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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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담배를 허용하는 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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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6월호>

한국 교회의 영적 수준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최근 방인근 목사(수유리교회)는 신촌포럼(대표 이정익 목사)에서 “삶의 구체적인 정황과 관계가 있는 제반 문제들을 다룬 교회헌법을 기독교윤리 학자들을 동원하여 유연성과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재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고 “구시대의 의식 상태에서 깨어난 적도 없는 죽은 교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방목사는 지난 5월 10일 신촌교회에서 열린 제20회 신촌포럼에서 ‘교회가 늙어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한국 교회의 예민한 고민거리인 주초(酒草)문제도 거론했다. 자신이 주초문제와 자유롭다고 밝힌 그는 “건강 차원의 문제인 술 담배 문제도 종교나 윤리 차원이 아니라 건강 차원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라면서 “술과 담배의 문제는 방어적인 윤리규정보다는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윤리규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방목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윤리기준도 변한다”면서 “이혼문제,” “낙태문제,” “소송문제,” “환경문제,” 지교회의 “당회제도” 등도 거론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인 헌법을 만들어 새로운 교회상, 행정조직 등 획기적인 내용으로 교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유연성, 개방성, 역동성, 미래지향성을 지닌 젊은 성결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기독교신문, 2007년 5월 20일, 제3면).
술 문제
방목사가 주초(酒草)문제를 포럼의 주제로 삼는 것을 보면 그의 영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술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세상의 향락을 추구하는 죄인들과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단지 『술 취하지 말라.』(엡 5:18)고 했지, “술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어디 있느냐며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술에 대해서 엄중하게 경고하며 명령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자와 고기를 탐식하는 자와 함께하지 말라』잠 23:20). 『술 취하는 자와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잠 23:21), 『술은 붉고 잔에서 빛을 내며 매끄럽게 내려가나니, 너는 술을 쳐다보지도 말라. 그것은 마침내 뱀처럼 물며, 살모사처럼 쏘리라』(잠 23:31,32).
담배 문제
또한 담배는 어떤가? 하나님께서는 불을 피우려고 사람의 입과 호흡기관들과 코를 주시지 않았다. 성경에서 입에 불을 품고 콧구멍에서 연기를 내는 것은 사탄밖에 없으니, 성경을 찾아보라!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고 하시지 않으셨는가? 또한 담배가 해로운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다(고전 6:19).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키고 사용해야 할 의의 병기이다(롬 6:13). 담배로 건강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께서 미리 정하신 선한 일들을 위해 주신 몸을 해치는 것이므로 마땅히 죄가 되는 것이다(고전 6:20).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전 3:17).
이처럼 간단한 문제인데, 포럼과 윤리규정 따위가 왜 필요한가? 술과 담배의 문제를 교회헌법에 명시해야 하는 성결교단의 현실 자체가 비참하고, 또 이러한 수준 낮은 규정조차도 수정하고 위반하려는 방목사와 같은 자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인 줄 알아야 한다. 방목사와 같은 자들은 시대가 흐르면 대마초나 마약을 금하는 것도 구시대적인 발상을 버리고 유연하게 대처하자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행함
방목사와 같은 자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이들은 시대가 바뀌면 그리스도인의 윤리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목사에게 묻는다. 주 하나님께서 변하셨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성경의 내용이 변경되었는가? 주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말씀도 변하지 않는데, 방목사는 왜 엉뚱한 것을 말하는가? 방목사는 시대적 흐름과 상황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윤리가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 윤리적 상대주의자이며, 그의 주장은 인본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또한 방목사가 바른 성경에 최종권위를 두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타인이나 여하한 단체나 국가 이전에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할 의무를 갖는다. 성경의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며, 우리가 변하지 않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직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길 원하신다. 성경을 보라. 『나는 주이므로 변경하지 아니하노라』(말 3:6). 『나는 곧 나니라』(출 3:14).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2:16, 레 11:45). 『주의 눈은 어느 곳에서나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살피시느니라』(잠 15:3).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너는 완전하라』(창 17:1).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살전 5:22). 『그분께서 각자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지 않으시겠느냐?』(잠 24:12) 그리스도인은 선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는 세상의 반대와 시대의 풍조와 사람들의 증오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서 있음을 인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창 24:48, 왕하 5:16, 딤전 6:13-16). 우리는 또한 모두 그분 앞에 서서 또한 우리 각자가 행한 일을 심판받을 것이다(롬 14:10). 그러므로 윤리적 상대주의자인 방목사는 참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인들과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붙드는 것은 비단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세상 가요, 춤, 영화, 텔레비전, 잡다한 소설, 외설잡지, 인터넷 게임, 도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은 이러한 세속적인 것들에 사족을 못쓰고 즐거워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경이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아무 말하지 않으니까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성경의 의의 말씀을 가지고 예민해진 양심으로 모든 일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의 쾌락에 중독되고 길들여져서 양심이 둔감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모든 일을 시험하여 보고 선한 것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셨다(살전 5:21). 위의 항목들은 아래의 잣대로 쟀을 때 모두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 옳은 일인가?
2) 남을 세워 주는 일인가?
3) 하나님께 그 일에 대해 축복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가?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
5)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보신다면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인가?
유치한 수준에서 벗어나라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죄와 타협하며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그리스도와 세상을 넘나들며 양쪽에서 다 만족을 얻기를 바란다. 방목사와 같은 자들은 세상을 닮고 세상과 일치하여 얻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성경적 윤리와 양심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방목사처럼 주초문제나 들고나와서 그것을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조정해야 한다거나 그와 유사한 유치한 일들을 더하지 않는다. 성경의 조명과 선한 양심으로 단 1초도 걸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수준을 낮추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순히 악을 피하는 것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리스도인은 명백한 죄를 가지고 하나님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다.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단순히 선과 의를 선택함에서 진일보하여,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냐(롬 14:15), 믿음으로 하는 것이냐(롬 14:23), 죄인을 주께로 이겨오기 위해 유익한 것이냐(고전 9:19), 다른 그리스도인을 세워 주는 것이냐(고전 10:24), 영원을 위한 것이냐(딤전 6:12,19),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고전 10:31)의 질문들을 다루는 것이다.
술 담배 하는 한국 교회
한 나라에 건전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자리잡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그 나라의 도덕적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성경은 『의는 민족을 높이지만 죄는 모든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고 말씀하신다. 우리 나라는 100년이 조금 넘는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독교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의 백분의 일이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이 나라의 도덕적 모습이 이렇게 망가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방목사가 수준 낮은 술 담배의 윤리를 논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한국 교회가 전혀 정화 기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락한 사회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가 계속해서 도덕적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은 이 민족을 내려치시려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한국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교회가 아니다.
성결교회의 방인근 목사는 타락하는 교회를 듣기 좋게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유연성, 개방성, 역동성, 미래지향성”을 지닌 교회라 부를 뿐이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어떤 그리스도인을 바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을 피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알고 하늘이 무너져도 그분의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행하는 사람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죄인들의 구미와 세속적인 기독교계의 유행과 악한 세상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악을 악하다, 어두움을 어두움이라, 쓴 것을 쓰다고 할 수 있는 설교자,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을 원하신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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