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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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구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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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6월호>

지난 호에서 보았듯이,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한 구속을 잘 예언해 놓은 장이다. 메시야의 영광에 대한 많은 묘사들 가운데 그분의 고난이 이처럼 강조되는 것은, 고난 즉 죽음을 통해서만 구속을 이룰 수 있고, 그 구속을 통해서 백성들을 영광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야 53장이 이사야 전체의 2부(40-66장)의 정중앙에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즉 그분의 고난을 통한 구속이 중심이 되어, 그분이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영광스런 사역이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구속 사역을 이루지 않으셨다면, 재림으로 인해 얻으실 영광도 없고, 따라서 교회의 영광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이 땅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결국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서의 마지막 부분은 그 구속 사역의 위대한 부분들을 예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위한 구속
우리는 지금 신약 시대에 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 사역이 교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분의 구속 사역은 교회뿐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구속 사역이기도 하다. 특히 이사야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구속을 훨씬 강조한다. 이 구속은 말할 나위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이사야 54:5은 󰡔너를 지으신 분이 네 남편이니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며, 너의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는 구절이다. 지금은 비록 그분의 징계로 이스라엘이 버림받고 있지만(이 상황은 대환란 때까지 지속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을 모으시리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속주이시기 때문이다(54:8). 이사야 59:20에서는 󰡔구속주가 시온에게, 야곱 안에서 허물로부터 떠난 자들에게 오시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한 언약으로 확정지어 놓으셨다.
호세아 선지자도 이사야와 비슷한 것을 예언했다. 이스라엘을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로 설정해 놓고, 지금은 비록 버림받아 있지만 후에는 회복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이스라엘의 자녀들도 번성할 것이라고 말한다(호 1:10-2:1). 마찬가지로 이사야도 예루살렘이 회복될 때 매우 번성할 것이라 말한다(54:1-3).
이러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다윗의 자비”라는 말로 집약된다. 󰡔...또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의 확실한 자비니라󰡕(55:3). 여기에는 “너희 귀를 기울이고 내게 와서 들으라...”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전제된다. 그리고 󰡔아, 너희 목마른 자들은 누구든지 물들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으라. 정녕,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는 초청의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구원의 초청”이다. 󰡔그를 찾을 만한 때에 너희는 주를 구하며 그가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악인은 자기의 길을, 불의한 사람은 자기 생각들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55:6,7)는 말씀은 지금도 이 세상의 죄인들에게 선포해야 할 말씀이다. 55장에서는 이처럼 구원으로의 초청의 말씀이 가득하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 죄가 만연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외쳐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게로 오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무엇인가를 행해야 구원받는다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기만 하면 쉼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하면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55:7).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교리적인 의미는 “다윗 안에서의 구원”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메시야를 상징한다. 메시야는 “다윗의 아들”로 오실 것이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의 왕의 이름이다. 초림 때 많은 이들이 그분을 다윗의 아들로 불렀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을 부른 것이다. 그분은 재림 때 이 이름으로 오셔서 보좌를 차지하실 것이다. 그때 그분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실 것이다.
