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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불의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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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7월호>
칼빈주의에 대하여 : 칼빈주의의 왜곡된 신학에서 성경적 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극단적 칼빈주의는 은사주의와 함께 오늘날 한국 교계의 뿌리 깊은 누룩으로 자리잡아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황폐화시키고 실행을 무력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독소로 작용하였다. 한국식 기독교는 극단적 칼빈주의를 가장 성경적인 교리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 교계의 칼빈주의는 그 뿌리를 칼빈에게 두고 있는 장로교파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교파의 제도, 형식, 신앙의 토양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교계에 칼빈주의가 처음 소개된 것은 미국 선교사 헤밀턴(Hamilton)이 “신학지남”(1937년 7월)에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또 1937년 박형용 목사가 로렌스 뵈트너(Lorance Boettner)의 “개혁주의 예정론”을 칼빈주의의 예정론으로 번역한 후 “칼빈주의는 곧 예정론”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극단적 칼빈주의의 5대 교리, 즉 그 머리 글자를 따서 “튜울립”(TULIP)이라고 부르는 비성경적인 교리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 한다. “튜울립”(TULIP)은 다음과 같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최종권위가 되는 것은 장로교 교리나 칼빈의 “기독교 강요”나 “사도신경”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아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최종권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권위이고 절대규범인 것이다.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 외에 다른 책들, 즉 사람이 쓴 책을 성경보다 높이 평가하며 그 책으로 신앙의 기초를 삼으려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단들도 성경을 들먹거리고 있으며 심지어 성경에 나와 있는 어떤 것도 실행하지 않는 로마 카톨릭도 성경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욥기 12:6의 『강도들의 장막들은 번성하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들은 평안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풍성하게 가져다 주심이라』는 이 구절만 따로 떼어놓고 가르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강도들의 소굴마다 이 구절을 걸어놓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들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견해는 그만 두고 오직 성경만을 가지고 한국식 기독교계에 팽배해 있는 거짓 교리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모든 칼빈주의자들의 논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교리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전적 타락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는 전적 타락은 명백한 성경적 교리이기 때문이다.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우리의 첫 번째 출생은 잘못된 것이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분명히 선포한다(롬 3:10,23, 전 7:20). 심지어 성경은 진노의 자녀(엡 2:3), 불순종의 자녀(골 3:6), 마귀의 자녀(요 8:44)라고 말한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있을 수 없다. 타락으로 인한 죄의 상태는 교육이나 연단이나 훈련 등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결코 개수할 수 없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점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구원할 능력을 갖지 못하고, 선을 행할 능력도 없다는 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극단적 칼빈주의자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전적 타락을 믿는다고 할 때 그들이 의미하는 바가 성경과 다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들이 전적 타락을 이야기할 때 그가 정말 의미하는 것은 전적 타락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전적 타락에서 자의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전적 무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의지도 사용할 수 없으며, 믿음에 대해 완전히 무력하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즉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려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지의 결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도 하고 거역하여 불순종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의지”는 양심이나 성품이나 인격 같은 개체가 아니라 다만 선택의 요소일 뿐이다. 의지는 부패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성품이나 양심 또는 외부의 힘들에 영향받고 규정되는 것이다.
아담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었다(창 2:16). 성막을 짓는 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원하여 주님께 드렸다(출 35:29). 레위기에도 자유의지로 드리는 것에 대한 교훈이 주어진다(레 22:23).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격려했으며(대상 28:9), 성전의 건축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돕도록 요구했고(대상 29:5-6), 재건축 때에도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가 더욱 많이 제시되어 있다(스 3:5). “자유의지”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제시되는 성경적 교리이다(눅 17:1, 행 2:23; 3:14-15; 7:52). 그러나 칼빈주의자들만이 성경에서 “자유의지”를 발견하지 못한다.
만약 죄인이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었기 때문에(엡 2:1-4), 비록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하신다(사 55: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찾도록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으며(행 17:26-17), 사람들이 자신을 찾을 것이라고 선언하셨고, 그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신다는 약속도 하셨다(히 11:6). 성경에서 “누구든지 믿는 자”의 원칙은 신약 전체를 통하여 발견된다(요 3:15,16, 행 13:39, 롬 1:16, 벧전 2:6). 죄인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죄의 종인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롬 6:17,18)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전적 타락”의 교리는 성경이 말하는 타락 그 자체와는 상관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영접할 수 있는가의 질문과 관련된다. 그래서 무디(D.L. Moody)는 자신이 너무나 심각한 죄로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한 청중에게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십시오.” 결국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이십여 명은 그 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다.
『그를 찾을 만한 때에 너희는 주를 구하며 그가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사 55:6).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한국 교회에서 칼빈주의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예정론”인데 이 예정론은 바로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에 기초한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도록 선택되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도록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이 구원으로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이며,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저주받을 자를 이미 결정해 버렸으므로 사람은 여기에 전혀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가도록 선택하셨기를 바랄 뿐이라는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3권 23장을 보면 “...모든 사람이 유사한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예정되어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중 하나를 위해 창조된 각인은 생명 혹은 사망 둘 중 하나로 예정되었다고 우리는 말하는 것이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구원으로 초청하셨을 때 그분은 저주받도록 예정된 자들에게 제안한 것이 아니라, 다만 구원받도록 예정된 자들에게만 제안하셨다는 말이 된다.
