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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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신대 구약학 교수의 불신과 성경비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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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5월호>

두 달전 <침례신문>에는 침신대 신학과 신약학 교수가 사도행전을 왜곡하여 방언에 관한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글이 실려서, 그 주장을 비평하면서 “방언”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분석해 보았다(<성경대로믿는사람들> 통권 204호 p.22, 『어쨌든 간에 “방언”은 “언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침신대 교수』).
그런데 이번에는 또 동일 신문에 동일 신학대학 신학과 구약학 교수(우택주 교수)가 “구약성서와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는 글에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 당시의 기록을 왜곡하여 가르치는 내용이 연거푸 실렸다.

1. 우교수는 우선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서 “돕는 자”로서 여자를 지으셨다는 창세기 2장의 기록을 해석하며 성경을 공격하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여성비하의 풍토가 바로 여자가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는 이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디모데전서 2:12-14 1) 의 말씀 역시 이러한 태도를 지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인류의 문화가 잘못 이끌어간 남성우월주의가 디모데전서의 진술에 남게 되었다고 성경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교수는 실제로 “돕는 자”의 히브리어 의미는 “같은 종류로서 그에 합당한 구원자”라는 뜻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남녀의 완벽한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월 20일자 <침례신문> 제7면).

2. 우교수는 또 창세기 1-11장과 같은 본문은 “신화”라는 장르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현실에서 그런 사건이 기록된 그대로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어떤 이념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특히 뱀의 씨와 여자의 씨가 서로 적대 관계가 된다는 창세기 3:15의2)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기독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 확대해석이고 논리적 비약이며 문자적 대응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교수에 따르면 창세기 3:15의 의미는 그저 땅에 기어다니는 파충류인 뱀이 사람의 발꿈치를 물고, 사람은 뱀의 머리를 때려서 퇴치하는 내용이란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기의 주장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도 대지 않고, 주장만 늘어놓았다는 것이다(3월 27일자 <침례신문> 제7면).

3. 우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한 번 더 분명하게 피력했다. 그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성경을 “지나친 신비감”에 젖어서 읽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창세기 3장의 “말하는 뱀”이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무 등은 모두 카나안 땅에 갓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과 관련된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한 “문학적 기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창세기 3:8에3)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도 “사실을 떠나” 지극히 문학적이라며, 뜨거운 열기를 피해 서늘한 저녁에 동산을 거니는 나이 많은 노인처럼 묘사된 하나님의 모습에서 전능하심을 찾아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4월 3일자 <침례신문> 제7면).

침신대 신약학 교수는 성경 본문을 왜곡하여 거짓 교리를 지지하더니, 침신대 구약학 교수는 아예 성경을 믿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판단으로 성경을 비하하고 있었다. 침신대 교수들이 이러하다면 그곳의 신학생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서 목회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세 번에 걸친 우교수의 주장들에 대해 하나하나 점검해 보도록 하자.

1. 우교수는 지나치게 여성들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돕는 자”를 히브리어로는 “구원자”라고 규정한 그의 생각은 일종의 논리적 비약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에제르, ר󰖂󰘠)가 하나님께 쓰였고, 하나님께 쓰일 때는 “도우신다”는 말이 “구원하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단어 자체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여자를 “돕는 자”로 규정한다. 이것은 우교수가 오해한 것처럼 여자를 비하하는 말도 아니고, 또 우교수가 억지로 주장한 것처럼 오히려 여자를 “구원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말도 아니다. 여자는 혼자서는 부족한 남자의 합당한 짝이지만, 또한 남자를 위해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질서가 존재한다(고전 11:3,8).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남녀 간에 1%의 차이도 없고(갈 3:26-28), 남녀가 삶 속에서 서로에게 100% 똑같이 행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고전 7:3,4)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남녀 간에는 서로를 향한 자세에 기본적인 차이가 있으며(엡 5:33, 벧전 3:1,7), 교회 내에서 행하는 태도에도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딤전 2:11,12, 고전 14:34-37).

