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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망언 (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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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6월호>
2004년 5월 12일 조용기 목사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최고위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자신의 종교관을 이렇게 밝혔다.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모든 종교는 평등합니다. 불교는 불교만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만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싸우는 것은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 어긋난 행동입니다」(뉴스앤조이, 04.5.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믿는 것처럼 내 친척이 ‘부처 안에서의 구원’을 믿는다고 해도 거리낌이 없습니다」(동아일보, 04.5.13).그리스도인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조목사의 말은, 망언(妄言)이라고 단언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망언(妄言)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사전을 보니 ‘망령(妄靈)되게 말함, 또는 그런 말, 망발(妄發), 망설(妄說)’이란 뜻이 있다. 망(妄)이란 단어가 ‘허망, 거짓’이란 뜻이 있으니, 조용기 목사의 망언(妄言)은 거짓말 내지는 허망한 말(헛된 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조용기 목사의 말을 망언(亡言)이라고 정의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조목사의 말의 결과는 하나님 앞에서 망(亡)할 말이기 때문이다. 조목사가 어떤 사람인가? 세계 최대의, 최고의 교인수를 자랑하는 교회의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다. 목사(牧師)라 함은, 하나님의 종, 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조목사는 하나님의 종 또는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망언(亡言)을 발설한 것이다.
조목사는 강연에 초청을 받아, “나처럼 평범한 목사가 와서 무슨 얘기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자신을 평범한 목사로 평가한 것은 겸손의 표현이라 생각되지만 그는 결코 평범한 목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들도 인정하는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 중들이 조목사에게서 무엇을 듣기 위해 초청했는지는 몰라도 조목사는 결코 평범한 목사가 아니기에 초청된 것이다. 조목사는 중들이 거부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거나,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로 중들은 복음을 전하고, 진리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거나, 종교 간의 대화에 적대적인 목사는 초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초청 자체에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조목사는 이미 중들에게 거부되지 않았거나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왜 그랬겠는가? 조목사가 더 이상 복음도 전하지 않고, 진리에 대해서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 종교 통합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좋다. 십분 양보해서 종들이 실수로(조목사가 복음도 제대로 전하고 진리에 대한 타협도 없고, 유일한 종교만을 주장함에도) 초청했다고 하자. 과연 목사가 중들을 모아 놓고 할 수 있는 일(말)이 무엇이겠는가?
목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 그렇다면 목사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디에서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해야 한다(롬 1:16).
만약 필자를 중들이 초청했다면 나는 ‘무슨 얘기를 할까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중들도 복음 전파의 대상이며, 그들도 잃어버린 혼들로서 지옥에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목사도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을 하기는 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이며 마음속에 있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
조목사는 종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종교를 하나 더 소개했을 뿐이지 중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붙잡고 있는 한 분명하게 지옥에 떨어질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죄인들의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의 기본(고전 15:3,4)도 전하지 않았다. 조목사가 이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아니면 잊었단 말인가?
조목사는 「아버지(선(禪)불교도)는 불교를 몰라도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저도 교리와 교회율법은 몰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자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교회율법을 배우기보다 예수부터 믿으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04.5.13).
이 교묘한 말장난에 중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쳤는지 몰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역질이 나셨거나 순간 숨이 막히셨을 것이다(너무 기가 막혀서). 도대체 목사라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인가?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구원받을 것”이란 말의 결론이 무엇인가? 자신의 아버지가 말한 말이 맞다는 것인가? 아니면 틀리다는 말인가? 그냥 자신의 아버지가 한 말이니까 인용만 하면 되는 것인가? 조목사의 아버지가 그 아무리 위대하고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구원받을 것”이라는 말은 마귀적이며,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죄인의 망언(妄言)일 뿐이다. 그 부질없는 말을 중들 앞에서 왜 언급하고 있는가?
