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 분류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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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9월호>
"화살들이 태양을 가릴 지경입니다!" 페르시아의 궁수들이 쏘는 화살들에 압도된 한 병사가 그리스 연합군 총지휘관에게 보고했던 내용이다. 실제로 테르모필레 전투(B.C. 480)에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의 궁수들에 의하여 단숨에 몰살당했다.성도들이 직면하는 영적 전쟁도 이와 매우 흡사한데, 영적 전장에서도 화살들이 날아오는 것이다(엡 6:16). 한두 개 정도가 오는 게 아니다. 불화살들이 이글거리는 "불의 비"처럼 빗발치듯 쏟아지는 것이다. 이때 그것을 막을 "방패"가 없다면, 칼 한 번 휘둘러보기도 전에 온몸이 화살받이가 되어 금세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영적 전쟁에서 입어야 할 전신갑옷에 대해 말할 때, 『모든 것 위에[above all]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말씀한다(엡 6:16). 전신갑옷의 모든 부분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above all) 믿음의 방패를 착용하라는 것이다. 믿음의 방패가 중요한 이유는, 그 "믿음"이 손상을 입게 될 경우 더 이상 "믿음의 선한 싸움"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딤전 6:12). 이를 잘 알고 있는 적들도 성도들의 믿음을 공격해야 할 제1의 "표적"(target)으로 삼고 있다. 그 표적이 공격당해 무참히 깨진 성도들은 결국 믿음을 부인했고(딤전 5:8), 또한 버렸으며(딤전 5:12), 믿음에서 떠났다(딤전 4:1). 심지어 믿음이 완전히 뒤엎어지기까지 했다(딤후 2:18). 따라서 영적 전쟁의 승패는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믿음을 지켰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딤후 4:7).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target"(표적)이란 단어가 종종 "방패"의 의미로도 사용된다(삼상 17:6, 왕상 10:16, 대하 9:15; 14:8). 적들이 믿음을 "표적"으로 삼아 화살들을 쏠 때, 믿음이 강하여 그 "방패"의 역할을 다하면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지만, 약한 믿음이라면 도리어 "표적"이 되어 손상만 입게 된다. 그리고 히브리서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substance)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방패가 믿음이라고 하는 영적인 "물질"(substance)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패의 기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강도"와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약한 믿음과 강한 믿음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도 않았는데, 그저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최면일 뿐이다. 또한 단순히 일말의 가능성에 거는 것도 믿음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도박과 같다. 반면 믿음은 "증거"이다(히 11:1). 참되고 불변하며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최면도 도박도 아닌 100% 확실한 보증서인 것이다.
"약한 믿음"의 원인은 말씀에 대한 지식의 부족에 있다. 그런 믿음으로는 무언가를 성경적으로 입증해 내지도 못하고, 양심을 거슬러 행동할 뿐이다(롬 14장, 고전 8장). 성경은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하신다(롬 14:23). 약한 믿음의 소유자는 마치 얇고 가벼운 가죽 방패를 들고 있는 것과 같아서 불붙은 화살들에는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믿음을 향해 날아오는 불화살들은 믿음을 시험하는 불 같은 시련들이다(벧전 1:7; 4:12). 고난과 박해의 불이 믿음을 시험할 때가 있고, 때로는 질병과 고독의 불화살이 날아올 수도 있다. 비방, 시기, 사별 등 다양한 형태의 시험이 닥칠 때 약한 믿음은 쉽게 쓰러진다. 어떤 사람은 단순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실족하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에 "강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는 믿음이다(롬 4:20,21).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다.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확신하고, 섬김에 대해 보상해 주실 것도 믿는다. 말하자면 견고한 믿음인 것이다. 사도 요한은 청년들에게 그들이 "굳세다"(strong)고 말했는데(요일 2:14), 이들의 특징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강건하고 담대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사에서 볼 수 있는 믿음의 군사들은 사자처럼 담대했다. 3세기 후반의 저명한 순교자 세바스티안은 이교도가 되라는 황제의 명령을 거절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사형장 기둥에 묶인 채 온몸에 화살들을 맞았다. 성도들이 그의 시신을 묻으려 했다가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것을 알고서 극진히 간호했는데, 그는 기력을 회복한 후 즉시 두 번째 순교를 위해 다시 황제에게로 나아갔다. 그는 황제 앞에 나타나 설교했고, 깜짝 놀란 황제는 정신을 차린 후에야 그를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결국 세바스티안은 두 번째 사형집행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담대함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있었다.
