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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 (2) 철과 진흙이 섞이는 마지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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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9월호>
『또한 그 발가락의 일부는 철이요 일부는 진흙이므로 그 왕국이 부분적으로 튼튼하고 부분적으로 부서질 것이니이다. 왕께서 철과 차진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으니 그들은 사람들의 씨와 섞일 것이나 그들이 서로 합하지 못하는 것이 철이 진흙과 섞이지 못함과 같으리이다』(단 2:42,43).▣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이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본지 316호, p. 25 참조)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표적이다. 그렇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는 무엇인가? 진흙인 인간은 왜 철과 섞이려 하는 것일까? "불멸"과 "신성"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당황해한다. 낯설고 불가능한 일처럼 들려서가 아니라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을 듣는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념적으로는 불멸과 신성을 얻으려는 인간의 시도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제는 기술적으로도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화와 죽음이라는 비극을 극복하여 인간의 생물학적인 기질을 "신"처럼 제어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 곧 사이보그공학이나 생명공학, 비유기체 합성(단순히 철을 몸에 이식하고 삽입하는 것 이상으로 유기체적인 몸을 벗어나려 하는 것)으로 죽음의 문제를 극복해서 불멸과 신성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무기물에서 생명이 탄생하여 인간으로까지 진화해 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제는 인간 스스로 진화의 방향과 과정도 선택할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요사이 이런 생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글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발명가로 알려진 레이 커즈와일을 엔지니어링 이사로 임명한(2012년) 지 1년 만에 "칼리코"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죽음을 해결하는 것"을 창립 목표로 하여 인류를 500살까지 살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또한 구글은 최근에 "인간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자신하는 빌 마리스를 영입하여 구글벤처스를 맡겼는데, 이 벤처투자사는 보유 자산 20억 달러 중에서 36퍼센트를 생명연장 프로젝트와 생명과학 벤처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기업 옵틴벤트의 최고 경영자 케이반 미르자는 2015년 1월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오늘 나에게 500살까지 사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욱이 실리콘밸리의 여러 유명 인사들은 이러한 영생불멸의 꿈을 공유하고 있는데, 얼마 전 페이팔의 공동창립자 피터 틸은 영원히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지막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방법으로 죽음을 극복해서 신성을 얻으려는 욕망을 더욱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반 대중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서 그렇지,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시를 통해 언급했듯이, 미래는 우리 안에서 변화하기 위해 훨씬 전부터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고, 또한 이미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 마지막 날들에 트랜스휴머니즘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마지막 날들에 인간이 철과 섞이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어떤 국가나 정부, 단체,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이유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성경의 예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귀결된다. 우선 트랜스휴머니즘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근대사회가 들어서면서부터 자본주의는 투자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성장을 정부, 기업, 조직 등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으니, 매년 상승해야 하는 경제성장률이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현상은 일종의 "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득과 삶의 질을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민 개개인을 세뇌시켰고, 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더 많이 가지도록 탐심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킴으로써 소비 심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에너지와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나 지속적인 무한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제는 서서히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다음으로 "인본주의적인" 측면으로도 살펴보자. 지난 수백 년 동안 인본주의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임"을 내세우면서 인간이야말로 모든 의미의 최종 원천이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최고 권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느낌과 욕망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인간은 유아기부터 인본주의의 슬로건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자라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행하라." 하지만 인본주의는 그 존귀한 인간이 병실과 무덤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할 구원 투수로서 과학기술이 등장했다. 의료 목적을 위해 인간의 몸에 삽입되기 시작한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에너지와 자원 이외에 "불멸"이라는 제3의 자본주의적인 성장 동력을 제시했고,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도 만물의 척도인 인간이 당면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말 그대로 신이 되게 하여 그 존귀함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에 대해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불멸, 행복, 신성을 얻으려는 시도는 인본주의가 품어 온 오랜 이상의 논리적인 결론이다. 즉 오랫동안 냅킨 밑에 감춰 놓은 것을 꺼내어 식탁 위에 펼쳐 놓는 형국이라고나 할까."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는 믿음을 고려하고(인본주의) 여기에 기성 과학계의 역학을 더하고(과학기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필요를 더하면 죽음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과학의 발전과 역사의 속도는 어느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인데, 인공지능, 나노기술, 빅데이터, 광유전학, 생체공학, 로봇공학 등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알고 있지만 이 모두를 종합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식으로든지 이 모든 일이 멈추게 되면 여기에 의존하고 있던 사회와 경제 질서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과학의 발전과 역사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 『이제는 그들이 하기로 구상한 일은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창 11:6)라고 말씀하시면서 바벨탑 건축을 중단시키신 하나님만이 막으실 수 있다. 따라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여 신성을 얻겠다고 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는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다.
▣ 트랜스휴머니즘의 최후
불멸과 신성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력 속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이루어지는 뇌에 대한 접근 방식은 궁극적으로 마귀가 인간의 의지를 점유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마귀는 창세기 3장에서부터 인간의 의지를 점유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사용해 왔다. 이제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마귀는 본격적으로 철과 진흙이 섞일 환란 시대에 인간의 의지를 직접 점유함으로써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로봇 같은 혼혈 인종들로 만들고,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살후 2:4) 그런 자들로부터 경배와 찬양과 숭배를 받으려 할 것이다. 일찍이 사탄은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될 것이다."(창 3:5)라고 하면서 이브를 유혹한 적이 있다. 사탄의 이 치명적인 유혹의 덫이 6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는 인간이 생각해 왔던 불멸과 신성을 갖는 일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실현 가능한 범주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일련의 일들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결국에는 성공할 것만 같았던 "철과 진흙이 섞이는 그 일"은 심한 부작용을 낳고(단 2:43, 『철이 진흙과 섞이지 못함』) 모든 이들에게 고통만 안겨 주면서(계 16:1,2,10) 막을 내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불멸이나 신성은커녕 마귀와 더불어 영원한 멸망과 고통 속에서 벌레와 같은 몸으로 변하는 최후를 맞게 된다(사 66:24, 막 9:44,46,48, 마 25:41).
▣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
사람들은 성경과 하나님을 배제한 채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불나방처럼 멸망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길, 곧 오늘날 사람들이 트랜스휴머니즘을 통해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을 제시해 주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요 1:12, 롬 8:14), 휴거가 일어날 때에는 예수님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입게 된다(고전 15:50-56, 빌 3:20,21, 요일 3:1,2). 일종의 신성과 불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성과 불멸은 결코 마귀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만 얻을 수 있다. 죄로 더렵혀진 인간의 육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는 말씀대로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 이 죽을 육신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썩을 그 육신과 더불어 영원한 죽음인 불못의 고통에 처하게 된다.
철과 진흙이 섞이는 일들이 앞으로는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언급될 것이다. 세상은 철과 진흙이 온전히 섞이는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으며, 이것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세상 역사가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거듭난 성도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혹은 이것저것을 짐승의 표라고 곡해하며 속이는 자들을 쫓아갈 필요도 없다. 다만 그런 현상들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정말로 멀지 않았음을 유념하는 가운데, 세상을 향하여 그날을 대비하라고 경고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일들과 연관된 성경의 예언들을 주의하면서 여러 가지 미혹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가깝다는 소망 속에서 주님을 만날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