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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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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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10월호>

하나님의 원칙

성경의 원칙이란 곧 하나님의 원칙을 말한다. 우리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며 끝까지 지키신다. 이 점에 있어서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 1:17).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생명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한 번 말씀하신 약속을 번복할 이유가 없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원칙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들어 쓰는 종을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그대신 저주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는 사실이다. 이 원칙은 먼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창 12:2,3). 하나님께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음을 보고 알 수 있다(말 1:2,3, 롬 9:12,13). 이것은 칼빈주의자들이 근거 없이 주장하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 아니다. 그런 말은 성경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개개인의 삶에 개입하신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것인가를 아시는 것이다. 그분께 부름받고 쓰임받은 선지자들과 왕들과 장수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보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태 안에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선지자로 정하셨다고 말씀하셨다(렘 1:5). 기드온 같은 겁쟁이를 쓰시려고 작정하시고 그에게 『너 힘센 용사여,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판 6:12)라고 했을 때 그의 놀라워함을 알겠는가?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두 아들의 경우를 보라. 그 농부는 첫째 아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더니 그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뉘우쳐서 일하러 갔다. 둘째 아들에게도 가서 일하라고 했지만 그 아들은 즉석에서 가겠다고 말해 놓고 가지 않았다(눅 21:28-30). 성경은 이 둘 중 누가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했느냐고 묻고 있다. 물론 첫째이다(<한글개역성경>은 이 두 경우를 뒤바꿔서 기록해 놓은 엉터리 성서이다).
하나님의 예지는 인간의 관조나 판단과 달리 누가 언제 어떻게 주님께 순종할 것인지 훤히 알고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또 운영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개개인의 생애도 주관하고 계시며 운영하고 계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전 인류 개개인의 삶을 주관하지 못하신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을 전지전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민족이나 개인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야기시킨 실패와 수치스런 일까지도 일일이 성경에 기록하여 밝혀 놓으셨다. 왜 숨기지 않고 낱낱이 드러내신 것인가? 하나님은 자신 만만하시기 때문이다.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송사를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의 강력한 주장을 내어 놓으라. 그들로 주장들을 내어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에게 보이게 하라. 그들로 이전 일들을 보이게 하여, 그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로 그 일들을 숙고하고 그 일들의 나중 결말도 알게 하라. 아니면 앞으로 있을 일들을 우리에게 선포할지니라. 이후에 있을 일들을 보여 주어 우리로 너희가 신들인 것을 알게 하라. 정녕,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라. 우리가 놀라며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 41:21-23)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성경에 기록하여 밝혀 놓은 것들에 의심이 있다면 인간의 지혜로 한번 따져 보라고 권고하고 계신다. 『내가 처음부터 이전 일들을 선포하였고 그 일들이 내 입에서 나갔으며, 내가 그 일들을 보여 주었고 갑자기 행하여 그 일들을 이루었느니라. 이는 네가 완고하며 네 목은 쇠 근육이요 네 이마는 놋쇠임을 내가 알았기 때문이라. 나는 처음부터 그 일을 네게 선포하였으니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그것을 네게 보여 주었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말하기를 "나의 우상이 그 일들을 행했으며, 나의 새긴 형상과 주조한 형상이 그들에게 명하였다." 하였으리라.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일을 보라. 그런데도 너희가 그것을 선포하지 않겠느냐? 내가 이제부터 새 일들, 즉 네가 알지 못했던 감추어진 일들을 네게 보이노라. 그것들은 처음부터 있지 아니하고 이제 창조된 것이니 즉 그 날 이전에는 네가 그것들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라.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보라, 내가 그 일들을 알았노라."고 말하였으리라. 정녕, 너는 듣지도 못하였고, 정녕 네가 알지도 못하였으며, 정녕 그 때로부터 네 귀는 열리지도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심히 패역하여 모태에서부터 행악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사 48:3-8).
