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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과연 성경적인가? (4)저항할 수 없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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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8월호>
극단적 칼빈주의의 네번째 교리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라고 불리운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는 저항할 수 없이 막강하기에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 생애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교리는 사도행전 13:48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는 말씀에 그 기초를 둔다.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사람의 죄를 꺠닫게 하신다는 것을 알며 새로운 출생의 중재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행동할 수도 없고 책임질 수도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어리석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압도하셔서 그의 의지를 꺾으시고 그를 구원하신다는 이 비성경적인 교리는 인간의 구원에 관해서 그의 자유의지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믿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는 어떤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자유의지는 분명한 성경의 진술이며 진리이다(에7:13,15,16, 출35:21,29).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과연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가? 그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인가?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마태복음 23:37에 나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예루살렘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내가 얼마나 자주...”)을 거절해 버렸다.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기를 원치 않았다.
또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어떠한가?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3:9),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하나님의 은혜가 저항할 수 없다면 우리 주위에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왜 이렇게도 찾아볼 수 없는가 ?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그들에게 다른 신을 섬기게 하시고 범죄하게 하셨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동장치를 가진 로보트로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맞추어 행사하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도 하나 또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을 저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믿고 영접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결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저항할 수 없는 은혜)으로 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1:12).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수년 동안 고쳐지지 않은 채 악마처럼 살아가는 것도 허락한다. 마귀는 7천년 이상이나 은혜를 받아왔지만 선택된 자도 아니며 게다가 자신이 받은 은혜조차 거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요일3:23).
사도행전 13:48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짝인 로마서 2:7을 봐야 한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롬2:7).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영생을 작정하셨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때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사역을 시작하고 있을 때이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지정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었고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칼빈주의자들은 이들이 세상의 창조 이전에 영생을 얻기로 지정된 자들이었으며 때가 이르자 믿은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전 까지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전, 즉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에는 그들은 죽은 상태였다. 그들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다(엡2:1). 그들은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홀로된 자였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를 알지 못하셨다(엡2:12, 갈4:9).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 7장에서 “성령을 거스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무리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을 향해 스데반은 “너희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 조상이 한 것과 같이 너희도 늘 성령을 거역하는도다.』라고 담대하게 외치고 있다. 구원받은 사람조차도 성령을 슬프게 하고 성령을 소멸하며, 성령께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거부할 수 있는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지 못한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갈라디아 교사들이나 바로나 유다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에 관해서 어떻게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말할 수 있는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언급하신 ‘성령 모독하는 죄’는 또한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모든 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저항한다.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저항하다 잃어버린 바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