물론 천년왕국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한정되지는 않으실 것이다. 시편 2:8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은 유업으로 받으신다고 예언한다. 즉 천년왕국 때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주체가 되겠지만, 많은 이방인들도 그 왕국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에 교회가 되어 참여한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천년왕국 때의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 주시는 메시야의 빛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께 경배드리러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
그때 이방인들은 주께 연합하려 할 것이고, 주의 언약을 붙잡으려 할 것이며, 안식일들을 지키려 할 것이다(56:3-6). 그때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모여서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나의 집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며... 이는 나의 집이 모든 백성에게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임이라󰡕(56: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쫓겨난 이들을 부르실 때, 많은 이방인들도 그들에게 붙을 것이다(56:8). 이는 유대인의 왕이 곧 온 세상의 왕이심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
그러나 이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일 뿐,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은 도저히 이러한 축복을 받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선지자는 57-59장에서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고 있는데, 이는 1-5장 등에서 언급한 책망과 동일하며, 포로기 이전에 활동하며 이스라엘과 유다를 책망했던 모든 선지자들의 책망과 동일하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사야 선지서를 쪼개서, 40장부터 그 이후를 제2이사야의 글이라 한다. 39장까지를 기록한 이사야와 40장부터를 기록한 이사야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언을 믿지 않으므로, 45장 등에서 코레스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제2이사야는 포로 회복기에 활동한 어떤 선지자라는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56장 이후를 제3이사야가 기록했다고 하는데, 제3이사야는 성전의 기초가 놓인 후 아직 완성되기 전에 활동한 누군가라고 주장한다(본지 141호 “지상강좌 6, 이사야 1” 참조). 그 이유는 이 부분에 이방인들의 구원이 많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페르시아에서 돌아온 유대인들 중에는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이 미친다고 주장하는 세계주의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제3이사야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는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라.󰡕(66:1) 하면서 성전을 짓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57장 이후에 나오는 책망에 대해서도, 당시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의 기초만 닦아 놓고 여전히 타락한 생활을 하는 것을 책망한 것이라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이사야서 전체는 한 사람 이사야가 기록했다. 만약 학자들의 말대로라면 이 제3이사야는 에스라나 느헤미야와는 정반대의 개념을 가졌고, 서로 반목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왜 서로 모순된 이러한 주장들을 모두 성경에 기록하셨겠는가? 성경 어디에서도 소위 제3이사야의 주장과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씀해 놓으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대인 메시야의 빛 안에서 받는 구원이다. 또한 본문에 제시하는 책망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전에 벌어졌던 죄악들에 대한 책망일 뿐이다. 58장에는 헛되이 금식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있는데,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금식하지만 오히려 금식하는 날 오락을 일삼으며 투쟁과 압제를 일삼고 있다(58:3-7). 이러한 죄악들은 1:13-15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피곤하셨던 거짓된 의식들이었다. 66:3에서, 제사드리는 행위에 대해 󰡔소를 잡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고, 어린 양으로 희생제를 드리는 자는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으며...󰡕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잠언 21:27에서 󰡔악인의 희생제는 가증한 것이거늘 하물며 악한 마음으로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야 더욱 악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는 것과 동일한 관점이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당시의 이러한 죄악들, 경배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악해진 당시의 상황 속에서도 다윗의 아들로 오시는 메시야를 통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용서된다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다. 선지자의 임무가 단순히 당시의 상황을 책망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도저히 이런 예언은 나올 수가 없다.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집결된다.

재림과 영원한 왕국
60장부터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한다. 물론 어떤 구절들은 재림뿐 아니라 초림 때에도 적용되는 구절들이다.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이는 네 빛이 왔고, 주의 영광이 네 위에 솟아났음이라󰡕(60:1). 이 구절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그분은 공생애 때에도 빛으로 사역하셨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빛을 온 이방에 주셨다. 그러나 그분의 빛이 가장 찬란하게 비치는 것은 분명 재림 때이다. 그때 이방의 땅들과 바다의 섬들에서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에 계시는 왕께 예물을 가져올 것이다. 󰡔타국인들의 아들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며,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기리니... 사람들이 이방인의 군대를 네게로 데려오고, 그들의 왕들을 데려옴이라󰡕(60:10,11). 이는 시편 72편에 있는 메시야 찬양시(Messianic Psalm)와 동일한 맥락의 예언이다.
61장의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에게 기쁜 소식들을 전파하게 하셨으며... 주의 기뻐 받으시는 해를 선포하고...󰡕(61:1,2)라는 예언도 그리스도께서 초림 때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시면서 󰡔이 성경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이루어졌느니라.󰡕고 선포하신 바로 그 말씀이다(눅 4:18-21).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때 이사야 61:2의 뒷부분, 즉 󰡔...우리 하나님의 복수의 날을 선포하며...󰡕라는 부분은 인용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는가? 초림 때 주님께서는 복수의 날을 선포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 날은 재림 때에 있을 날이다.
