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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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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4월호>
1. 민족적인 부활이것은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한 국가의 부활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우리를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삼일 만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호6:1-2).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먼저 문맥 상으로 볼 때, 호세아 선지자의 말은 에브라임과 유다로 대표되는 유대 민족, 즉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호6:4).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집”들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 찢기고 매맞은 한 국가가 회개하는 울음일 뿐 “무덤 속에서 죽어 있는 자들”의 울음은 아니다. “치유”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싸매어 주실 것”은 지금 각처에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가 다시 그들의 고토에 모두 모여 결합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를 살리시며”라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에서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리시며”라는 말은 “종교적 부흥”처럼 단순히 육체적인 부활이 아닌 영적 부활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여호와께서 “살리실 때”가 언제냐는 것이다. 성경은 “이틀 후에”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이틀 후”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24시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흩어진지 이틀이 훨씬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영적인 부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허물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
리셨으니 너희가 한 때는 그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노라. 그러나 자비로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셨으니』(엡2:1-6).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고 하셨느니라』(엡5:14). 이 구절들에서 언급된 부활은 “영적인” 것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일어날” 부활을 뜻한다. 한 영혼이 거듭날 때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영적인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육체적인 부활
이것은 죽은 몸에 관한 것이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 있는 것은 몸 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 “무덤에서의 부활”에 관하여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여기서 예수님은 “선을 행한 자”와 “악을 행한 자”의 부활에 대해 가르치고 계신다.
바울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저 사람들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듯이 의인과 불의한 자가 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되리라는 소망을 나도 하나님 안에 가지고 있나이다』(행24:15).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15:22).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육체적인” 부활과 죽음이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은 죽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과 불의한 자의 부활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의인이 먼저 부활한 후 1000년 후에나 불의한 자가 부활하게 된다(계20:4,5).
선을 행한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 사이에 “일정한 시간적 격차”(1000년)가 있다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20:4-6에만 나온다.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계20:5,6)
하지만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서 요한계시록 20:4-6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성경 구절은 많이 있다. 일곱 남편을 가진 여인이 죽은 후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라는 사두개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 세상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들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사람들은 장가 가거나 시집가지 않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으니, 이는 그들이 천사들과 동등하며 또 부활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라』(눅20:35,36).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이렇게 부활된 이들은 다시 죽을 수 없다. 둘째 사망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사와 동등한 입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첫째 부활의 자녀들만이 천년 왕국 “이전에” 다시 살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무리를 지어 부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5:22-24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 열매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고전15:22,23). “서열”이라는 단어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군대의 악단, 무리, 일당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바울은 이 서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그리스도가 첫 열매요, ②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 ③그 후에는 끝이 오리니』(고전15:23,24a).
여기서 우리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 사이에 이미 19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과 “불의한 자”의 부활 사이에는 1000년의 시간이 있을 것임을 알게 된다. 의인과 불의한 자는 동시에 부활하지 않는다(도표를 참조하라).
누가복음 14:14에서 주님은 “의인들의 부활”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로서, 오직 의인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이것은 첫번째 부활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히브리서에서 “더 좋은 부활”로 말하고 있는데(히11:35),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보통 믿던 대로 “죽은 자의 부활”이 아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논하는 것은 새로운 주장이 된 것이다. 바울은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과 주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 있던 성도들의 변화”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천년 왕국이 오기 전에 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 년이 다 차기 까지 살지 못한다.
선을 행한 자의 부활과 불의한 자의 부활은 시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성격도 다르다.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불의한 자는 정죄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다(요5:28,29). 둘째 부활, 즉 심판의 부활에 일어난 자들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다 불못에 던지우는데 그것이 곧 둘째 사망인것이다(계20:12-15).
4. 부활의 방법
어떤 사람은 혼과 영이 육체를 이탈하는 것이 곧 부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대로 부활 때에는 죽은 자들이 자기들이 누워 있던 무덤에서 일어날 것인데 그렇게 무덤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와 같은 방법으로 무덤 속에 들어간 육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육체는 현재의 육체와는 같지 않고 변화된 육체이어야 한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겨서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살아나며 수치로 심겨서 영광된 것으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겨서 능력 있는 것으로 살아나며 육신의 타고난 몸으로 심겨서 영적인 몸으로 살아나나니, 육신의 타고난 몸이 있고 또 영적인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장차 변화될 우리의 몸의 표본이다. 그의 육신은 썩지 않고 무덤 속에 놓여 있을 때와 똑같이 육신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그 육신의 특성은 달랐다.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상처가 있었지만 닫힌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육신이었다. 그 몸에는 살과 뼈는 있었지만(눅24:39-43) 피는 없었는데, 이는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5:50). 희생 제물이 피를 흘려야 되듯이 예수께서도 희생이 되어 피를 땅에 쏟으셨다.
우리의 부활한 몸이 볼 수 있는 형태와 모양이 있다면 당연히 살과 뼈로 구성된 형체를 취하겠지만 그 살과 뼈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에녹과 엘리야는 자기들의 육신 그대로 승천했다. 그들은 영광된 몸으로 변화되었지만 원래의 육신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하늘 나라에서 그들의 육신이 필요가 있다면 우리라고 다를 수 있겠는가? 그 두 사람의 육신만이 하늘 나라에 있으리라는 것이 합당하겠는가? 만일 모세의 육신이 필요가 없었다면 왜 천사장 미카엘이 마귀와 함께 모세의 시체를 놓고 다투었겠는가(유 9)? 모세와 엘리야는 변화산 상에 예수님과 함께 나타날 때 다 같이 변화된 몸으로 나타났었다. 그들은 바로 부활하여 변화받은 성도의 표본으로서 휴거 때의 성도들도 그와 같은 “육신”을 취하게 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