칼빈은 에베소서 1:4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임의적인 선한 뜻대로 세상의 창조 이전에 구원받을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도록 선택되었다는 말은 전혀 없다. 다만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다는 말씀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조건적인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1:4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조 이전에 우리를 택하셨을 때 그 택함은 다름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예수님을 각자의 구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그분 안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딛 3:3).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전의 상태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느니라.』(엡 2:12)는 말씀과 같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천국과 지옥으로 예정되었으며, 그 선택은 무조건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미 사람들의 운명이 확정되었다는 샤머니즘의 운명론과 무엇이 다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고, 기회를 얻는 대로 전심전력하여 구령과 선교를 해야 할 필요는 어디에 있겠는가?
3. 제한된 속죄 (Limited Atonement)
제한된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선택한 자들만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외에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된 자들만이 구원을 누린다는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전체적인 맥락을 합리화시킨다. 그들의 주장은 선택받지 못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기에(즉 그들을 위해 예수님의 피가 흘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구원을 받고자 하더라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제한하는 이 마귀적인 교리(딤전 4:1)는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비성경적인 교리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어떠한 제한도 없는 무제한적인 속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구원받지 못한 거짓 교사들과 파멸을 초래하는 이단들까지도 그리스도께서 피값으로 사셨다고 말씀하신다(벧후 2:1).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직 선택된 자들만을 위해 피를 흘리셨다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신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이다(딤전 4:10, 요일 4:14,15).
『그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것이니라』(요일 2:2).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딤전 2:6).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을 위한, 어느 누구에게도 제한을 두시지 않는, 온 인류를 위한 무제한적인 속죄이다.
4. 저항할 수 없는 은혜
(Irresistible Grace)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될 수 없다는 “전적 타락”의 교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구원받을 어떤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셔서 그들만을 구원하셔야 한다는 논리를 필요로 한다. 아무도 구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적 타락”은 필수적으로 “무조건적인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교리들을 필요로 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떤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논리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누구인지 먼저 결정하시고 그들을 중생시킴으로 그들의 “무능력”을 “저항할 수 없도록” 압도하시어 그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을 압도하셔서 그의 의지를 꺾으시고 그를 구원하신다는 것으로 사람의 자유의지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믿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자유의지는 분명한 성경의 진술이며 진리이다(스 7:13,15,16, 출 35:21,29).
성경은 사람이 자주 하나님을 거스리고 거역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잠 1:24-26; 29:1).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고 계시지만 사람이 거절하고 있다. 요한복음 5:40에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이 말씀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분께 나아오기를 거절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행 7:51, 벧후 3:9, 딤전 2:4).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있지만, 또한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을 저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믿고 영접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결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저항할 수 없는 은혜)으로 하시는 일이 아니다(요 1:12). 성경은 심지어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성령을 슬프게 하고, 성령을 소멸하며, 성령께 거짓말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엡 4:30, 살전 5:19, 행 5:3,4).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거부할 수 있는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5.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경은 되풀이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결코 자신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 자신이 직접 우리들을 보호해 주신다(요 6:39; 10:28, 딤후 1:12, 벧전 1:3-5).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의 혼이 구원받고 영이 거듭나면 그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이 된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교리이다(롬 8:35-39).
그러나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가르치는 “성도의 견인”은 택함받은 자들이 불굴의 노력으로 끝까지 인내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성도의 견인”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전혀 관련이 없다. 당신은 선택된 자라고 확신하는가? 어떻게 당신이 선택된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택함받은 자들은 침례와 거룩한 행실로 끝까지 견인하기로 예정되었다는 이 교리 뒤에는 끝까지 견인되지 못하는 성도들은 처음부터 택함받은 자가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교리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유일한 차이점은 알미니안주의는 구원을 증명하기 위해 거룩함이 요구되는 반면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선택”을 증명하기 위해 거룩함이 필요하다는 정도이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거룩함을 유지해야만 구원받고 선택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아무도 그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성경 어디에도 성도들의 노력으로 구원이 유지된다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성도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하여 보존된다(유 1, 살전 5:23). 구원은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도의 견인”과 같이 일련의 과정들이 아니라 개인의 현재 위치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즉각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이미 성도들에게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에베소서 4:30에 의하면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에 의해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을 불의하신 분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예정”이라는 말로 자신의 불순종과 불복종의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나아갈 수 없다면 계속해서 초청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신가?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미리 정해져있고, 복음을 믿고 구원받고 싶은데 택함받지 않은 자들을 위해서는 단 한 방울의 보혈도 뿌려지지 않았으며, 예정된 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믿음의 의지 행사가 필요없이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압도하시어 구원한다는 칼빈주의의 5대 교리는 모두 비성경적이다. 칼빈주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올바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의지를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인의 기본 사역인 구령과 선교를 무가치하게 만든다.
당신의 신앙은 성경적인가? 성경으로 비추어 볼 때 의심스러운 부분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 성경적이 아닌 것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단지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면 바른 지식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 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