하나님은 당신이 우연이라고 우기는 일들에 대해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태풍을 말씀으로 잠재우셨다. 『그가 물방울을 작게 만드시나니 그 물방울들이 그 수증기대로 비로 쏟아』(욥 36:27,28)진다고 말씀하신다. 구름도, 비도, 천둥도, 회오리바람도, 서리도, 이슬도, 번개도 주님이 만드신다고 말씀하신다(욥 37,38장). 뿐만 아니라 사자, 까마귀, 들염소, 암사슴, 들나귀, 공작새, 타조, 독수리, 매 등등 짐승과 날짐승들이 새끼를 배고 낳을 때 철에 따른 서식지까지도 마련하신다고 말씀하신다(욥 39장). 인간의 생이 우연에 따라 전개되는가 아니면 절대주권자에 의하여 전개되는가? 우연히 전쟁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선이든 악이든 어떤 원인과 이유와 동기가 있는 것인가? 차가 사고가 나는 것은 부주의나 과속, 음주운전, 고의 이 네 가지 중 하나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 곤충, 물고기, 조류 등의 먹이 사슬은 어떤가? 먹이 사슬이 끊기는 원인이 발생하면 그 다음 연계된 동물들이 살아남겠는가? 왜 북극곰은 늦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6개월간이나 겨울잠을 자야 하는가? 풀이 자라지 않는데 초식 동물들이 살아남겠는가? 사람의 생명은 어떤가?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한 대로 사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개인적인 삶도 주관하고 계시며 당신이 행하는 일상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살펴보시며 당신이 입 밖에 내는 말들, 한마디 한마디를 다듬으시며 행동 하나하나도 빼놓지 않고 내려다보고 계신다.
당신이 바보가 안 되려면 이런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동기를 아신다. 악인들이 죄악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도 아시며 어떻게 망해서 비참하게 될 것도 알고 계신다. 만일 당신이 의식있는 사람이라면 거짓되이 하나님을 믿는 체하지도 말고 거짓되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체하지도 말라. 그분 앞에서 가증스런 자가 안 되려면 그런 어설픈 짓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가복음 21장의 농부의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동기뿐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전개해 나갈 줄도 훤히 알고 계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기당할 일이 없으시며 속임을 당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속이겠다고 나서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을 마음에 두시고 그를 들어 쓰시려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죄의 길에 들어서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포기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정도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인간에게 우선권을 주신 적이 없으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런 계획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이 사고나 재앙, 질병이나 전쟁, 아니면 자살로 죽어 버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속수무책이신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그가 깨우쳐 하나님을 찾아 돌이킬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신 오래 참으심이요,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구원받도록 예정해 놓으신 적이 없다. 그 사람이 언제 고난과 시련과 역경과 때로는 죄의 대가를 치르고 만신창이가 되어서라도 돌이킬 것을 미리 알고 계시는 것이다(롬 8:29, 벧전 1:22). 하나님께서는 자기 계획 아래 두신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몇 번이나 거짓말했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돈을 좋아한다고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대며 돈을 거두어들였는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용하신 종이면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무시했다면 당신은 악인이기에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함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섬기지 못했으면 그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섭고 혹독한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지금 이 시간까지 헌신하고 순종하여 그분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들을 성경대로 실행하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찾고, 훈련시키시고, 계획에 두신 그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생이 얼마나 복된 생인가를 상상이나 해 보았는가? 건강과 번영을 보장하시며,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그분은 신실한 양무리들을 모아 주시는 반면 쭉정이들은 골라서 버리기도 하신다. 능력있는 일꾼들을 붙여 주시고 필요한 물질들을 제때에 채워 주시어 일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들은 틀림없이 수행되어 좋은 열매를 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받는 것을 때로는 인간의 성정으로는 잘 이해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을 잘 알고 계시며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

