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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인 타락인가, 무능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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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2월호>
인간의 타락에 대한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데 이는 바로 모든 칼빈주의의 논리가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칼빈주의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은 어떤 사람도 스스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수 없다는 신학적 암시를 지니고 있습니다.인간의 타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댑니(Dabney)가 말하는 웨스터민스터 고백에 의해서가 아니고, 혹세마(Hoekesema)가 말하는 돌트신조에 의해서도 아니고, 핫지(Hodge)가 말하는 헬베틱 고백에 의해서도 아닌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은 완전히 타락하여 그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고 그 어떤 구원의 방법도 그 안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아담을 타락한 존재로 짓지 않으셨고 오히려 정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흠 없으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창1:26)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자연적으로 출생한 모든 사람은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죄인이며(시51:5, 욥14:4)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을 말하고(시58:3), 어려서부터 마음의 계획이 악합니다(창8:21). 아담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은 그 순간 그의 영은 죽었고(창2:17) 그 이후 그의 모든 자손들도 더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담의 형상을 따라(창5:3) 태어났습니다.
2. 모든 사람이 아담의 형상 안에 있을 뿐 아니라(고전15:49) 아담 안에 있습니다(고전15:22). 아담의 고의적인 범죄 때문에(딤전2:14) 우리는 모두 그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롬5:12). 육신으로 난 그의 모든 후손들은 육이기 때문에(요3:6)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미 그 영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엡2:1,5, 고전15:22, 골2:13).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5: 12).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우리의 첫번째 출생은 잘못된 것이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분명히 선포합니다(롬3:10, 전7:20). 단 한 명의 예외도 있을 수 없습니다. 행위의 문제가 아닌 출생의 문제, 피의 문제,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롭지 못할 뿐 아니라(시143:2, 롬3:23) 만일 의롭다 할지라도 감히 하나님께 대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욥9:15).
심지어 성경은 사람이 단지 진토(시103:14), 지나가는 바람(시78:39), 시드는 풀(사40:6-7), 요동하는 바다(사57:20), 들나귀 새끼(욥11:12), 길 잃은 양(사53:6), 벌레(욥25:6), 진노의 자녀(엡2:3), 불순종의 자녀(골3:6), 마귀의 자녀(요8:44)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이사야서에 있는 한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불결한 것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 같으며, 또 우리는 다 잎사귀처럼 시들며 우리의 죄악은 바람처럼 우리를 옮겨갔나이다』(사64:6).
우리는 칼빈주의자들로부터 인간이 완전히 타락한 존재임을 배운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고 믿은 것입니다. 사람의 악한 행동들이 그를 타락하게 만든 것이 아니고 그의 타락이 그의 악한 행동들의 원인인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악한 행동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이는 그 마음 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막7:20-23, 렘17:9, 잠20:9, 전9:3).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는 속에서,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행과, 살인과, 도둑질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눈과, 하나님을 모독함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니 이런 모든 악한 것은 속에서 나와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고 하시더라』(막7:20-23).
그렇기 때문에 선하게 보이는 악인의 어떠한 행동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희생제를 가증이 여기시고(잠15:8), 악인의 모든 길과 모든 생각들도 가증이 여기십니다(잠15:9-26). 그들은 하나님의 일들을 알 수도 없고(고전2:14, 엡4:18), 행하려 하지도 않고(요3:19), 행할 수도 없습니다(롬8:28).
타락에 의해 사람의 전 인격은 영향을 받았고 죄는 의지와 지성과 감정 등의 모든 기능들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칼빈주의자들만 인간의 타락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미니우스나 웨슬리의 타락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어거스틴, 루터, 칼빈처럼 어둡고 절망적인 것입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죄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여 첫번째 생명은 교육이나 연단이나 훈련 등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결코 개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점입니다. 만일, 고쳐질 수 있고 인내해서 되는 일이라면 첫번째 사람이 죽고 거듭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자라면 그가 칼빈주의자든, 알미니안주의자든, 웨슬리주의자든 인간의 타락과 죄의 심각성으로 인해 어떠한 희망도 없음을 반드시 성경을 통해 알고 또 알려야만 합니다. 칼빈주의자가 “TULIP”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성경적 타락 교리가 아니라 사람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칼빈주의자는 영적인 죽음을 육신적인 죽음과 섞어버리고 난 뒤에 이 주장을 합리화 합니다. “죽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행사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어떤 일도 자발적으로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은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적용할 때는 옳지만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경우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라도 걷고 이야기하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엡2:1-3). 죽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지만 영이 죽은 죄인은 가능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거듭남을 자연적 출생과 연관시킵니다. 태어난 아기가 태어나는 일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는 것 같이 새로운 탄생도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논리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전서 1:23의 썩어질 씨와 썩지 아니할 씨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17에서 보듯이 옛것은 새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전적타락”이라는 항목에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자연인은 구약시대에 율법을 주셨으나 지키지 못했듯이 신약시대에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자연인은 노력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무슨 책임이 있고 창조되지도 않은 것이 무슨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칼빈주의가 말하는 전적타락의 교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교리입니다.
그들이 완전한 타락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은 에베소서 2:1-4이며, 특히 1절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인간이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의 자발적인 의지나 선택의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죄인이 허물과 죄 가운데 죽었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과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구원할 능력을 갖지 못하고, 선을 행할 능력도 없다는 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임을 인정합니다(시51:5, 창8:21, 요8:44, 전7:20, 욥15:15-16, 롬5:6, 엡2:3, 골3:6, 갈3:22, 렘17:9, 막7:20- 23, 전8:11; 9:3, 잠20:9).
또한 인간이 영적으로 죽어 있으며 새로운 출생, 즉 거듭남이 없이는 새로워져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할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새로운 출생을 이루신다는 것은 성경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죄인들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부르지 아니하시면 회개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회개할 수 없는 채로 지옥을 위해 예정되었다는 이 첫 번째 교리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입니다. 이 교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전적인 타락에서 자의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전적 무능력”을 강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의지도 사용하지 못하여 믿음에 대해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적타락”의 교리는 성경이 말하는 타락 그 자체와는 상관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영접할 수 있는가의 질문과 관련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5장에서 “전적타락”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의 구원에 대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베데스다 못의 행각 안에서 삼십팔 년 동안 병을 앓던 그를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할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에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요5:6)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요청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절해야만 하는 시점에 직면했고 그는 충분히 그 대답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병자와 같이 아무런 선한 일도 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 어떠한 것도 행할 수 없는 그러한 자들이지만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신 그 복음을 들을 때에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요청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절해야만 하는 결단을 할 수 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유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의 공로나 행위로 생각하여 배격함으로 인해 성경에 없는 다른 체계를 세운 것입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