한 몸된 부부를 쪼개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③ 이혼 사유#3 - 버리고 떠남
고린도전서 7:15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나 만일 믿지 아니하는 자가... 헤어지고자 한다면 헤어지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일에 매여 있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느니라.』
이 구절은 김교수의 주장처럼 믿지 않는 자들의 이혼 문제에 그리스도인이 간섭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믿지 아니하는 남편』과 『어떤 여자』, 즉 그리스도인인 『그 아내』 사이의 문제이다(고전 7:12-15). 여기서 “헤어진다”(depart)는 말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당신을 “떠나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만일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을 완전히 굳혀서 마음도 떠나고 심지어 몸도 떠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성경적으로 볼 때, 믿지 않는 배우자가 그리스도인 배우자를 떠나 남편이나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저버린다면, 믿는 배우자는 자신을 떠난 배우자에게 더 이상 ‘속박되지 않는다.’ 주의 영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것에도 속박될 수 없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고후 3:17). 그리스도인의 믿지 않는 배우자가 그를 떠나 버려 평생토록 집에 얼씬도 하지 않거나 심지어 딴 살림을 차렸는데도, 그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평생을 비참하게 살며 그에게 속박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그리스도인은 『형제나 자매나 그런 일에 매여』 있을 만큼 한가한 이들이 아닌 것이다. 반면 믿는 배우자가 떠나 버리는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럴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고로 남편이 자신을 떠난다면 과감히 그를 단념하고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이혼 사유는 (1) 배우자의 음행, (2) 배우자의 죽음, (3) 배우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경우이다. 성경은 김교수의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세 번에 걸쳐 하고 있다. 성경은 이혼을 금하기도 하지만, 세 가지 경우에 이혼 가능성을 열어 놓아 인생에 재출발의 기회를 열어 놓은 것이다. 인간적으로도 이혼을 찬성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행위이다. 이혼에 관해서, 우리는 이 조화로운 하나님의 말씀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김교수는 여자이기에 이혼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같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혼을 하면 대개 여성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오로지 여성의 관점에서 이혼을 다루고, “이혼을 당한다”는 표현을 쓴 것일 것이다. 따라서 김교수는 페미니스트, 즉 여성해방론자인 듯하다. 편협하게 여성 중심으로 전개된 논문이 왠지 그런 냄새를 풍기니 말이다. 눈이 비뚤어지면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진리를 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여, 사유가 합당하거든 성경에 따라 이혼하라. “바울은 이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느니라』는 말씀을 늘 염두에 두자. 『오 아내여,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겠으며, 오 남편이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고전 7:16)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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