재림 때는 어떤 복수를 하시는가? 이스라엘을 위해 이방에게 복수를 하신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복수하시어 멸하신다. 이는 분명 초림 때 십자가를 지신 모습이 아니다. 재림 때 그분은 아주 잔혹한 진멸자로 오실 것이다. 이 사실을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자세히 예언하고 있거니와, 이사야 63장도 같은 것을 말씀하고 있다. 󰡔보스라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에돔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시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은가? ...나의 분함으로 그들을 밟고 나의 진노함 속에서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러면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서 내가 내 의복을 모두 얼룩지게 할 것이라󰡕(63:2,3). 주께서 하늘들을 가르고 내려오실 때 그 위엄 속에서 산들도 용해될 것이다(64:1,2). 이때 하늘로부터 흰 말을 타고 오시는 그분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사들을 모조리 밟으실 것이다. 이것을 “복수의 날”이라 말씀하는데, 동시에 그것이 또한 “내 구속의 해”라고 말씀한다(63:4).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인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모습이다. 그후에야 남은 이방인들 중에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이방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결국 재림 때의 모든 구속은 이스라엘이 중심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호세아가 말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의 모습을 온전히 갖출 것이며, 그 땅은 “헵시바, 뷸라”라고 불릴 것이다(61:10; 62:4,5 - 참조. 호 2:19-22). 󰡔샤론이 양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콜 골짜기는 소떼가 눕는 자리가 되며, 나를 찾는 내 백성을 위한 자리가 되리라󰡕(65:10).
그 왕국은 번영의 왕국이요, 평화의 왕국이다. 인간의 수명도 늘어날 것이어서, 100살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며 100살에 죽는다면 그는 저주받은 자이다. 인간의 수명은 나무의 수명과 같게 될 것이다(65: 19-22). 자연계도 회복되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송아지처럼 짚을, 뱀이 흙을 먹는 시대가 온다(65:25). [이 부분은 11:6-9과 동일하다. 이사야서를 쪼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왕국은 단순히 천년왕국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 왕국은 영원무궁토록 이어질 것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65:17). 󰡔주가 말하노라.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66:22). 천년왕국이 끝날 때 하늘과 땅은 불로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겠지만, 천년왕국 때 시작된 그리스도의 통치는 영원무궁할 것이다(단 2:44). 그분은 영원토록 왕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은 영원토록 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저주받은 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나가서 나를 거역하여 범법했던 사람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이는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들의 불도 꺼지지 아니할 것임이니 그들은 모든 육체에게 가증함이 되리라󰡕(66:24).

자, 이사야서는 이렇게 끝난다. 이사야는 참으로 광범위한 예언을 한 선지자다. 그의 예언은 히스키야 때의 남북 왕국을 책망하는 것부터 바빌론 포로와 그 회복, 또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나아가서 영원 세계까지 예언하는, 가장 긴 시대를 다루는 포괄적인 예언이다. 그는 말 그대로 “대선지자”라 아니할 수 없다.
그의 예언들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그분의 왕국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 왕국의 구체적인 면들, 즉 그 왕국의 범위와 성격과 또 그 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모든 면들, 더욱이 이방인들의 구원까지 이처럼 자세히 예언한 선지자는 없다. 그의 예언이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학자들은 두세 부분으로 나누어 여러 사람이 기록했다는 가설까지 만들어낼 정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예언”이라는 것이다. 예언의 대부분을 책망과 저주에 할애했던 예레미야에 비교해 볼 때, 이사야의 예언은 많은 부분 이스라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이 예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한 위대한 계시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이사야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귀한 교리와 또 교훈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왕 되시는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도 분명히 구주(Saviour)와 주(Lord)가 되신다. 우리의 죄 때문에 찢기시고 피흘리신 그분께서는 오늘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돈 없는 자도 누구든지 나가서 그 생수를 마실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이다(요 4:13,14).
이사야가 죄들을 책망할 때 우리는 모두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우리의 죄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깊이 갈라 놓고 있다(59:1,2). 이사야가 회개하라 할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사야가 죄인들에게 이 사실을 선포하라 할 때, 우리는 선포해야 할 것이다(58:1). 이사야가 공의를 지키라 할 때, 우리는 공의를 지키며 정의를 행해야 할 것이다(56:1). 왜냐하면 이는 분명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700여 년 전, 이스라엘과 유다는 바로 이 선지자의 책망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선포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호로 이사야서 지상강좌를 마칩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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