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교리 연구 분류
하나님의 백성 - 유대인 II
컨텐츠 정보
- 8,306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0월호>
그들의 현재 모습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더불어 유대민족의 슬픈 역사는 시작 되었다.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마27:25)고 했던 그들의 외침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A.D.50년 예루살렘은 로마군의 침입으로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그들의 최악의 고난은 유대의 로마 총독인 게시우스 플로러스에 의해 A.D.66년에 시작되었다. 그의 폭정은 각처에서 항거하는 시위를 유발시켰다. 더우기 폭군 네로는 6만명의 병사를 보내 베스파시안으로 하여금 그의 아들인 타이터스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도록 명령하였다. 그는 갈릴리 북쪽에서 아스모니아인의 유명한 장군이자 역사가인 요세푸스와 접전하게 되었다. 요세푸스는 요타파타에 진을 치고 항거했으나 힘이 부족하여 결국은 40,000명 이상의 병력을 잃고 패하였다. 곧이어 갈리리는 정복되었고 수천명이 전쟁으로 인하여 죽었다. 그러나 유대와 예루살렘의 함락은 베스파시안이 네로의 부음을 듣고 철수하는 바람에 일단은 유보가 되었다. 그러나 그후 베스파시안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아들인 타이터스를 시켜 성지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도록 했다.
A.D.70년 4월, 10만을 헤아리는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 왔고 예루살렘은 그 진격을 당해내기에는 너무도 허술했다. 더우기 성 안은 서로 경쟁하는 파벌들 사이에 통수권을 놓은 갈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로마군의 포위는 4개월이나 계속되었고 성 안에는 기근이 돌아 자기 자식을 죽이는 참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포위된 상황이 더 걷잡을 수 없이 비참해지자 타이터스는 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책임없음을 하나님 앞에 변명하였다.
예루살렘성은 세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90개의 탑으로 방어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A.D.70년 8월 5일, 아토니아 성탑이 점령되었고 로마군들은 성벽으로 몰려들어 갔다. 타이터스는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일러지는 훌륭한 유대 성전의 건물들은 훼손시키지 말라고 명했지만, 병사들에 의해 헤롯 성전은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결국은 모두 무너져 허탈하게도 돌무덤만 남기고 말았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전쟁으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9만 7천명 정도가 살아서 포로가 되었으며, 그 중 건장한 청년들은 로마로 끌려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다니엘이 예언한 바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성읍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종국은 홍수를 (뒤덮인 것) 같을 것이요 전쟁의 종국에는 황폐함이 결정되느니라』(단9:26).
예루살렘이 타이터스에 의해 멸망되었고 유대인들은 각처로 흩어졌지만 그것이 유대 역사의 끝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65년 후인 A.D.135년, 유대인들은 로마 권력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세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는 3년 반이나 계속되었던 전쟁을 일으켜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이산시켜 놓았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휩쓸어 58만명을 죽이고 시온을 마치 쟁기질하듯 파헤쳐 놓음으로 미가서 3:2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 후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살지 않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장막은 계속되어 A.D.1096년의 십자군 전쟁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그 후 종교개혁이 지나자 잠시 그것으로부터 풀려나는 듯했으나 다시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으로부터 추방과 죽임을 연달아 맛보아야만 했다.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후 200년이 지난 1680년에도 스페인의 유대인 학대는 여전했다.
악몽처럼 수세기에 걸쳐 무시무시한 형벌과 박해의 역사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의 긴긴 밤도 지나 마침내 동이 터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1753년 영국의 귀화령의 통과가 그것이다. 그리고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이 서명되자 그들에게도 자유의 아침이 찾아 오게 된 것이다.
박해의 긴긴 시간 동안에도 유대인이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기적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수많은 고통에 대한 그들의 인내의 비결은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율법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했고 감정을 제어하여 안정시켰으며, 유대인들의 충동적인 성격을 제어시켰고 후손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둘째는 그들의 민족적인 소망이다. 밝게 빛나는 소망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그들로 하여금 꿈을 가지고 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아가 오리라”는 소망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선지자, 즉 메시아는 바로 그들이 배척하고 죽인 “갈릴리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요셉을 은 이십 냥에 팔아버린 후 애굽의 왕좌에 앉아 있는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들의 선조처럼 그들은 예수를 잡아 은 삼십에 팔아버렸고 그 예수는 지금 하늘의 왕좌에 앉아 계시지만 그들은 눈이 가려져 알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이 처한 상황은 호세아 3:4의 예언, 즉 『이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왕자도 없고 희생제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거하리라』는 것이 성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예루살렘은 반드시 『또 그들은 칼날에 쓰러질 것이며, 모든 이방 나라에게 사로잡혀 갈 것이요, 또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눅21:24)고 하지 않았던가? 로마서 11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라고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대답하고 있다.
11절에서 바울은 두번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졌느냐?』, 즉 그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넘어졌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은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그들의 실족함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을 시기나게 하였느니라』(롬11:11b) 이다.
여기 로마서 11:11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유대인이 실족하여 넘어짐으로 이방인이 구원받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방인의 구원이 유대인을 시기나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셨다면 왜 그들이 시기하기를 원하시겠는가? 사도 바울은 이에 적절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들의 실족함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들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은 어떠하겠느냐?』(롬11:12).
바로 뒤를 이어 사도 바울은 두 올리브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롬11:17-27). 우리는 참올리브 나무의 좋은 가지가 몇은 잘려 나갔지만 뿌리와 줄기는 아직 살아 있어 거기에 돌올리브 나무가 접붙여져서 참올리브 나무의 한 뿌리와 가지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올리브 나무는 뿌리까지 뽑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점과 잘려 나간 그 곳에 돌갈람나무가 접붙임을 당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결국 원 뿌리가 살아 참올리브 나무와 돌올리브 나무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불신앙이 이방인들에게 유익이 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잘려나간 참올리브 나무의 가지들이 회심하여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유대인이 회개하고 불신앙에서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의 고토로 회복하실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누가 유대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라 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러한 시도를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익한 상상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미래를 예견하려는 시도에서 우리는 이런 것을 염려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유대인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관해서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