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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의 구원론 - 지옥으로 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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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8월호>

어떤 ‘교회’가 성경적인 지역 모임인가를 판단하는 첫 번째 잣대는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을 사용하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또한 교리적인 면에서 판단한다면,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과 그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고 가르치는가, 또 믿는 자의 침례를 믿고 실행하는가, 주님의 임박한 재림을 믿고 소망하는가 등이 최소의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일치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이고 거대한 규모의 이단이 있는데, 바로 로마카톨릭이다. 그들의 공식 교리서에 나타난 구원론의 문제점을 고찰함으로써 성경적인 교리는 무엇인지 확인하고, 또 그 가치가 얼마나 큰가를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I. 로마카톨릭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
카톨릭은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 / 81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1) 그런데 그 하나의 교회가 로마카톨릭이며, 카톨릭 ‘밖’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 846 교부들이 자주 반복했던 이 단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이해할 때, 이 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로마카톨릭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그 ‘교회’를 맡기셨으며, 베드로의 후계자들이 이 ‘교회’에 있고, 이 ‘교회’에 구원의 수단들이 주어졌으며, 주님께서도 이 ‘교회’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816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 우리 구세주께서 부활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목을 맡기셨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교회의 전파와 통치를 위임하셨으며, 교회를 영원히 진리의 기둥과 터전으로 세우셨다.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온갖 충만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824 교회 안에 풍부한 “구원의 수단”들이 위탁되었다.』
『981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작용으로 교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984 사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실 때, 그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맡기셨다.』
『830 ‘가톨릭’이라는 말에는 ‘전체성’ 또는 ‘온전성,’ ‘보편성’이라는 뜻이 있다. 교회는 다음 두 가지 뜻에서 보편적(가톨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 교회 안에는 머리와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하게 존재한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을”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방법들은 올바르고 완전한 신앙 고백, 온전한 성사 생활 그리고 사도적 계승을 통하여 서품된 직무 등이다.』
이와 같이 로마카톨릭은 자신들이 유일한 교회이고, 자신들 밖에 있으면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성사들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거짓 교리를 신봉하기 때문이며, 또 그 성사들은 소위 카톨릭 ‘교회’의 주교와 사제들을 통해서만 실행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에 관한 진리에 전혀 무지하며 또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첫째, 카톨릭은 그리스도의 몸과 지역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811, 846, 830). 보이지 않은 유기체로서의 그리스도의 몸과 보이는 조직체인 지역 교회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유일한 하나의 교회이지만, 지역 교회는 각 나라와 지역들에 많이 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은 물론 지상에 있는 어떤 지역 ‘교회’도 오직 하나인 이 교회가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고(마 16:18),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행 20:28) 교회에 대한 약속을 성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셨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탄생했고, 이 몸에 속한 성도들이 각 나라와 지역에서 지역 교회들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둘째, 로마카톨릭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가 아니다. 단지 성경에서 카톨릭의 실상을 보여 주는 말씀을 찾는다면 사도행전 19:37의 ‘교회들’이 바로 로마카톨릭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교회들의 물건을 훔친 자들도 아니고 너희의 여신을 모독한 자들도 아닌데 너희가 여기로 데려왔으니』(행 19:37). 이 ‘교회’는 이교도들의 집회와 다를 것이 없으며(행 19:39), ‘교회’라고 불리지만 이교도들의 우상숭배와 혼합된 ‘교회’이고, ‘교회’ 건물 안에 우상 숭배의 성상들과 물건들이 있는 ‘교회’를 지칭한다. 로마카톨릭의 변개된 성경들과 <개역성경>은 이 구절에서 “교회들”(churches)을 “신전”(temples)이라고 바꾸었는데, 이것은 로마카톨릭과 같이 이교도의 우상 숭배가 소위 ‘교회’ 안에서 실행될 것을 경고한 진리를 제거한 것이다. 카톨릭은 성경적 의미의 교회가 아니며, 유일한 하나의 교회는 더더욱 아니다.
II. 오직 믿음이 아니라, 성사(聖事, sacramentum)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단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는 반면(엡 2:8) 로마카톨릭은 오직 믿음이 아니라 그들이 행하는 성사들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1129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사 생활의 효과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들이신 구세 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1. ‘세례(洗禮)성사에 의한’ 죄의 용서와 구원
로마카톨릭은 교회사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침례에 의한 중생’이라는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 그들의 교리서 곳곳에서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1256)을 역설하고 있다.