2.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 것은 우교수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해서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신화”라고 취급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는 믿을 것인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믿을 것인가? 그가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에 대해서는 믿을 것인가? 그가 장차 임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는 믿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거듭날 수 없다(고전 15:2-4, 벧전 1:3). 우교수가 어디까지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태도는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들의 태도와 마찬가지다.
창세기 3:15의 내용은 그저 숲속을 기어다니는 뱀이 사람을 물었더니, 사람이 화가 나서 막대기로 뱀을 때려 죽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뱀은 단순히 파충류인 동물이 아니다. 이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로서, “리비야단,” “용”이라고도 불리는 그 “뱀”이다(사 27:1).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이다(계 12:9). 그 뱀의 씨는 단순히 숲속을 기어다니는 파충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씨 역시 단순히 숲속을 걸어가다가 뱀에 발을 물린 사람이 아니다. 여자의 씨는 결국에 그 뱀의 머리를 부수시어 그 뱀을 죽이실 분이시다. 그 영적 존재를 죽이실 분의 정체는 다름아닌 『주』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다(사 27:1). 여자의 씨는 바로 그 뱀과 적대 관계에 있으신 하나님께서 여자에게서 나서 인간으로 오신 분이시다(갈 4:4). 성경을 믿는다면 어떤 다른 해석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단지 “기독론적인 해석”이 아니다.
여자의 씨의 발꿈치가 부서진 사건은 바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대못으로 그분의 발을 으스러뜨린 사건이다. 그러나 그분이 뱀의 머리를 부수시는 사건은 훨씬 후에 이루어진다(롬 16:20). 이 일은 『그 날에』(사 27:1), 곧 주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 그의 처소 하늘에서 나오실 때에 있을 것이다(사 26:21).

3. 우교수는 창세기 3장의 “말하는 뱀”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지나친 신비감”에 젖어서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그것은 “파충류”인 동물이 인간에게 말하면서 죄짓도록 유혹한 것이라고 성경이 말하는 줄로 우교수가 착각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사용한 “문학적 기교”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실제로 사탄을 지칭하면서 사탄을 상징하는 “뱀”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뿐이다. 그 “뱀”이 말했다는 것, 그 “뱀”이 인간에게 죄짓도록 유혹했다는 것, 그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무가 있었다는 것은 모두 “문학적 기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아주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완벽하게 문자 그대로를 의미하는 진술들이다.
창세기 3:8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도 전혀 “문학적”이 아닌 완벽하게 실제적인 서술이다. 우교수는 사람들이 “지나친 신비감”에 젖어서 성경을 읽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우교수 자신이 너무도 “지나친 편견”에 사로잡혀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창세기 3:8 본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뜨거운 열기를 피해” 동산을 거니셨다는 내용이 없다. 우교수는 거기에 묘사된 하나님의 모습에서 전능하심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지만, 거기에 나오는 그 어떤 내용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는 전혀 무관하다. 창세기 3:8,9에4) 나오는 내용은 오직 하나님께서 시원할 때에 동산을 거니시며 아담을 부르셨다는 것뿐이다.


우교수의 주장에는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구약학 교수라는 직책답지 않게 구약성경을 너무 많이 오해하고 있었고, 신학대학 교수라는 직책답지 않게 성경을 너무 못 믿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오해하고 못 믿고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그는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대로 가르치고, 또 자신이 믿지 못하는 대로 공개적으로 성경을 비하하는 발언을 신문에 게재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침신대는 성경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성경을 좀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교수진으로 채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가진 목회자들이 침신대를 통해 배출될 수 있지 않겠는가? BB
주석)----------------------
1)『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후에 이브며, 또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죄하였음이라.』
2)『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하시고』
3)『그들이 날이 시원할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의 면전에서 피하여 동산 나무들 사이에 자신들을 숨겼더라.』
4)『그들이 날이 시원할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의 면전에서 피하여 동산 나무들 사이에 자신들을 숨겼더라.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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