조목사는 중들과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암 3:3).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발언이 자신의 신학적 성찰에 변화로 봐야 할지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조목사 스스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타종교에 가서 호감을 사기 위한 외교적 발언을 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강성영 한신대 교수, 뉴스앤조이, 04.5.17). 맞다, 조목사는 인간들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하나님의 호감은 포기한 것이다(갈 1:10).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교회율법을 가르치라고 한 적이 있는가? 교회율법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있는 것인 양 오도하여 기독교와 불교를 교묘하게 동일시하는 망언(亡言)을 한 것이다. 교회율법이란 로마카톨릭과 제도화된 교단 교회들이나 가지고 있는 거짓 교리들이다. 여기서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예외가 아니기에 자신도 모르게 교회율법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어떤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에도 교회율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목사는 자신의 강연 시간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더욱 심각한 망언(亡言)을 쏟아 내었다. 조목사는, 「일부 목사들이 종교의 평등성과 차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아독존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며 「‘너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종교끼리 싸우는 것은 부처도 예수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동아일보, 04.5.13). 일부 목사만 종교의 평등성과 차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모든 목사가 종교의 평등성과 차별성을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의 평등성과 차별성이란 말 자체가 마귀적인 발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것을 세상은 기독교라고 부르지만) 이외의 종교는 모두 마귀적인 우상 종교일 뿐이다. 구약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부처가 지금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부처는 지금 불타는 지옥에 있는 죄인일 뿐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손가락 끝에 묻혀진 물 한 방울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눅 16:20-27).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성경에 너무나도 잘 밝혀져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요한복음 14:6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구원의 유일한 길을 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다른 종교를 인정해 본 적이 없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며, 그 배후에는 마귀가 존재하는 것이다. 조목사는 마귀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목사는 「불교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가르침 중 똑같은 것이 매우 많다.」라고 잘라 말했다. 조목사가 미치지 않은 이상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목사가 아닌 일반인이나, 철학자 내지는 과학자, 어떤 학자가 이러한 말을 했다면, 아니면 요즘 유명한 도올(김용옥)이란 사람이 이러한 말을 했다면 필자가 굳이 시간을 내어 글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세계 최대의 “교회”의 목사가 이러한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클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가 무엇이 같은가? 세속화되고 세상과 하나가 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나 불교의 조계종과 같아 보일지 몰라도,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불교와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같아 보이는 것들도 있다(이것은 제도화된 교회들에서 보이는 모습들이다). 새벽기도나 새벽성불이 비슷하며(이에 대한 글은 본지 참조) 요즘 행해지는 은사주의 집회의 모습(마귀 쫓아낸다는 집회)은 퇴마승들이 귀신 쫓아낸다고 푸닥거리하는 것 하고 비슷하다. 조목사의 눈에는 기독교가 불교하고 똑같은 것이 매우 많게 보이는지 몰라도 성경과 불경이 다르듯 기독교와 불교는 전혀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조목사는 이어 「불교는 불교만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만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다.」며 「종교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은퇴하면 종교 간 이해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고 한다(뉴스앤조이, 04.5.13). 조목사가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거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들도 아는 기본적인 사실을, 조목사는 전혀 모른다는 말인가? 아니면 중들 앞에서는 잊어버린 것인가? 부처의 금빛(금칠되어 있는 부처)에, 중들의 빛나는 머리에 눈이 멀었단 말인가? 불교에 무슨 구원이 있는가? 조목사가 말하는 불교의 구원은 어떤 것인가? 불교에도 불교만의 구원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단 말인가?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필자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조목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도 틀린 것같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행 4:12). 그는 중들에게 잘 보여 인기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주님께로부터는 버림을 받았다(그가 주님의 종이었다면 그렇다. 마 10:32, 눅 12:8을 보라.).
조목사의 망언(亡言)으로 인해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려의 정도가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며, 판단의 대상인 것이다(고전 2:15). 조목사의 이번 발언은 어떤 형태든지 유야무야 곧 잊혀지게 될 것이다. 국민일보 기자들이 그렇듯, 자신들의 목사의 망언을 덮어 주고 싶을지도 모른다(국민일보는 다른 신문들과는 대조적으로 조목사의 망언(亡言)을 다른 시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조목사가 말한 그 말은 반드시 심판석에서 드러날 것이다(민 32: 23). 조목사는 목사의 자격이 없는 정치인(기독정당의 발기인)이며, 이젠 타종교와의 연합에 뛰어든 종교인일 뿐이다. 아마 조목사는 한경직 목사에 뒤이어 템플턴 상을 받을지 몰라도 그가 “만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선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는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을 것이다(고전 3:12-15).
『너는 네 입의 말들로 덫에 걸렸으며, 네 입의 말들로 잡힌 것이니라』(잠 6:2).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고후 6:1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