『985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첫째가는 주된 성사이다.』
『죄의 용서 / 1263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는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 곧 아담의 죄도, 본죄도, 죄의 가장 중대한 결과인 하느님과의 단절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1237 세례는 죄와 죄를 선동하는 마귀에게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비신자들을 위하여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의 구마 기도를 바친다.』
1) 로마카톨릭은 요한복음 3:5을 왜곡하여 ‘물’이 죄를 씻는 세례를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1257 주님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세례는 복음을 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교회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게” 하라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소홀함이 없도록 주의한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세례성사에 매어 놓으셨지만, 하느님 자신이 성사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1238 세례수는 (세례 때나 또는 부활 성야에) 성령 청원 기도로 축성된다. 교회는 성자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그 물에 내려와 세례 받는 사람들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게”(요한 3,5)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한다.』
『1215 이 성사는 또한 “성령에 의한 재생과 경신의 목욕”(디도 3,5)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사는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을 의미하고, 이를 실제로 이루어 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1227 세례는 깨끗하게 해 주고 거룩하게 해 주고 의롭게 해 주는 목욕이다.』
카톨릭의 주장과 달리 주님께서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신 성경 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 3:5의 물로 태어나는 것은 ‘생물학적인 육신의 출생’을 뜻한다. 최초의 생명이 물에서 나왔듯이(창 1:20) 사람도 물에서 태어난다(사 48:1, 잠 5:15-18). 니코데모 역시 물로 태어나는 것을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알고 말했으며(요 3:4),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3:6에서 물로 태어나는 것이 육신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에서 한 번 육신의 출생을 한 사람이 다시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물 침례가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는 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간증하는 것이 침례이며(행 8:36,37; 16:30-3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한 것을 외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말씀한다(롬 6:1-4).
2) 마가복음 16:15,16과 사도행전 2:38에 대한 왜곡 - 믿고 ‘세례받아야’ 구원받는다?
『977 우리 주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신앙과 세례에 연결시키셨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세례는...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우리를 결합시켜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로마 6,4) 하는 죄의 용서를 위한 첫째가는 가장 주요한 성사이다.』
『1226 오순절 바로 그 날부터 교회는 거룩한 세례를 거행하고 베풀어 왔다. 그 날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설교에 감동받은 군중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사도 2,38).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유다인이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권한다.』
주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침례를 받아야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다. 마가복음 16:15,16과 사도행전 2:38은 유대인들에게 표적과 함께 선포되는 천국복음이다. 이 천국복음은 교회 시대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아니다. 특히 사도행전 2:38은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며,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for the remission of sins]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말씀한 것이다.2) 로마카톨릭의 번역처럼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라는 것은 원문을 변개한 것이다. 로마카톨릭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와 한국 교회의 많은 교단들이 이 구절을 오해하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는 물침례는 결코 육체의 더러운 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전서 3:21은 이렇게 말씀한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
3) 로마카톨릭은 성령침례와 물침례를 구분하지 못한다.
『1277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한다.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듯이 세례도 구원에 필요하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교회에 들어간다.』
『1279 세례의 효과 또는 세례의 은총은 풍요로운 것이다. 이 은총으로 세례 받은 사람은 원죄와 모든 본죄를 용서받고, 성부의 양자, 그리스도의 지체, 성령의 성전이 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어 그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심으로써 거듭나게 하신다. 이렇게 성령을 통해 살아난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영적 위치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엡 1,2장).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성령침례라고 한다(고전 12:13) -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 이것은 물침례가 아니라 영적 침례이다(롬 6:1-4). 이 성령침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들어가게 되며, 반면 구원을 간증하고 물침례를 받음으로써 지역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물침례가 죄인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이단 교리이다.
2. ‘성체(聖體)성사에 의한’ 죄의 용서와 구원
1) 로마카톨릭은 ‘세례성사’ 외에 ‘성체성사’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잘못 가르친다. 성체성사란 주의 만찬을 통해 빵과 포도주에 참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979 “교회가 죄를 용서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하늘 나라의 열쇠를 사용하는 일에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법이 더 필요하다...”』
『1436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일상적인 회개와 참회는 성체성사가 그 원천이며 양식이다.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성체는 “날마다 짓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고 죽을 죄에서 보호해 주는 해독제이다.”』
『1393 영성체는 우리를 죄에서 떼어 놓는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준다.』
『1395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한다(엡 1:7, 골 1:14). 성도는 이 보혈을 통해 의롭게 되고(롬 5:8), 또 거룩하게 된 것이다(히 10:14). 그러나 한 번 회개함으로써 구원받은 성도들이 날마다 짓는 일상적인 죄들을 용서받는 것은 성체성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백을 통해서이다(요일 1:8,9). 주의 만찬은 단지 우리를 위해 드려지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고 기억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주의 만찬에 임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자백함으로써 용서받은 확신 가운데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성별된 삶을 살도록 하는 계기를 주는 것이다. 결코 주의 만찬 자체에 참여함으로써 소위 ‘(영)성체’가 사람들의 죄를 씻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성경적 근거도 없는 이단 교리이다.
