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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환 란 (5) Great Tribulation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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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8월호>

대 환 란 (5) Great Tribulation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초림 당시 “적그리스도”처럼 『멸망의 아들』(요 17:12)이라 불렸던 “유다 이스카리옷”은 “죽음의 키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했다. 『주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시는데, 무리를 보라, 열둘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 앞서 가다가 예수께 입맞추려고 가까이 오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배반하느냐?”고 하시더라』(눅 22:47,48). 피터 럭크만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유다의 입맞춤”은 1970년대의 미국 영화 <대부>에서나 볼 수 있는 “마피아들”의 “죽음의 키스”였다. 이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입을 맞춘 그 대상은 이제 곧 “살해될 대상자”로 지목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입맞춤”이란 단어가 총 “여덟 번” 나오는데, 구약 성경에서 “두 번”(잠 27:6, 솔 1:2), 신약 성경에서 “여섯 번”(눅 22:48, 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2, 살전 5:26, 벧전 5:14) 나온다.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권면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16). 베드로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했다.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4). 특히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진 어떤 여인”은 진실한 경배와 섬김 그리고 진정한 감사와 “사랑”의 뜻으로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주의 뒤로 와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주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며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내고, 또 주의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붓더라... 너는 나에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인은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는 것을 쉬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그 여인의 많은 죄들이 용서받았느니라. 이는 그 여인이 많이 사랑함이라. 그러나 적게 용서함을 받은 자는 사랑도 적게 하느니라.”고 하시며 또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죄들이 용서되었노라.”고 하시더라』(눅 7:38,45,47,48).


한편 “속이는 입맞춤”도 있다. 『친구가 주는 상처는 신실한 것이나, 원수의 입맞춤은 속이는 것이니라』(잠 27:6). 원수의 “속이는 입맞춤”은 “위선적인 배반의 입맞춤”으로, 예수님께 입을 맞춘 유다 이스카리옷의 “입맞춤”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욕정에 못 이겨 행하는 “불경건한 입맞춤”이 있으며, 대환란 기간에 마귀와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우상 숭배를 위한 입맞춤”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욥기 31:26,27에서는 『내가 해가 비치는 것을 보거나 달이 밝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몰래 유혹되었거나 내 입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이라고 말씀한다. “손”에 입을 맞추는 이 “입맞춤”은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는”(단 8:25) 적그리스도의 “평화의 입맞춤”인데, 사실 그의 평화는 전쟁과 죽음을 부르는 “거짓 평화”이다. 그에 관한 예표가 “압살롬”의 입맞춤에서 발견된다. 『그리하여 누가 그에게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그가 손을 내밀어 그를 잡고 입맞추더라. 왕에게 재판을 청하려고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같이 행하여,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삼하 15:5,6). 마음을 도둑질당한 이스라엘 백성이 “압살롬”에게 속은 것이다. 결국 이 입맞춤은 그의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는 “전쟁”으로 이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압살롬 자신이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환란 시대에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에 또다시 속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 교회가 휴거되고 나면,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 “칠십 주”의 “마지막 한 주,” 곧 “칠십 번째 주”가 시작된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와 “평화의 언약”을 맺지만, 적그리스도는 환란 중간에 그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것이고, 결국 이스라엘은 파멸의 구덩이로 던져진다. 이것은 마치 초림 당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넘겨 줄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때 이스라엘의 선임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강구하던 중 유다 이스카리옷과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그가 가서 어떻게 주를 배반하여 그들에게 넘겨줄 것인가를 선임 제사장들과 군 지휘관들과 더불어 의논하니 그들이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정하니라. 또 그가 약속하고 무리가 없을 때에 주를 배반하고 그들에게 넘겨줄 기회를 엿보더라』(눅 22:4-6). 여기에서 “약정”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covenant,” 곧 “언약”인데, 이 단어는 다니엘 9:27에서 “이스라엘이 적그리스도와 맺을 언약”에 관해 말씀할 때 사용한 그 단어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적그리스도]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7년] 동안 언약[covenant]을 확정하고』(단 9:27). 유다 이스카리옷은 적그리스도와 동일인으로서(요 17:12, 살후 2:3, 행 1:25, 계 17:8,11), “초림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약정(언약)했던 것처럼 “재림 때” 또다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선지자 이사야는 “사망과 더불어 맺은 언약” 또는 “지옥과 더불어 합의한 언약”이라고 말씀한다. 