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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처럼! 이스라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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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2월호>
독수리는 새끼를 양육하는 일에 남다른 동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는 『보금자리를 휘젓고 자기 새끼들 위에 날개를 퍼덕이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아 자기 날개 위에 새끼들을 업는』다고 독수리가 새끼를 다루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신 32:11).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젓는 이유는 새끼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말하자면 독수리의 보금자리는 뾰족한 가시나무로 만든 기초 위에 포근한 깃털을 깔아 만들어진다. 새끼들은 안전하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으면서 자란다. 그러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 독수리는 발톱으로 둥지를 휘저어 이제껏 보금자리를 감싸고 있던 깃털들 사이로 가시들이 드러나게 한다. 가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새끼들은 어쩔 수 없이 둥지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때 어미는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 새끼는 버둥거려 보지만 이내 곤두박질하는데 땅에 닿기 직전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로 새끼를 받아 유유히 둥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다시 이 일을 반복한다. 새끼가 날갯짓을 배워 강해진 날개로 드넓은 창공을 마음껏 날 수 있을 때까지!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어떻게 하였으며, 내가 어떻게 독수리들의 날개들로 너희를 실어 내게로 데려왔는지를 보았느니라』(출 19:4). 이스라엘은 이집트라는 보금자리에서 한 민족의 모습으로 잉태되었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밀어내어 한 민족으로 탄생시키셨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 보금자리(이집트)를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장소로 만드셨다. 처음에 이집트는 이스라엘에게 쉴 만한 보금자리가 되었지만, 요셉을 모르는 왕이 등장하면서 노예생활을 하는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적합한 피난처가 되었던 이집트가 고통의 자리가 될 것을 일찌감치 예언하셨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너는 분명히 알지니 네 씨가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타국인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요, 그들이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겠고』(창 15:13).
이스라엘은 고통스러워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워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파라오와 이집트를 응징하시며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셨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자마자 이른 곳은 홍해였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그들은 죽게 되었다고 부르짖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날개로 받아내셨다. 즉 홍해를 갈라 그 길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해 내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지나 처음 도착한 마라에서는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먹이셨다.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불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 먹이셨다. 르피딤에서 물이 없어 갈증으로 기진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먹이셨다.
이후에도 아말렉을 만나 어려움을 겪었고, 카데스바네아에서는 거인들을 보고 온 정탐꾼들 때문에 절망에 빠졌으며, 여리코 성을 정복하는 일도 그들의 눈 앞에는 큰 어려움이었다. 이렇듯 이스라엘에게 계속되는 어려움과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구해 주셨다. 마치 독수리가 위기에 처한 새끼를 날개로 받아내는 일을 반복하듯이 하셨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때때로 고난과 역경을 맞을 때가 있는데, 왜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답을 독수리가 새끼를 양육하는 모습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모습에서 배울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들이 마냥 보금자리에만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그분의 자녀들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마련이며, 웬만하면 현재의 환경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왜 그런지는 독수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새끼 독수리가 둥지에 가만히 앉아 어미 독수리가 가져다주는 먹이만 받아먹고 산다면 더없이 편할 것이나, 계속 그렇게 지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살이 쪄 몸집은 커져 가는데 날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결국 날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날지 못하는 독수리가 독수리인가?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힘차게 날아다니는 것이 독수리의 참 모습이다.
이 점을 이스라엘을 통해서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독특한 보물이 되고 온 이방 민족의 중보자인 제사장들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할 목적으로 그들을 불러내셨다(출 19:5,6). 또한 그들은 거룩한 민족으로 하나님을 위해 따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집트의 속박 아래 안주해 있다면 그처럼 모순된 것도 없을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시는 모습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벧전 2:9).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신분으로 그분을 전파하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인을 부르셨는데 그가 현실에 안주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실에 안주하려는 신앙은 현상 유지는커녕 점점 더 퇴보하게 된다. 현실에 안주할 때 그가 육신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그는 결국 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본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둥지를 휘저으신다. 고난이나 역경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가정 문제, 직장 문제,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의 고난이 임했다면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신호로 알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초대 교회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가해져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진 이유는 무엇인가?(행 8:1) 주님께서는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복음을 전하러 나아가지 않자 교회를 휘저으셨던 것이다. 이때의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행 8:4).
둘째, 성장을 위해서이다. 성도가 성장한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고난의 날에 발휘되는 믿음을 통해 그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없이 평안할 때에는 믿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난 중에 발휘되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믿음은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견고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 이 또한 독수리를 통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독수리가 새끼를 떨어뜨리는 목적이 무엇인가? 새끼가 떨어질 때면 언제나 어미가 와서 구해 준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미가 새끼를 구해 준 것은 "결과"이다. 떨어뜨리는 목적은 "과정"에 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떨어지면서 스스로 날갯짓을 배우게 하기 위해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조금씩 날갯짓을 하다 보면 결국 날 수 있게 되고 강해진 날개로 맘껏 하늘을 날게 된다.
이 모습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이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고난과 역경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고난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즉시 기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늘 기도하기보다는 불평이 앞섰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반복되는 고난으로 그들을 훈련시키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떨어뜨리는 목적은 다시 받아주는 데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믿음을 발휘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떨어지는 중에 스스로 "믿음의 날갯짓"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믿음을 발휘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도하지 않고 "다만 모든 일에 염려하며 사람의 도움이나 육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자신을 떨어뜨리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믿음의 날개를 갖게 하시고, 그 날개를 더욱 강하게 하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기를 바라신다. 문제가 있을 때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고 그를 구해 내신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해 낼 것이요,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떨어뜨리심은 계속해서 되풀이될 것이다. "독수리처럼," "이스라엘처럼" 계속 떨어뜨리실 것이다. 이 점을 빨리 깨닫고 믿음의 날개를 열심히 움직여 성장하는 것이 현명한 성도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