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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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성경”을 배격하는 자들의 “바른 교리”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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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5월호>

최근 세계기독교이단대책협회(이하 세이협)가 “제8회 정기총회 및 이단 대응 세미나”를 주최했다. 11개국에서 모인 70여 명의 소위 “이단 전문가”라는 자들은 글로벌 이단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며 한 편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실로 가관이다. 그들은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하게 완전무오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은 정통 기독교 신학과 양립할 수 없는 이단 교리”라고 규정하며, 이를 전파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간주하겠다는 적반하장격 입장을 표명했다. 나아가 그들은 이단 탈퇴자들의 입을 빌려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체계적인 교리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면서 정통 교회의 바른 교리 교육이 절실함을 촉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창하고도 가소로운 종교적 촌극 앞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인 진리의 기준, 즉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함을 스스로 부정한 자들이 도대체 어떤 잣대로 이단을 정죄하겠다는 것인가? 스스로도 완벽한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는 교단 교리들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도대체 무엇을 “바른 교리”라고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성경 보존”의 약속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단이란 것인가?

자칭 “이단 전문가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성경을 부정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이단이라는 점이다. 세이협은 <킹제임스성경>의 완전성을 믿는 순수한 믿음을 “이단 교리”로 매도했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요 1:1), 곧 예수님께서도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성경 보존”을 믿는 믿음이 이단이라는 것인가?

오늘날 우리 손에 펼쳐서 읽고 만질 수 있는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라져 버린 “최초의 원본”만이 무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거짓말쟁이가 되시고 만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말씀 보존에 있어서 철저한 실패자이신 것이다.

성경 보존의 역사는 시리아 안티옥 계열의 “다수 본문”(표준 원문, Textus Receptus)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리겐 등에 의해 부패된 “소수 본문”(알렉산드리아 사본) 간의 치열한 영적 전쟁이다. 오늘날 소위 “정통”을 자처하는 교단들이 사용하는 현대 역본들은 바로 이 부패한 카톨릭계 사본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딤전 3:16, 요 9:35, 행 8:37)과 삼위일체(요일 5:7), 동정녀 탄생(사 7:14, 마 1:25), 구속 사역(마 9:13; 18:11, 요 1:29), 부활(욥 19:26, 벧전 3:18), 승천(눅 24:51), 보혈(골 1:14), 재림(요 18:36, 딛 2:13, 계 11:17) 등에 관한 결정적 구절들이 심각하게 변개되거나 13구절이 통째로 삭제되어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킹제임스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는 성도들이 어떻게 이단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이 땅에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절대 기준을 허물고 상대주의적 혼란을 부추기며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자들이야말로 치명적인 이단인 것이다.

절대 기준이 없는 “바른 교리”는 그들의 망상일 뿐이다. 세미나에서 “이단 전문가들”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복음의 본질과 바른 교리를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 점은 그들이 얼마나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 줄 뿐이다. “바른 교리”는 실로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바른 교리”는 대체 어떤 교리를 말하는 것일까? 전 세계 11개국에서 모였다는 이단 전문가들과 “정통”이라 불리는 교단들(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침례교 등)의 속을 들여다보라. 그들의 신학은 뼈대가 되는 구원론부터 정면으로 충돌한다.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며 비성경적인 예정론과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 따위를 진리라고 가르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자유의지를 인정하며 “행위 구원”과 “구원 상실 가능성”을 주장한다. 은사주의자들은 사도 시대 이후로 중단되어 버린 방언을 성령 세례의 표적으로서 제시하며, 사도들을 흉내 낸 거짓 치유의 은사를 자랑한다. 급기야 종말론에 이르면 전천년주의를 배격하는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가 뒤엉켜서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상호 충돌하는 교리들로 인해 자신들도 혼란스러우면서 어떻게 “바른 교리”를 운운할 수 있는가? 답이 여러 개라는 것은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옛 바빌론 종교가 기독교의 옷을 입고서 등장한 이교도 로마카톨릭이나 흉내 내면서 성경에 없는 유아 세례를 실행하고, 카톨릭을 따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자들에게 어떤 영적 분별력이 있겠는가?

신약교회사에서 가장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전염병자가 되어 세상에 있는 온 유대인 사이에 소요를 일으킨 자로서 나사렛 이단의 두목』(행 24:5)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이단자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서』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으며 의인과 불의한 자에게 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게 되리라는 소망을』 유대인들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듯이』 그도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고 있』었으며 『이 소망 때문에』 바울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항상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지니려고 힘쓰』고 있었는데(행 24:14-16), 이 “성경대로 믿는 이단자”가 지적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바로 그 당시 돈에 눈이 먼 자들로 인해 횡행하던 “성경 변개”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여러 사람들과 같지 않고 오직 성실함으로써 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정통”이라는 거대한 간판 뒤에 숨어 바른 성경에 대한 믿음을 이단이라고 조롱하는 자들은 스스로 영적 소경임을 만천하에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법이다(마 15:14). 그들은 누구도 바른 진리로 계도할 수 없다. 부패한 사본들에서 나온 변개된 성경과, 그로 인해 빚어진 인간의 혼란스러운 전통들과 교단 교리들을 버리고, 일곱 번 단련된 순수한 은과 같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다. 그 완전한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라! 다수가 모였다고 해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바른 성경에서 나온 바른 교리를 통해서만 그 일이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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