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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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는 나왔으나 카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자들 (신명기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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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5월호>

신명기 제1부(1-11장)는 이스라엘이 모압 땅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카데스바네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2장에서는 광야에서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진군하여 나아가는 과정, 그리고 3장에서는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싸워 멸한 내용이 다루어진다. 하지만 신명기는 단순히 여정을 안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명기는 전체적으로 모세의 설교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 여정들을 말하는 중에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광야에서 저지른 세 가지 큰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첫째는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요(9장, 출 32장), 둘째는 카데스바네아에서 믿음으로 카나안 땅에 진군하지 않은 것이요(1장, 민 13,14장), 셋째는 바알프올의 범죄이다(4:3, 민 25장).
금송아지 사건은 이스라엘이 전멸될 만한 큰 위기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범죄에 가담했다. 카데스바네아 사건은 불순종의 대가로 38년을 더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백성들의 "믿음 없음"이 갖고 온 보응이다(히 4:2). 바알프올의 범죄도 많은 사람들이 멸망했던 범죄이다. 이 죄는 우상 숭배와 더불어 음행이라는 사항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카나안 종교로서, 하나님께서 멸하라 하신 그 땅의 풍습이다. 이로써 이들은 "우상 숭배"와 "믿음 없음"과 "음행"이라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세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1. 카데스까지의 여정 (1:1-5)
신명기 1장은 카데스까지의 여정과 카데스에서의 범죄를 다루고 있다. 이 여정은 민수기 14장까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 설교가 행해지는 시점은 출애굽한 후 제40년 11월 1일이며(3절), 이미 아모리인들의 왕 시혼과 옥을 죽인 뒤였다(4절). 그래서 1-5절은 이 설교의 시기적 배경을 보여 주고, 6절부터가 본격적으로 설교의 내용이다.
2절에 따르면 호렙에서 카데스바네아까지 이르는 데 11일이 걸렸다. 광야 생활의 날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 1월 15일 - 이집트에서 출발(출 13:14)
첫째 해 3월 1일 - 시내 산 도착(출 19:1)
둘째 해 2월 20일 - 시내 산 출발(민 10:11)
둘째 해 3월 1일 - 카데스바네아 도착(신 1:2)
둘째 해 4월 10일 - 정탐꾼들의 40일간 카나안 탐지(민 13:25)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지 1년 3개월 만에 카나안 땅으로 진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데스에서의 믿음 없는 행동으로 인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2 호렙에서 출발 (1:6-18)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산에서 오랫동안 거하였으니," 이제 출발해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1년 가까이 거했었다.
7절을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땅은 유프라테스까지 이르는 매우 광활한 땅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창세기 15:18-21에서 볼 수 있었던 바, 아브라함의 언약의 원래의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은 요단 강 서편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았었고, 모세도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간주했었다. 이는 요단 강 서편이 일차적인 약속의 땅임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은 칼데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었고, 세켐(요단 서편 지역)으로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땅이 약속의 땅임을 보여 주셨었다(창 12:6,7).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은 유프라테스에까지 이르는 큰 지역이었고, 이는 다윗과 솔로몬에게서 일부 성취되었다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비로소 완전한 성취가 될 것이다.
9-18절은 출애굽기 18장 사건으로서, 모세가 재판관들을 임명하여 백성들 다루는 일을 나눠 맡는 장면이다. 모세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관원들을 나누어 백성들 간의 재판에 관한 일을 수행하게 했으며, 어려운 일만 모세가 직접 재판했다. 출애굽기 18장에 따르면 이 일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로 이루어졌으며,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이루어졌다. 뽑힌 사람들이 누구든지 간에 그들은 "공정하게" 재판해야 했다(신 1:17).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재판관들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규칙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것은 바로 "공정함"이다.
특별히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에서 재판관이 해야 할 일이다. 아직 왕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재판관들을 통해 다스릴 수 있으셨다. 재판관기가 바로 그런 일에 대한 시험 기간인데, 재판관들은 율법을 통해 백성들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율법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며 평안히 거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발생할 것 같은 모든 문제들은 율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애매모호한 문제들은 재판관들이 율법을 해석하여, 또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해결해 주면 된다. 재판관들은 또한 군사를 모아 외적으로부터 민족을 방어할 수도 있었으니,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신정국가의 모습이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단지 재판관들이 율법을 잊고 죄들을 지음으로써 스스로 재판관의 소양을 상실해 버리고, 백성들이 죄악으로 향하는 것을 막지 못해 그 기간이 실패했을 뿐이다. 신명기 1장은 광야에서 신정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잘 보여 주는 장면이다.

3 카데스에서의 반역 (1:19-46)
카데스바네아는 그들의 광야 생활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장소였다. 모세는 이곳에 와서 카나안 땅으로의 진군을 명했다. 『보라,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앞에 그 땅을 두셨으니, 너의 조상의 주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하신 대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 두려워하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말라』(21절). 모든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으며, 이제 이스라엘은 그 땅을 쳐서 차지하기만 하면 된다.