적은 믿음과 큰 믿음
성경은 믿음의 강도뿐만 아니라 크기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믿음은 자랄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영적 성장의 정도에 따라 각자가 지니고 있는 믿음의 분량은 다르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믿음이 단기간에 크게 성장했다(살후 1:3).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들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말씀은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역사했던 것이다(살전 2:13).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적은 믿음"이라고 해서 무조건 "약한 믿음"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17:20). 말하자면 믿음의 분량이 적다고 해도 "확실히 믿은 그 부분"에서만큼은 효과적인 열매를 낳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적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또 멀리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때 베드로가 그랬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 말씀을 신뢰함으로써 물 위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실제로 그 위를 걸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바람이 사나워지자 그는 믿음이 흔들렸고 곧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씀하셨다(마 14:24-33). 적은 믿음의 소유자에게 드러나는 공통된 모습은 자기중심적인 기도이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 자신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한다고 말씀하셨다(마 6:30-32). 또한 믿음이 적은 자들의 기도는 "주여, '나를' 구해주소서, '우리를' 구하여 주옵소서."와 같은 간구에만 국한되어 있다. 물론 인간은 연약하기에 이런 기도를 반드시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필요"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믿음의 시야가 좁은 자들은 하나님께 구하긴 하되 자기중심적으로 기도한다. 아직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할 수 있을 만큼 믿음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한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놀라워하시며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신 적이 있었다. 그는 예수님이 직접 가서 그의 종을 고쳐주시겠다는 것을 사양하면서,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즉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믿었고, 직접 오셔서 안수하는 등의 어떤 눈에 보이는 행동이 없어도 오직 "한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확신했던 것이다(눅 7:1-10). 또한 큰 믿음의 소유자는 믿음의 시야가 넓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유지한다. 수로페니키아 여인이 그러한 사람이었다. 무시당하고 개라고 불릴 만큼 모욕을 당했어도 당시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에 상관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버림받은 것같이 느껴질 때조차,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도도 다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의 혼을 걸고 주님께 간구했다(출 32:32). 바울은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겠노라고 말했다(롬 9:3). 스테판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그들을 용서해주시라고 간구했다(행 7:60). 성경은 그런 그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한다(행 6:8). 이처럼 한 사람의 믿음은 한 민족을 보호하는 거대한 보호막을 형성할 수도 있다(잠 28:2).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신다(겔 22:30).
존 페이튼은 뉴헤브리디스 섬들에 있는 식인종들의 선교사였다. 말라리아와 열병이 창궐하고, 아내와 아들이 죽고, 동료들이 살해되고 구워 먹히는 등 각종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도 그의 믿음은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그들의 혼이 지옥에서 구원받기를 더 열망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오,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삶을 예수님께 새롭게 드려서 뉴헤브리디스에 남아 있는 식인종들을 회개시키는 일에 힘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믿음이다. 마틴 루터의 말처럼, 믿음은 천 번의 목숨이라도 걸 수 있을 만큼 확실해야 하는 것이다. 페이튼은 "주님께서 땅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믿음 하나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식인종 선교를 이루어 냈다.
당신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적고 연약한가? 아니면 크고 강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믿음이 성장할 수 없기에, 당신의 인생을 성경에 걸어야 한다. 믿음의 방패를 앞세워 전선으로 뛰어들라!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고 마귀에게 사로잡힌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