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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도 회개도 모르는 세 원로 목사들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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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5월호>

죄도 회개도 모르는 세 원로 목사들의 참회



지난 4월 8일,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에서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주최한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가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제가 잘못했습니다’였다. 거기에는 한국기독교를 대표한다는 김창인, 강원용, 조용기 목사가 참석했고, 이들은 각자 15분씩 ‘제가 잘못했습니다’를 주제로 그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했다. 이들 세 사람은 한국 교회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누가 나무라지도 않았는데 이들 스스로 양심에 찔려 고백한 죄목이라는 것을 보면, 이들이 죄가 뭔지도 모르고, 회개할 줄도 모르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이들의 회개 사건은 세상의 대형 신문사들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물론 그것이 그들의 구미에 잘 맞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요일 4:5).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아주 터무니없고 비성경적인 것이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제멋대로 섬기는 가짜들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옳은 소리 하고서 스스로를 정죄한 김창인 목사
김창인 원로목사(충현교회)는 1945년 해방 후 개신교가 일제 때의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장로교와 고려파로 분열했는데,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으며, 자신이 광복 직후 평양, 부산 등에서 몇몇이 모여 재건교회를 하면서 함부로 입을 열어 다른 사람을 저주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에 자신이 교만해지면서 판단력이 어두워지고 사랑이 없어져서 신사참배를 한 교회를 가리켜 “저건 예배당이 아니라 ‘마귀당’이다.”라고 했으며, “그런 교회의 목사들과는 밥도 같이 안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하늘 나라는 회개한 자만 간다. 용서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바란다.”며 말을 마쳤다.
김목사의 고백대로라면, 신사참배를 한 교회들을 책망한 것은, 신사참배의 죄를 성경적으로 분별해서가 아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상들에게 절하는 자들에 대해 ‘애국적 울분’을 울컥 일으켰던 것이다. 자신도 해방 후 교회 재건을 위해 노력한 인물 중 하나였는데, 한국 개신교의 현실은 분열 그 자체이기에, 백발이 성성한 지금 인생 역정을 회고해 보니 그 분열의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더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신사참배한 교회의 예배당을 ‘마귀당’이라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성경에 따르면, 신사참배한 자들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모여 있는 예배당은 예배당이 아니라 ‘마귀당’인 것이다.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모인 곳에 마귀가 경배받으려고 오니 마귀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목사는 옳은 일을 해놓고 이제 와서 왜 스스로를 정죄하는가? 그것은 그가 ‘모르고 한 옳은 소리’로 인해 개신교가 분열되었고, 그래서 교회일치운동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했던 자신이 괴로웠던 것이고,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연합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런 회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하늘 나라는 회개한 자만 간다. 용서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신사참배한 자들의 예배당을 마귀당이라고 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아니하시면, 하늘 나라에 못 갈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개신교는 이처럼 기본적인 구원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목사를 교계의 지도자로 삼고서 그들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청년들의 영광은 그들의 힘이요, 노인들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잠 20: 29)고 하지만, 이런 잘못된 것을 위해 성성해진 김목사의 백발은 전혀 아름답지 않아 보인다.

개신교 일치와 자연보호 못한 죄로 고개 숙인 강원용 목사
강원용 원로목사(경동교회)는 “구십 평생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자면, 줄이고 줄여도 책 한 권에 못 담고, 짧게 말해야 5시간은 걸릴 텐데 15분 동안만 이야기하라니...”라며 서두를 뗐다. 그는 “1965년부터 불교, 원불교 등 종교 간의 대화운동을 펼쳐왔는데, 정작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독교 내의 대화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서로 갈라지고 대립해온 개신교 안의 참된 대화와 협력에 힘썼더라면 뭔가 달라진 것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교파만 옳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죄를 환경문제로 돌리며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중심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생명 중심이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교회는 도대체 무얼했는가? 이를 깨달았기 때문에 숨을 거두는 날까지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원용 목사는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목사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교연합을 위해 발벗고 뛰어다녔다. 그가 강단에서 뭐라고 하든지, 그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않는 죄도, 심판도, 지옥도, 주님의 보혈을 통한 혼의 구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믿지 않는 가짜 중의 진짜 가짜이다. 정말로 그가 구십 평생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자면, 줄이고 줄여도 책 한 권에 못 담고, 5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의 고백은 자의적 겸손에서 나온 거짓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죄는 책 한 권에 이루 다 담을 수도, 5시간 동안에 다 말할 수도 없다. 사실, 그가 개신교 안의 참된 대화와 협력에 힘쓰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교한 한국 개신교가 정신차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는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모두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롬 8:19-23, 사 11:6-9; 35:1) 지구를 주름진 열 손가락으로 어찌해 보려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그는 성경을 믿지 않는 인본주의자임일 뿐이다.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는 대열에 서 있다 하면서 주님을 대적하고 있는 그에게도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숨을 거두는 날까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외치지 말고, 이제라도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에게도 다른 이들처럼 『세상의 모든 자들의 길』로 갈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왕상 2:2).

