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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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성도이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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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5월호>

자동차 사고를 예방하려면 방어 운전(Defensive Drive)을 해야 한다. 방어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 운전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운전하는 것을 말한다. 방어 운전을 권장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사고를 예방하는 데 있다. 사고를 예방해야 죽을 사람을 살리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사람을 구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으면 자기 뜻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믿어야 온전히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다는 뜻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말하는가? 성경대로 믿는 믿음이다. 성경대로 믿는다는 것은 성도가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어떤 말씀이라도 의심해서는 안 되며 모른다고 해서 사사로이 해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벧후 1:20).
성경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위한 책이지 자연인들의 책도 아니요 그 책을 믿을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교과서가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요 1:1). 『태초부터 계셨고, 우리가 들었으며, 우리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살폈으며, 우리 손으로 직접 만졌던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라』(요일 1:1). 따라서 성경을 믿지 않고 교회만 다니려고 하는 것은 맨손으로 고기 잡으려는 사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사람들에게 시온에 둔 귀중한 모퉁잇돌이 되셨지만 믿지 않는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실족케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셨다(사 28:16, 벧전 2:6-8).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수를 내는 반석이시다(출 17:6, 고전 10:4, 요 4:13,14). 이 반석은 카톨릭이 베드로라고 하는 돌멩이가 아니라 교회의 기초가 되신 귀중한 모퉁잇돌이시다(엡 2:20). 예수님의 초림 때, 메시야 되심을 알아보지 못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셨지만(롬 9:32,33, 고전 1:23) 재림 때는 이스라엘에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실 것이며 이방 세계 권세에는 그들을 치는,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이 되실 것이다(단 2:34).
교회는 다니면서도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무익한 존재들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화목제물을 믿는 자들을 구원시키기 위함이었지 기독교란 종교를 만들기 위함도 아니요. 구원받지도 않고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지도 않는 사람들로 교회놀이를 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인 양 십자가도 세우고 교단 간판도 달고 있지만 그 중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보다는 마귀가 세운 교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기록된 대로 말씀을 믿지 않는 것과 2.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나무가 내는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듯이(마 7:20) 교회가 무슨 짓을 하면서 선교니, 복음이니, 사역이니 이름 붙이는지를 보면 그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인지 아니면 마귀가 세운 교회인지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교회들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믿음을 기를 수 없으며 말씀대로 행할 수도 없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첫째 왕 여로보암 때에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여로보암에게 보내시면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치라 하셨다. 그 선지자는 외쳤다. 『오 제단아, 제단아,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요, 그가 네 위에서 분향하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네 위에 제사하리니 사람들의 뼈가 네 위에서 불살라지리라』(왕상 13:2). 그 선지자는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몰랐으며 다만 주님께서 그에게 넣어 주신 대로 말씀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350년 후에 태어날 요시야왕이 그 일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그 일은 열왕기하 23:15,16에 정확히 성취되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선포하라고 보내신 그 선지자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하셨는데 벧엘에서는 빵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는 것이었다(왕상 13:7-10). 그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초대를 거부하는 데까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따랐다. 그런데 그가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않고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벧엘에 있는 한 늙은 선지자가 상수리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와 『당신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니이까?』라고 말을 건내자 그에게 응수하면서 대화가 이루어졌고 그 늙은 선지자는 그에게 자기와 함께 집으로 가서 빵을 들라고 했다. 이번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그 늙은 선지자의 초대를 거절했다. 그런데 그 늙은 벧엘 사람은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도 당신과 같은 선지자라. 한 천사가 주의 말씀으로 내게 일러 말하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빵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나이다.” 하였으나 그가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더라』(왕상 13:18).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따라야 했던 그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가 한 거짓말에 속아 그 늙은이의 집으로 따라가서 빵도 먹고 물도 마시고 말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찢겨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그 거짓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목숨을 잃은 그 선지자의 사인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을 길에서 데려온 그 선지자가 듣고 말하기를 “그는 주의 말씀에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주의 말씀에 따라 그를 사자에게 넘겨주니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왕상 13:26).