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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올림픽을 만든 “그리스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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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9월호>

지난 7월 막을 올린 파리 올림픽은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이념에 경도된 사람들이 “저탄소”나 “성 소수자의 권리” 등의 구호를 올림픽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는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며 충분한 단백질과 칼로리를 공급받아야 할 운동선수들에게 “채식 위주의 식단”을 내놨다. 이에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어떤 선수는 “식당에 인원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닭고기 한 조각도 먹기 어렵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조직위는 선수촌과 선수들이 탈 셔틀버스 안에 에어컨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폭염으로 인한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각국 대표단 차원에서는 에어컨을 구비해도 좋다는 타협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러면 빈곤국 선수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평등”을 지상 가치로 삼는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자가당착 그 자체였다.
한편 “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논란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안젤라 카라니” 선수의 인터뷰가 그 발단이었다. 그녀는 “펀치를 맞는 순간 경기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는데, 이는 상대 선수인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의 펀치가 “남자 주먹” 같았기 때문이다. “이마네 칼리프”는 국제복싱협회(IBA)로부터 성별 테스트 “부적격” 판정을 받은 선수였다. 사유는 남성의 염색체(XY)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복싱협회가 부정부패의 문제로 복싱 경기를 관장하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염색체”가 아닌 “여권”에 기재된 성별을 기준으로 “그녀(?)”의 성별을 판정했기 때문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non-binary)으로 규정하는 두 명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 서는 일도 있었다. 하기야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급의 대회가 아닌 국내 대회 이하 급에서는 아예 “남자 선수”가 트렌스젠더 수술을 받고 버젓이 “여자부” 경기에 출전해서 입상한 일도 이제는 비일비재하니, 이 정도의 일은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을 만하다고 하겠다.

그토록 논란이 될 일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뭇매를 맞은 사건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개막식”이었다. 세계 각국에 방송으로 송출된 개막식 영상에서는 남장 여자, 여장 남자들이 수없이 등장하여 “관능적인” 자태를 뽐냈고, 성적 지향성이 모호한 세 명의 인물들이 “다자연애”를 하는 듯한 장면도 나왔다. 그 “하이라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장면이었는데,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의 자리에 왕관 같은 것을 쓴 여성과 여장 남자(드래그 퀸)들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탁 한가운데서는 디오니소스(술의 신)를 패러디했다고 하는 파란색 망사 옷을 입은 반나체의 남성이 “벌거벗은”(Nu)이라는 곡을 불렀다.

당연하게도 정치권 일각과 교계는 물론, 퀴어 축제도 아닌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런 장면을 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비난이 일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조직위와 관계자들은 “다양성,” “평화,” “관용”(똘레랑스) 등을 표현하려고 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냈고, 혹 조금이라도 모독을 느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는 아예 개막식 하이라이트 영상을 내려 버렸다.

해당 장면의 중심에 섰던 프랑스의 배우 겸 가수 필리프 카트린느도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는 자신의 공연이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반나체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은 나체 상태에서는 무기를 숨길 수 없으므로 전쟁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혹 모욕감을 느꼈다면 용서를 바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랐고 기독교에서 가장 좋은 점은 용서입니다.” 필리프는 물론 공연에 출연한 대개의 프랑스인들도 같은 입장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프랑스는 전체 국민의 80% 이상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식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대부분 로마카톨릭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나 동성연애 같은 일들이 신구약을 막론하고 죄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신 22:5; 23:17, 고전 6:9; 11:14,15, 롬 1:26,27). “환경 운동”을 펼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행보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어차피 조만간에 끝장이 날 것이고(고전 7:31, 요일 2:17), “지속가능한 세상”은 장차 이 땅에 다시 오실 만왕의 왕께서 자연계를 회복시키실 때에야 가능하지(사 35:1; 55:12, 13)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체성과 가치관이 혼란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이런 “기초적인” 지식은커녕,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과 진리를 전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현실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잘 알려진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조차 지난 “부활절”에 있었던 영국의 라디오 방송국 L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문화적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했으니, 사태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도킨스는 자신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믿지 않지만, 기독교 문화가 그의 조국인 영국의 가치와 잘 부합하기에 기독교가 쇠퇴하고 이슬람교가 부상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 말을 받아서 자신도 “문화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이가 있었으니, 바로 화성에 가겠다며 현대판 바벨탑을 쌓고 있는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데일리와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훌륭하고 현명하다고 믿는다.”라고 했고, “기독교의 원칙을 믿으며 그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다른 기독교 매체에서 예수님을 당신의 주이자 구주로 받아들이겠냐는 권면에도 마찬가지의 대답을 내놓으며 에둘러 거절한 바가 있었다.

보다시피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란 “교리”가 아닌 “교훈”에 관한 문제이다(개역성경/개역개정판에도 “교리”라는 단어가 없다).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시 11:3)라는 말씀이 적용되는 이보다 더 적합한 상황이 있을까 싶다. 정말로 이런 세상에서는 점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사탄의 진영에 속해 있는 혼들을 주님의 편으로 이겨오려고 해도 “나는 ‘크리스천’(그리스도인)인데요?”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이고, 죄에 대해 책망을 하려고 해도 “당신처럼 남을 비방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오!”라는 반박이 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데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성경”이 “기독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신학교의 교수들과 교단 교회의 목사들에게 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완벽한 성경이란 사라져 버리고 없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성경”을 믿는 것 사이의 연관성이 사라진다. 그렇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신성, 부활, 휴거, 재림, 문자적인 지옥과 하늘나라 등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 목사들”이나 “문화적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혹 “성경”이 없어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믿음의 근본 사항들”과 같은 것들로 “진짜 그리스도인”을 판별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려는가? 그런 우스갯소리는 집어치우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그리스도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것이 공표된 지 채 400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 꼴이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문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해결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주신 “책”을 통해 그분의 완전한 계시를 주신다는 믿음, 다시 말해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받아들이는 일 없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조차도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란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 구원받은 사람이요(행 26:28), 더 나아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행 11:26). 주님께서는 성경이 그분에 대해 증거하는 책이라고 말씀하셨기에(요 5:39), 그런 성경을 믿지도 않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도 않고, 심지어 주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적조차 없는 사람들은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적인 판단이다. “기독교에 대한 호의”나 “말씀에 대한 존경”을 내비치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것은 침례인 요한을 참수토록 했던 헤롯이나(막 6:20-28) 심지어 사탄이라도(마 4:6) 할 수 있는 일이다.

성경을 유일한 “잣대”로 삼으면 모든 것이 이처럼 명쾌해진다.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최종권위로서의 성경을 받아들이고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겠는가? 아니면 “성경은 사라져 버렸다.”라는 학자들의 말을 따라 “막장 올림픽”을 연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에 합류하겠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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