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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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원하는 “화해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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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1월호>

1996년 년 12월 7일자 크리스챤 신문은 7면에 “화해의 신학으로의 신정통주의”란 제목으로 11월 26일 연세 교회사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 세미나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다. 세미나에서 “한국교회와 신정통주의, 한국교회사적 입장”이란 제목의 발제자로 나선 이태경 목사(연세교회사학회 간사)는 “...신정통주의 신학은 보수와 진보가 만나며, 종교개혁의 신학과 20세기의 진보적인 신학 사조들이 만나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화해의 신학으로의 신정통주의”를 말하며 이 신학사조를 전망했다.
알다시피 신정통주의란 한국 교회에서 가장 큰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의 교리이다. 신정통주의는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소위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보수와 진보, 종교개혁의 신학과 20세기의 진보적인 신학 사조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세기의 진보적인 신학 사조”로 표현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각종 신학이 난무한다. 그 신학들은 더 이상 십자가나 예수 그리스도, 천국, 지옥, 죄, 심판,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마저 부인해 버린 사신(死神)신학 등도 포함된다.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신 하나님과 사탄이 벌이고 있는 치열한 영적 전쟁에는 중립지대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당연히 절대 진리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 자유주의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신정통주의 역시 비진리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지면상 신정통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적 입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으나, 성경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보면 다른 것들을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정통주의가 성경의 영감설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성경은 100%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정통주의와 달리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도 포함하고 있다.”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 기록한 것이므로 수많은 오류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을 다른 인간의 책들과 같은 비평방법(그들은 이것을 “온건한 역사 비평적 방법에 의한 성서 해석”이라고 표현한다.)으로 대함으로 성경의 절대 권위를 거부한다.
신정통주의가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는 정통주의와 자유주의를 화해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신정통주의자들이 추구하는 화해는 단순히 화해를 위한 화해일 뿐이다. 하나님께 모독이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화해의 이름으로 덮어 버리고 가리고자 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자들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믿음을 저버린 자들이 어찌 함께할 수 있겠는가?
신정통주의자들은 “화해”를 떠들기 전에 먼저 그것을 지시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화해가 가능한지 배워야만 한다. 화해를 부르짖는 그들이야말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화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다. 마치 성령을 부르짖는 은사주의자들이 성령님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듯이, 사랑을 떠벌리는 자유주의자들이 고린도전서 13장의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는” 사랑을 알지 못하듯이 말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의 대립 가운데에 그 중간형태를 만든 뒤 그곳에서 화해시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와 지옥사이에 연옥이라는 화해장치를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화해의 방식은 악이 선에 무릎 꿇게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노력과 양보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분은 모든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섞으시는 분이 아니라 철저히 나누시는 분이다. 좋은 것은 창고에 들이시지만 나쁜 것은 불태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준엄하시고 공의로우신 심판을 통해 모든 악을 응징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화해는 악인을 지옥으로 던져 버리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악의 근원자인 사탄을 반드시 불못으로 집어던지심으로 모든 일을 종결지으실 것이다.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에 타협하지 않으시며, 그들에 대한 진노와 저주를 멈추지 않으신다.
둘째, “화해”의 직분을 맡았다고 고백하는 바울은 결코 신정통주의자들처럼 화해를 선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고후 5:18).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거룩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다. 화해는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죄로 삼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고후 5: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제시하신 화해(하나님의 은혜의 복음)를 끝까지 거부한 자들은 조금도 아낌없이 지옥과 불못으로 던지실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확고부동한 진리 위에 선 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이 그가 가진 절대적인 진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이 말하는 화해는 절대 불가능하다. 절대적인 권위를 포기한 자들은 자신의 기준들을 서로 맞추고 타협하며 조정하여 “화해”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빛이 꺼지지 않고서야 어찌 어두움과 사귈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 안에 성령이 계시는 한 어찌 믿음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식들이 어떤 부분을 함께할 수 있겠는가?(고후 6:14-16).
하나님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 사이에 서 있는 신정통주의자들의 태도는 20세기의 마지막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라오디케아 교회는 선과 악에 대해 위선적이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 교회를 토하여 내치시겠다고 경고하신다.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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