2) 로마카톨릭은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하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죄를 씻는다고 가르친다.
『1364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신’(1고린 5,7)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1375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된다. 교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이 지니는 효력에 대한 교회의 믿음을 확고하게 단언하였다.』
『1376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톨릭 신앙을 요약하여 선포한다.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내어 주시는 것은 참으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교회는 항상 이러한 확신을 지녀 왔으며 본 공의회는 이를 다시금 선포하는 바이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라고 불러 왔다.”』
빵과 포도주는 단지 상징이며, 실제적인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6:32,33), 사람들이 이 빵을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보고서도 믿지 않느니라.’고 했느니라.』(요 6:35,36)고 하시며 “주님께 나와 주님을 보고 믿는 것”이 그 빵을 먹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6:39,40). 또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말씀하시며 이 빵이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줄 나의 살』(요 6:51)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이 주님의 살을 실제로 먹어야 된다고 오해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영적인 의미를 실제적인 살과 피로 오해했던 유대인들처럼 로마카톨릭은 성경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성체성사 때 반복적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고 마시며 그것이 죄를 씻는 것이라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고 실행하고 있다.
3. ‘고해(告解)성사에 의한’ 죄의 용서와 구원
로마카톨릭은 주교나 사제들에게 반복적인 죄의 고백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1486 세례 받은 다음에 지은 죄의 용서는 회개의 성사, 고백 성사, 참회의 성사, 화해 성사라고 불리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주어진다.』
『980 세례 받은 사람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할 수 있다. 교부들이 고해를 “수고스러운 세례”라고 부른 것은 합당한 것이었다. 세례가 아직 새로 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처럼 고해성사는 세례를 받은 후 죄에 떨어진 사람들의 구원에 필요하다.』
『1395 죽을 죄의 용서는 오로지 고해성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구원받는 성도들은 이미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어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성도들이 육신을 따라 짓는 일상적인 죄들은 자백을 통해서 용서받는다. 성도들에게는 마리아나 주교나 사제를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다른 중보자도 필요치 않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딤전 2: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인해 담대하게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히 4:16). 따라서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중보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를 가로막는 마귀의 종인 것이다.
이러한 거짓 교리들 외에도 로마카톨릭은 주교와 사제들에게 모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지만(1485,1444,1448,1461), 하나님 한 분 외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막 2:7). 그들은 성경을 거슬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교와 사제들은 고해성사를 한 사람들에게 소위 보속(補贖)이라는 것을 주는데, 그것은 선한 행위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다(1459,1460). 또 카톨릭은 죄를 용서받는 다양한 종류의 선행들이 있다고 가르친다(1434). 하지만 성경은 어떤 행위도 구원을 받게 할 수 없으며(사 64:6, 딛 3:5, 갈 2:16), 그 구원을 온전하게 하거나 지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씀한다. 또 한편 로마카톨릭은 믿음을 갖되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카톨릭 교회 안에 있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161,837), 또 트렌트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표한 대로 『모든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아 또 계명을 지켜 구원을 얻는다.』(2608)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든 거짓 교리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거하는 사악한 이단 교리들이다.
결론
로마카톨릭은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성경은 변개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조차도 교황의 권위와 인간적인 전통으로 대체하여 성경의 권위보다 앞세우기 때문에 이러한 이단 교리들이 양산되고 가르쳐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카톨릭 신자들은 성경에 무지한 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쫓아가고 있다. 한국 교회들이 성경에 무지하지만, 로마카톨릭은 더욱더 무지하고 더 많이 성경을 왜곡한다. 그러나 바른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고 실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카톨릭의 이단 교리들을 바르게 분별하고 미혹받지 않으며, 또 무엇이 진리인가를 바르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BB
주석)----------------------
1)본 논고에서 제시되는 로마카톨릭의 교리는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승인하고 공포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Ecclesiae Catholicae) 라틴어 표준판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번역해 놓은 것을 인용한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카톨릭 교리서의 결정판이다. 지면 관계상 각 항목의 일부만을 발췌했다(www.cbck.or.kr을 참고하시오). 인용문 앞에 제시되는 숫자는 해당 페이지가 아니라, 각 문단마다 붙여진 일련번호로, 편(篇), 부(部), 장(章), 절(節) 다음에 오는 ‘항’(項)에 해당한다. ‘ / ’는 소제목과 항목 번호를 구분하기 위해 필자가 사용한 기호이다.
2)사도행전 2:38의 바른 의미에 대해서는 본지 통권161호(2005년 8월호), pp.66-73을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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