잘못 용기 내어 고백한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다음과 같이 회개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값싼 은혜가 아닌데 값싼 은혜에 안주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삶이 없는 ‘값싼 은혜’를 가지고 살았다. 은혜와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새 사람으로 살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율법과 계명을 받들고 은혜와 진리 속에서 새 사람으로 살겠다. 말로만 사랑을 하고 진실로 실천하지 못해 마음이 크게 고통스럽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성인들의 발자취를 못 따라가 죄송하고 부끄럽다. 사회악에 대해 나쁘다고 말하지 못한 비겁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웃과 자연 훼손에 대해 무관심했다. 남은 기간 사회정의를 위해, 사회악을 교정하고 자연을 위해 살고, 우주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세계적인 초대형 교회의 목사가 자신의 죄를 고백했으니,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렸을 것이다. 인물의 비중이 크면 클수록 참회의 파장이 커지는 법이다. 조목사는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훼퍼가 제시한 ‘값싼 은혜’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가 무슨 용어를 사용했건, 그의 삶은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삶이 아니었다. 그는 불교대학에 가서 주님의 구원론과 부처의 구원론이 같다는 망언을 했고, 복과 건강을 약속하는 은사주의로 벌어들인 돈으로 신문사를 차려서 세상일에 관여하고, 또 그것으로 돈을 더 벌어들였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는 물질지상주의, 건강지상주의의 천국으로, 주님의 은혜는 사람들로부터 싸구려 취급을 받아 현세에서의 복과 건강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하나님께서 흘리신 귀한 피가, 조목사로 인해서 돈을 벌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권투 선수의 코피만도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조목사의 회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그가 참으로 이런 일들을 회개했다면 좋았겠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자, 그의 회개가 결국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도록 하자. 죽는 날까지 사회정의를 위해, 사회악을 교정하고 자연을 위해 살고, 우주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주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사회악을 교정하라고 하셨던가? 친히 지상에 재림하시어 세상의 악을 쓸어버리고 만물을 원상으로 회복시켜 의의 왕국을 세우실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 19:11-16). 그런데도 이웃과 자연 훼손에 대해 무관심했다며 자연을 위해 살겠다는 말은 ‘혹시’ 도롱뇽을 위해 목숨을 건 지율이라는 여승에게 감동을 받아 한 말이 아닐까? 불교대학까지 찾아가며 구원론을 논할 정도라면, 그녀와 함께 단식하지 못해 교계 지도자로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목사는 우주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사회악을 교정하고 자연보호 캠페인 따위를 벌인다고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조목사가 세상에서 손을 떼고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요 17:9) 가만히 있어도, 『악인은 자기의 악함 가운데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잠 14:32),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조목사의 도움 없이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를 값지게 만드는 길이며, 우주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하는 길인 것이다.

이 날의 설교는 방지일 목사가 맡았다. 주제는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이다. 그런데 방목사는 누구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 자리에 ‘회개하려고’ 온 이 세 목사들에게 하는 설교가 아니던가! 그는 이 설교를 알고 준비한 것인가, 모르고 준비한 것인가? 방목사의 설교 제목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이 세 목사들의 귀에 쟁쟁하게 울렸을 것이다. 스스로 성경이 제시하지 않는 죄목을 만들어 마치 겸손한 주의 종들인 양 위선을 부렸으니, 이 제목이 그들에게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주의 종을 가장하여 회개의 위선을 부리러 모인 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어 버린 것이다. 『악인은 자신의 악으로 인하여 넘어지리라』(잠 11:5).
참된 회개란 성경에서 금하는 것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죄가 무엇이고 회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세 목사들도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성경적인 회개를 하고 멸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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