하나님의 원칙, 즉 하나님께서 축복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저주한 사람을 저주하신다는 그 원칙을 가장 잘 준수한 사람은 다윗이었다. 사울왕이 악령에게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이끌고 추적하고 있었을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두 번 가졌었다. 한 번은 사울이 엔게디 광야에서 한 굴에 들어갔는데 그 굴 속에는 이미 다윗과 그 일행이 있었다. 다윗의 사람들은 이 적기를 놓치지 말고 사울을 해치우라고 했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주의 기름부음 받은 이, 곧 나의 주인께 나의 손을 뻗쳐 그를 치려고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은 주께서 금하신 것이라. 이는 그가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임이라』(삼상 24:6). 다윗은 심지어 칼로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으로도 가책을 느꼈다. 또 한 번은 사울이 여시몬 앞 하킬라 산에 진치고 있을 때였다. 다윗이 아비새와 함께 밤에 사울의 군대에게로 가 보니 사울이 참호 안에서 자고 있었다. 그때도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적기였다. 『그러자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겨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청하오니, 이제 나로 그를 창으로 단번에 땅에까지 찌르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르지 아니하리이다." 하니,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하기를 "그를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자기 손을 뻗쳐 주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치고서, 어찌 죄가 되지 않겠느냐?"』(삼상 26:8,9). 『내가 내 손을 뻗쳐 주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신 것이라』(삼상 26:11).
다윗은 자기의 유익과 영달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시고 쓰신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과 저주의 원칙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시편 57편에서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둔다고 썼다. 『오 하나님이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내 혼이 주를 신뢰하나이다. 이 재난들이 지나갈 때까지 정녕, 내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나의 피난처를 삼으리이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곧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그가 하늘에서 보내셔서 나를 삼키고자 하는 자의 비방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시리라. 셀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비와 그의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정해졌고, 내 마음이 정해졌으니 내가 노래하며 찬양하리이다. 내 영광아, 깨어나라. 솔터리야, 하프야, 깰지어다. 내가 친히 새벽을 깨우리로다. 오 주여, 내가 백성 가운데서 주를 찬양하며 내가 민족들 가운데서 주께 노래하리이다. 주의 자비는 커서 하늘들에까지 이르며 주의 진리는 구름들에까지 이르나이다. 오 하나님이여, 하늘들 위로 높임을 받으시며 주의 영광이 모든 땅 위에 있게 하소서』(시 57:1-3,7-11).
하나님께서 불러 쓰시는 증거들을 보면서도 그를 대적하고 음해하고 그 사역들을 방해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원칙대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악인이라고 규정하셨다.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 『행악자로 인하여 초조해 하지 말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풀같이 곧 베어질 것이며 푸른 나물같이 말라질 것임이라.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 거할 것이요, 진실로 그가 너를 먹이시리라. 또 주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들을 네게 주시리라. 너의 길을 주께 맡기고 또 그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어 주시리라. 그가 네 의를 빛같이 가져오시며 네 공의를 대낮같이 가져오시리라. 주 안에서 쉬고 인내하며 그를 기다리라. 자기 길에서 번영하는 사람, 곧 악한 계책을 성사시키는 사람으로 인하여 초조해 하지 말라. 화를 그치고 노여움을 버리라. 결코 악을 행하려고 초조해 하지 말라. 행악자는 끊어질 것이나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땅을 유업으로 받으리라. 잠시 후면 악인이 없어지리니 정녕, 네가 그가 있던 곳을 열심히 찾을지라도 그것이 없을 것이라』(시편 37:1-10).
당신은 하나님의 교회와 그 사역에 대해서 대적하거나 음해하거나 비방한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지금 자백하라!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악을 묵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해 놓으신 법과 원칙을 절대로 위반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았으면 하나님을 아버지, 주님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이 점을 몰랐으면 악인의 길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는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눅 23:34)였다. 스테판은 돌로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순교자들이 악인들의 칼과 몽둥이와 불길과 돌로 죽임을 당하면서 이와 동일한 기도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악인이 받을 벌이 얼마나 큰가를 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했다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악들을 행함으로써 악인의 정죄를 받지 않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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