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롬 15:4). 구약성경은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신다. 그런 교훈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이름을 들먹거리며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 했다고 거짓말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거부하고 그 말씀을 믿지도 않는 삯꾼 목자의 말을 따르게 되면 그 선지자의 운명과 같아지는 것이다.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자기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말하는 거짓 목사의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하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이며 그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사를 통관해 볼 때 거짓 교사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는 추종자들을 무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로마카톨릭 사제들은 성경을 자기들만 보는 것이라며 그들 신도들에게는 금서로 만들었다. 만일 신도들 중에 누군가가 성경을 가지고 있거나 읽었다면 죽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A.D. 500-1500년까지 거의 천 년 이상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없었고 그대신 사제가 들려 준 거짓 교리들을 달달 외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성사들에 참예했던 것이다. 사제들이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자기들보다 성경을 더 잘 아는 성도들이 있음을 알았을 때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력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그들은 다른 언어로 된 성경을 금하고 오직 라틴어로 된 성경만을 택하기로 결정하고 제롬이 번역한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를 강단에서 사용하였다. 허나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제가 만담을 하는지 농담을 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엉터리 주문을 외우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뭣하러 성당을 가야 하는지 어떤 것을 얻었는지 알지 못했다. 셋째, 그런 가운데서도 복음을 마음으로 믿었던 소수의 무리들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생명은 그들 가운데서 솟아났고 진리에 갈급한 그들은 매 세기마다 알프스를 중심으로 흩어져 주님을 섬겼던 것이다. 왈덴시안, 알비겐스, 카타리, 롤라드, 폴리시안, 보고마일, 불가리안 등 주로 인도자의 이름을 딴 집단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로마카톨릭은 이런 이단들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되자 급기야 사탄의 발상을 찾아냈다. 그것이 곧 성경을 삭제시키고 변개시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탄이 일으킨 사탄의 종들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손상을 입게 되자 사탄이 세운 교회들은 사탄의 우상 목자를 세워 변개된 성서를 수용하게 했다.
카톨릭은 라틴 벌게이트에서 1582년 림즈 듀웨이(Rheims-Douay) 영어성경을,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펴낸 헬라어 신약성경(1881년)에서 네슬과 알란드 성경이 나와(1898년) 혼란을 가중시키기 시작했으며,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성경에서 영어 RV(1883), ASV(1901), RSV(1946), NIV(1976) 등 계속해서 변개된 성경이 나왔고 카톨릭과 하나된 WCC 교회들은 <영어킹제임스성경>을 배격하고 마귀의 성경을 쥐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되이 소리쳤던 것이다. 그런 가짜 성경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진 말씀이 아니었다(시 119:89). 그것은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순수한 말씀들이 아니었다(시 12:6).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다(시 119:142, 요 17:17). 그것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양날 가진 칼이 아니었다(히 4:12). 그것은 불 같지 않고 바위를 부수어 내는 큰 망치 같지도 않았다(렘 23:29). 오히려 그것은 성도들을 마귀 앞에서 무장해제시키려는 술책 하에 나눠 준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이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작심하고 그런 성경을 쓰는 교회에 나가 아무리 열성을 다해 공부하려 해도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어떤 조명도 주지 않으신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종과 그런 섬김을 인정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따르는 행위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땅과 하늘만큼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 뿐만 아니라 육신 안에 있는 자들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8).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자들의 믿음의 행보로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요일 3:22).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관계인 것을 아는가?(마 26:28)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그분의 계명들(말씀들)을 지키라고 요구하신 것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셨기에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만일 그래서 요구하셨다면 하나님의 유익을 위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롬 8:22)라는 이 말씀이 허공에 뜨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지키라고 요구하신 것은 그에 대해 보상해 주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히 11:6).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은 거룩하시고 완벽하시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만일 어떤 종교지도자가 성경을 제시하여 믿으라고 권면하지 않고 성경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면 이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둘 다 영적으로 자살을 하는 셈이다(마 15:14). 당신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섬기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바른 성경에서 벗어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으면 자기 뜻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종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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