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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회”는 “반카톨릭”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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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카톨릭의 정체와 진정한 신약교회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이 마치 개신교가 카톨릭이라는 큰 집에서 나와 프로테스탄트라는 딴 살림을 차린 “작은 집”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약교회사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관점이며,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후, 그 여세를 몰아 프로테스탄트들이 각자의 리더들을 따라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그들의 실행 역시 많은 부분에 있어서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실행을 답습하고 있어서 온전한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 특히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부터 이미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초대교회 시절부터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그 후대에 가서 “재침례교도”(Anabaptist)라 불리게 되었다. 로마카톨릭의 거짓 세례를 반대하고 다시 침례를 받았기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재침례교도”로 불렸던 것이다.재침례교도들은 카톨릭의 모든 비성경적인 실행들을 반대하는 무리들이었고, 마틴 루터와는 비교될 수도 없는 성별된 믿음 생활을 고수해 온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그들과 루터와의 논쟁을 살펴보면 재침례교도들은 성경을 철저히 따랐던 반면, 마틴 루터는 유연함을 보였는데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문자적인 실행에 있어서 여전히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그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부른 원인이 되었던 구절, 즉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네게는 믿음이 있으나 내게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7-19)는 구절을 몹시 싫어했는데, 오히려 그의 실제 실행이 성경적이지 못하여 이 구절의 정죄를 받을 뿐이었다. 그는 카톨릭의 도덕적 타락을 아주 싫어했으면서도 침례교도들이 지켜온 엄격하고 거룩한 생활에 대해서는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래서 종교개혁 이전까지 지하에서 믿음을 지켰던 재침례교도들은 루터에 의해 카톨릭의 기세가 꺾여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진정한 성별 때문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과 교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교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 교리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루터는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침례에 의한 중생을 가르쳐서 더욱더 혼란스럽게 했다. 주의 만찬과 침례에 관한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도 카톨릭의 교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루터와 재침례교도들 사이에는 심한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비록 루터가 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나왔다고 하지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선조들로부터 받은 믿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비성경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과감하게 선을 그었다. 그래서 “침례교도”라는 뜻은 모든 면에서 “반카톨릭”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교회사가들이 재침례교도들을 평가했는데, 그중 루터교 역사가인 “모쉐임”이라는 사람이 “재침례교도라고 불리는 이들의 기원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베일에 쌓여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학자는 “재침례교도들은 사도들의 시대 이래로 전 시대에 걸쳐 사도들의 교리들을 순수하게 보존해 온 유일한 기독교 공동체라고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아이작 뉴턴 경 또한 “침례교도들은 로마카톨릭과 결코 타협하지 않은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침례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주 오래전부터 감히 침례교회라 부르기가 부끄러울 정도가 되어, 그들은 “자칭 침례교회”라 해야 옳게 되었다. 그저 이름만 가져다 쓰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그러나 참된 침례교도들의 구원관은 확실하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고, 후에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믿고 강조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데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만이 가능하다. 세상과 타협하고 루터가 원했던 맥주나 마시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삶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교황이 휩쓸고 간 자리에 비성경적인 말들만 난무하고 결코 인간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떠벌리는 등 기만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소경인 많은 종교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어 “비바 파파”를 합창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서 비웃고 계셨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하늘들에 앉으신 분이 웃으실 것이요, 주께서 그들을 조롱하시리로다』(시 2:4). 카톨릭으로부터 참된 침례교도들이 당한 박해는 피눈물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 발자취를 “피흘린 발자취”라 부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 되었으므로)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 로마카톨릭이 암흑 시대 때 침례에 관한 문제로 그리스도인을 죽인 수가 무려 6천 7백만여 명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마귀의 집단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며, 십자군전쟁 역시 무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보겠다는 육신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사악한 범죄였음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사실이 이런데도 세속사나 교회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카톨릭 교황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게 된다.
성경은 교황과 그의 카톨릭을 향해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또 일곱 호리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와 대화하며 말하기를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큰 창녀의 심판을 네게 보여 주리라. 땅의 왕들도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도다.”라고 하고 그가 나를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어가니라. 또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주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또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그 잔은 가증스런 것들과 그녀가 행한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더라.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더라. 또 내가 보니,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더라.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의아해 하며 놀랐노라』(계 17:1-6). 이렇게 정확하게 교황의 정체를 폭로하는 성경 구절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아무렇지 않게 따르고 칭송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침례교도들, 곧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저들의 음흉한 미소 뒤에 순교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어떠한 점수도 주지 않는다. 참된 침례교도들은 철저히 반카톨릭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