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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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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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10월호>

"어거스틴의 후예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A.D. 354-430)은 아프리카 히포(Hippo)의 주교였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나 존 로드(John Lord) 같은 교회사가들도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벤자민 와필드(B.B. Warfield)는 성경적으로 조명해 볼 때 카톨릭 교리와 칼빈주의를 만들어낸 어거스틴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이단적인 사람이었다고 혹평하고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성경에서 무엇을 믿었고 하나님 앞에 무슨 짓을 했으며, 하나님의 교회에 어떤 공헌을 했느냐와는 무관하게 점수를 주고 회자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부정직한 사람들이요,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짓지 못하는 분별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전 1:9)는 점이다. 특히 비성경적 교리들은 전에 누군가가 실행했던 것이며 그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은 종이 아니라 마귀에 의해 쓰임받은 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이 실행하는 교리들도 전에 누군가가 실행했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모두 바빌론의 신비 종교들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그런 것들은 성경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하에 행해졌으며 그것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면서 당연시되고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바빌론 신비 종교가 로마카톨릭으로 흘러 들어왔고 로마카톨릭에서 실행되었던 것들이 개신 교회로 들어와 여과 없이 실행함으로써 성경으로 거듭나지도 않았고 영적으로 성숙하지도 않은 무지한 교인들에 의하여 교리가 아닌 종교 행위로 실행됨으로써 그들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간교한 마귀에 의하여 개신 교회들로 침투했을 때 그들 교인들을 오염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들은 분별이 없었기에 그대로 답습하여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어거스틴이 범한 오류 중에서 가장 큰 오류는 교회에 대한 정의와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지금도 로마카톨릭과 개신 교회의 절대 다수가 교회를 십자가 달린 건물로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몸이며 그분이 머리가 되시는 몸이라고 밝혀 주고 계신다(엡 1:22, 골 1:18, 고전 12:27, 딤전 3:15). 사람이 자신이 마귀의 자녀로 태어난 것을 알고서,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그분임을 믿고, 그분께 나를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여 그분을 영접했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요 1:12). 그 순간 그 죄인은 영이 살아나고 혼이 구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유기체(그리스도의 몸)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는 말을 가지고 떠들 필요조차 없다. 그는 그 순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왔을 뿐 아니라 영은 셋째 하늘에 가 있고(엡 2:6)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으며 이제 죽어도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는 등 적어도 38가지의 일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을 성도(Saint)라고 부른다. 그를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며(행 20:28)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부른다(계 21:9). 이는 그 사람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교회라고 부르시는 반면 어거스틴의 후예들은 십자가 세운 건물을 교회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보이는 지역 교회를 언급한 곳은 요한계시록 3:20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복음을 전했을 때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을 주님은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교회란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전을 의미한다(고전 3:16; 6:19,20).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은 성령님의 지시를 받고 인도하심을 받는 반면(요 14:26; 16:13) 성령님이 내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란 종교를 그들이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다 한정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땀과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그들 종교의 행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거스틴의 교회관에 따라 그들은 건물을 짓고 또 짓고 헐며 더 고상하게, 더 웅장하게 지으려고 한다. 이들은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거하지 아니하시나니』(행 7:48; 17:24)라고 분명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이들이 어거스틴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을 그들이 지은 건물 안에 가두어 두고 거듭나지도 않은 이교도들을 콘스탄틴식으로 교회로 전도해 와서 교인 명부에 올려놓고 찬송가를 함께 부르고 헌금 봉투를 나눠 주며 무슨 말인지도 모를 설교를 듣게 하고 교구를 만들어 구역 모임을 갖게 하며 돈을 거두고 있다. 그들은 이런 쭉정이들을 자랑하며 이런 쭉정이들을 부러워하며 이런 쭉정이들 속에다 거짓 교리들을 배양시키고 숙성시켜 바른 교회 앞에 그들의 이단 교리들을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이제 갓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천진난만하게 큰 교회 건물을 보고 들어갔다가 몇 주도 못되어 견딜 수 없게 되자 그 교회를 떠났는데 그 교회 목사는 그 성도를 보고 교회를 버렸으니 저주받았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 성도는 거짓 교리를 실행하는 가짜 교회로부터 성경대로 성별한 것인데 건물을 교회로 알고 있는 어거스틴의 후예인 그 목사는 진짜 교회인 성도를 보고 교회(건물)를 떠났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가 벌이는 촌극이다.