결국 그 언약은 유대인들에게 초림 때보다 더 큰 저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사망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 우리가 지옥과 더불어 합의하였도다. 넘치는 재앙이 지나갈지라도 우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는 우리가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숨겼음이라』(사 28:15). 이것이 바로 환란 시대에 이스라엘이 적그리스도와 맺을 “거짓 화평의 조약”에 관한 예언이다. 결국 그것은 유대인들을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다. 『사망과 더불어 맺은 너희의 언약이 무효화되며 지옥과 한 너희의 합의가 서지 못하리니 넘치는 재앙이 지나가면 너희가 그것에 짓밟힘을 당하리라』(사 28:18). 다시 말해 적그리스도가 “환란 중간에” 그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그 주[7년]의 중간[전 3년 반이 지난 이후]에 그[적그리스도]가 희생제와 예물을 금지시킬 것이요, 그는 가증함을 확산시킴으로 황폐케 하리니 진멸할 때까지 할 것이며』(단 9:27). 그로 인해 유대인들에게는 “극심한 고난과 괴로움”이 닥치게 된다. 『그것이 나갈 때부터 너희를 잡으리니 아침이면 아침마다, 낮마다, 밤마다 그것이 지나칠 것이요, 그 소식을 깨닫기만 해도 괴로움이 되리라. 이는 침상이 짧아서 사람이 자신을 그 위에 펼 수도 없으며, 이불이 좁아서 자신을 그것으로 쌀 수도 없음이라』(사 28:19,20).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처참하게 고통을 겪고 난 후 대환란 끝에 가서야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01년 이래로 모든 교황은 “이 땅의 화평”을 위해 기도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황들의 기도에 대해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 땅의 화평이 인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의 모든 왕국을 멸하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때까지 인간의 “실패 역사”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쇠락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인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이 땅에 의와 화평으로 다스려지는 완벽한 왕국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영적이든, 도덕적이든 완전히 타락하고 쇠락하여 멸망해 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화평”을 말하면서도 “전쟁”을 한다. 오히려 전쟁하기 위해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정신”이자, “적그리스도의 길”이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주도했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옛 영화를 국민들에게 회복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나치즘”을 주도한 독일의 미치광이 “아돌프 히틀러”도 평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유럽 전역을 전쟁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구소련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주도했던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은 계급 없는 사회와 영속하는 평화를 약속했지만, 음모, 배신, 폭행, 대학살, 예속, 굴종, 세계 정복만이 시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얼마 전 <타임>지에는 “레닌,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 등의 평화 구상안”이 기사로 실렸지만, 결국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6 ․ 25남침을 18일 앞둔 1950년 6월 7일,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김일성은 “평화적 조국 통일 호소문”을 발표했고, 그에 따라 6월 19일에는 “남북 국회에 의한 통일 정부 수립”을 제안하면서 21일에 “남북 국회 대표 회합”을 서울이나 평양에서 갖자고 건의하는 등 계속되는 “평화 공세”를 펼쳤는데, 결국 그것은 남한의 경계 태세를 느슨하게 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다. 급기야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잿더미로 변한 이 한반도에 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3년, 미국과 자유 진영의 남베트남이 공산 진영의 북베트남과 “파리 평화 협정”을 맺었는데, 협정 체결 직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제 베트남에 평화가 왔다!”라고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때 박 대통령은 “글쎄, 베트남이 이제 곧 공산화되겠네.”라고 응수하자, 키신저 장관은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자마자 베트남은 공산화되고 말았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전쟁 주범 “블라디미르 푸틴”은 “평화 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전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미국 및 영국과 맺은 “안전 보장 양해 각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류 역사 속에 크고 작은 “평화 협정”이 8천 번 이상 있었고, 평화 협정의 평균 유효 기간은 2년 남짓이라고 한다. 어떤 평화 협정도 영원한 평화나 영원한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언론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을 보면서 로마 제국의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명언을 떠올렸다고 하는데, 곧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명언이었다. 이렇듯 인간은 평화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존재이다. 그런 인간이 무슨 수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 평화가 이룩되려면 “의의 왕”이요, “화평의 통치자”이신 “영광의 왕”께서 속히 오셔야 한다.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시편 24:10에서는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만군의 주시니 그는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라고 말씀한다. 영광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셔야 한다. 그것만이 『모든 민족들의 열망』(학 2:7)인 “화평”이 이 땅에 완전히 이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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