22절은 백성들이 그 땅을 탐지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그 땅이 점령할 만한 땅인지 그렇지 못한 땅인지를 알아보고자 함이 아니요, 점령을 전제로 놓은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지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명을 정탐꾼으로 보냈다.
문제는 그들이 정탐에서 돌아온 이후였다. 분명히 땅 자체는 좋다고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25절), 그 거민들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들을 칠 수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낙담하고 만다(27-28절). 이것은 단순한 낙담이 아니라, 불평이요 반역으로 이어진다. 『주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아모리인들의 손에 넘겨 죽이시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도다』(27절). 이러한 불평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발언이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것이 멸망을 위해서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다른 대장을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말하기까지 했다(민 14:4).
이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체험하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광야 생활이라는 그 힘든 것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수없이 체험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약간의 불편함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들의 문제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지만, 인간은 연약한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증거도 주지 않으시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고 요구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실 때는 항상 그렇게 믿을 만큼 충분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 주신 상태였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토대로, 미래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어야 했다. 그 말씀을 믿고 전진해야 했다. 모세는 바로 그 사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을 보라고 백성들에게 말했다(29-31절).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새로운 사실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부정해 버린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믿지 않음은 매우 큰 범죄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믿음으로 차지할 그것"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믿음으로 차지하게 되어 있다. 믿으면 차지하는 것이요, 믿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믿지 않는다고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지 못하는 것 자체가 저주스런 모습이 된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진멸시키려 하지는 않으셨다. 다른 범죄 때는 역병이나 죽음을 주셨지만, 이때는 단지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을 뿐이다(히 4:1,2).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큰 불행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나왔고 그 땅에 들어가기는 거절했으니, 당연히 그들은 광야에 남아야 했다. 다른 길은 없다.
그들은 언제까지 광야에 남아야 했는가? 그 "악한 세대"(35절)가 광야에서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 있어야 했다. 칼렙은 주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간다(36절).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대신 임무를 맡아 들어간다(38절). 어린 자녀들은 이 죄에 책임이 없으므로 들어간다(39절). 여기서 어린 자녀들은 "너희가 먹이가 되겠다고 말했던 너희의 어린 것들과 그 날에 선악 간에 지식이 없었던 너희 자녀들"이라고 설명되는데, 이렇게 말하면 아주 어린아이들이라고 생각되지만, 민수기 14:29에 따르면 "20세 미만"의 사람들이다. 20세를 기준으로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이 기준은 싸울 수 있는 전사로서의 기준이다(신 2:14).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항상 군대의 개념이었다. 그들이 출애굽할 때부터 그랬다(출 12:51).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의 사람들을 계수할 때도 "20세 이상으로 싸우러 나갈 수 있는 모든 남자"(민 1:20)를 계수했다. 즉 이스라엘은 군사로 취급받으며, 카데스에서도 이들은 그 땅으로 싸워 진군해야 할 터인데 그 군사들이 거부했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군사들의 세대"가 아니라 "악한 세대"인 것이고, 바로 그들이 카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여호수아와 칼렙이 카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둘은 물론 믿음이 있었기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이지만, 이 둘은 또한 전체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칼렙은 유다 지파이고, 여호수아는 에프라임 지파이기 때문이다(민 13:6,8). 에프라임은 북왕국 열 지파를 대표하며, 유다는 유다 왕국을 이룬다. 에프라임은 장자권을 얻었고, 유다는 왕권을 얻었다(대상 5:2).
이제 이스라엘은 전진이 아니라 후퇴해야 한다. 그들은 "돌이켜 홍해의 길을 따라 광야로" 여정을 취하게 된다(40절). 여기서 홍해로 다시 간다는 말은 홍해의 서쪽 북단인 이집트 쪽이 아니라, 동쪽 북단인 에시온게벨 쪽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40년 후 다시 전진할 때에는 이쪽에서 요단 동편 지역으로 올라오게 된다. 이스라엘은 카데스에서 에시온게벨에 이르는 광야 가운데서 40년을 있게 된다. 신명기 1:46은 "카데스에 여러 날 동안 거하였느니라."고 말씀한다.
뒤늦게 후회한 백성들은 전쟁하겠다고, 그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으나 하나님은 거절하셨으며, 그들은 "마음대로"(43절) 올라갔다가 패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통곡 소리에 경청하지 않으셨다(45절). 이것은 대환란의 예표가 된다. 교회 시대에는 한 번 믿음이 없었다고 영원히 기회가 닫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을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신다. 하지만 대환란 때에는 한 번 기회를 잃어버리면 다시는 찾을 수 없다. 히브리서 6:4-6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믿음을 잃어버리면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한다. 시편 95:11에는 이 상황을 설명하며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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