교회는 에베소서 1:22,23에서 계획되었고 에베소서 5장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춰졌으며 갈보리에서 사주셨고(행 20: 28) 어린 양의 혼인식에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내주게 될 것인데(엡 5장, 시 45편, 계 19장) 그들은 이 신부를 그들 교회 건물로 알고 있으니 그들과 언어가 통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잘못된 교회나 선교단체에 머물고 있다면 그의 믿음이 파선된(딤전 1:19)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그런 교회로부터 자신을 성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방인으로 있다가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고 부른다. 구원받은 사람들, 즉 성전들이 모인 곳이 교회(에클레시아)인 것이다. 이 교회라는 곳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나 구원받은 것 같다는 사람이나, 언제 구원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이나, 눈물 콧물 흘렸던 사람이나,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교회 다녔다는 사람이나, 꼭 그것을 말해야 하느냐는 사람이나, 돈도 많이 갖다 바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집사, 권사, 장로, 강도사, 전도사 했다는 사람이나 고아원 양로원,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가서 피난민들에게 죽 쒀주고 치료해 주었다는 사람들이 와서 구원받은 사람들처럼 행세하려 한다. 또 주일은 물론이요 월요일부터 다음 주일까지 선교, 전도, 봉사, 심방, 금식, 철야, 찬양 등 성경에도 없는 교리들을 행함으로써 교회놀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자들과는 같이 하지 말고 거기서 떠나라고 하시는 성령님의 엄숙한 명령을 거역했다면 그들은 무엇이 성별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로마서 16:17,18, 디모데전서 6:3-5을 꼭 읽어 보고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이 스스로 성별하지 않고 동물원에 그대로 앉아 있게 되면 개와 돼지 등이 갖는 생활 습성은 물론이요 여우와 늑대, 사자 같은 맹수들의 발톱과 이빨에 큰 상처를 입게 됨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성경에 없는 것들을 거침없이 행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체면도 염치도 없이 진리의 지식은 외면하면서도 교회를 짓는다고 계속해서 돈을 요구하는데 그 수법이 하도 교묘하여 가짜 보약 장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구원받은 성도가 성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게 되면 거의 매일같이 그들의 구정물을 뒤집어 써야 한다. 주님은 그분의 피로 우리의 양심을 소생시키셨으며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 몸을 씻겨 주셨는데 깨끗한 양심과 몸을 가지고 더러운 무리들과 함께 있게 될 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벧후 2:22).

어거스틴의 후예들은 성별하는 성도들에게 교회를 떠나면 저주받게 된다고 위협하나 그런 교회들을 떠나는 것만큼 복된 일이 없는 것이다. 저주받는다는 위협은 다른 데가 아닌 바로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다. 마귀는 종교라는 사슬로 어리석은 성도들의 발을 묶어 그 교회라는 곳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겁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성경적 신앙이 아니라 무속 신앙이다. 그래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구원받고서도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하게 된다.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롬 6:16,17).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자유롭게 되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어거스틴식 교회만 다닌 사람들은 결코 자유롭게 될 수 없다.

어거스틴은 어린아이에게 물을 뿌릴 때 하나님의 주권으로 영원한 선택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칼빈의 5대 강령이다. 성경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 3:23). 성경은 이런 죄인들도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어거스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1,000년 동안에 서서히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로마카톨릭 제사장이 희생제사를 드릴 때마다 바로 그 거룩한(?) 상위에서 재림이 한 단계 한 단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거스틴은 세례(침례)로는 죄를 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벧전 3:21) 세례는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원죄를 제거해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이를 거부한 사람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국가(Church-State)를 믿어, 교회가 곧 국가요 국가가 교회라는 로마카톨릭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성교를 죄악시했고 결혼도 죄악시했다. 그래서 금욕하는 것이 가장 거룩한 일인 양 여겨 그들로 사제가 되게 했지만 그들은 담배와 술에는 제한이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사용함에 따라서 부패할 모든 것이니라.)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이런 것들이 의지 숭배와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골 2:20-23).

그는 성경에 없는 연옥 교리를 창안했으며 어린아이가 죽으면 지옥의 변방인 림보로 가게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았고 그대신 영적으로 은유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철학을 신봉하는 교부였으며 자기와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을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였던 것이다. 성경에 없는 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졌을 때 그들이 실행한 일들을 마치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것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바로 어거스틴의 후예들이다.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은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것을 실행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정해 놓으신 원칙과 기준을 스스로 위반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점을 그들은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오류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유아세례이다. 침례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 교회들은 세례를 믿고 받아들이며 지금도 교회의 전통인 양 행하고 있다. 우리는 마틴 루터,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드, H.C. 모리슨, 프란시스 에즈버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교황 레오(A.D. 440-461)의 말대로 "세례는 물에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변화를 가져온다.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요 그리스도도 그를 받아 주신다. 세례는 곧 중생을 가져온다." 교황의 말이 옳은가 성경이 옳은가? 만일 세례를 중생으로 알고 그대로 믿으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가 죽어서 그의 혼은 어디로 가는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하셨는데 이제는 마귀와 세례가 중생이라고 믿는 마귀의 자녀들이 가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후예들이 만든 칼빈의 5대 강령에서 첫 번째인 인간의 전적 타락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자인 아더 핑크(Authur Pink)도 죄인은 스스로 회개하거나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인간이 무능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수 없다면 왜 복음이 있어야 하며 전도는 해서 뭐하며, 왜 교회가 지상에 존재해야 하며 선교한다고 선교사를 양성해서 내보내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어거스틴의 후예들은 칼빈주의만이 복음이라고 말한다.

다수가 행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보라. 자기의 신성한 표를 고무신이나 막걸리와 바꿔 버린 사람들은 독재정권을 지지한 셈이 되었듯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들은 쭉정이일 뿐이다. 오늘날도 건물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믿는 어거스틴의 후예들은 교회가 휴거된다고 할 때 교회 건물이 휴거되는 줄로 알고 있으며, 그래서 영적으로 앞뒤도 가리지 못한 교인들에게 성전 건축 헌금을 대출 받아서라도 내라고 하고 있다. 오늘날도 어거스틴의 후예들은 구원받은 성도의 몸이 성전이요 교회라고 믿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버리고 어거스틴의 말을 최종권위로 믿기 때문이다. 건물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는 무지한 자들에게서 무엇을 얻겠다고 그들의 회중 가운데 앉아 있는가? 거기에서 얻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거스틴의 후예들은 개신 교회라고 말하면서도 사도신경 암송, 주기도문 암송, 교독문 낭독, 축도 등을 예배의식으로 행하며 카톨릭 흉내를 그대로 내고 있다. 그런 자들이 어찌 프로테스탄트인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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