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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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의미를 가리는 “부활절” 행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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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5월호>

성경적 복음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사회 복음”으로 시작된 한국 기독교계의 왜곡된 사역의 모습이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부활절 행사들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죄들을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 복음 전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처음 기독교가 전파될 때부터 성경적 복음이 아닌 “사회 복음”이 들어왔다. 사회 복음은 그 사회의 열악한 부분에 도움을 줌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파하는 방법으로서 실제로는 복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빈민 구제, 의료 활동, 교육 사업 등을 통해 기독교를 전파한다. 사회 복음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기독교계는 사회의 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면서 성경적 복음으로 전환되기는커녕, 아예 “사회 복음”을 뛰어넘어 세상 문화에 편승하면서 그 의미가 더욱 왜곡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기독교 신문의 4월 1일자 기사에는 구세군 한국군국(사령관 장만희)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에게 라면과 자장면을 제공하며 부활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는 내용이 실렸으나, 복음을 전하고 죄인들을 구령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구세군은 매년 이러한 행사를 하지만, 여전히 “사회 복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른 기독교 신문 4월 2일자 기사에는 부활절 퍼레이드에 참석했던 사마리안퍼스 오기선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는데,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렀던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광화문 한복판에서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어 매우 뜻 깊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독교 문화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확장되기를 고대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활절 퍼레이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복음”을 전함으로써 “지옥으로 가는 혼들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사가 결코 아니다. “기독교 문화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확장되는 것”을 목표로 한 행사이다. 이러한 한국 기독교계의 부활절 행사들의 문제점을 알아보도록 하자.

부활절을 하루 앞둔 3월 30일에는 “2024 부활절 퍼레이드”가 서울 광화문과 시청광장 일대에서 “Go Together! 부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퍼레이드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3.4km 구간을 60여 개 팀, 1만 5천여 명이 행진했다. 제1회 부활절 퍼레이드였던 작년 참석 인원이 8천여 명이었던 것에 비해 약 2배 더 확장된 규모였다. 이날 행사는 1부 퍼레이드와 2부 기념음악회 순으로 진행됐으며, 놀이마당에는 오전 10시부터 12미터 크기의 “예삐 인형” 포토존과 상설 부스, 어린이 그림대회 등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SNS를 통해 “부활절 퍼레이드 댄스 챌린지”도 진행되었다. “예삐 인형”과 “댄스 챌린지” 같은 프로그램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그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축제 프로그램”을 모방해서 “기독교 흥미 끌기”를 해 보려는 어설픈 연출이 아니겠는가?

“부활절 퍼레이드”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예수 부활의 참 의미를 전하고,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2024 부활절 퍼레이드’가 되길 바란다... 부활을 기다리며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과 함께 기독교 대표 문화 축제를 만들 수 있도록 많은 참여와 응원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행사로 시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렸는가? 일반 시민들 중 그 누가 이 행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구원받아 부활의 기쁨을 누렸는가? “부활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참여한 사람들에게 복음전도지를 나눠 주는 이는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진정으로 부활의 참 의미를 체험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해야 한다. 즉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롬 10:9,10).

부활절 당일인 3월 31일 “한국 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모인 목사들은 “2024년 한국 교회 부활절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사회 복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태의연한 단어들의 열거에 불과했다. 이 선언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재해와 재난, 분쟁과 소멸의 마지막 때를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은혜 아래 사회·경제·문화적 성취를 이뤄 왔지만 분단 고착화, 인구 소멸, 경제 양극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로 시작한다. 이 나라의 교회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교회에 다니면서도 복음을 전혀 몰라 구원받지 못한 채로 지옥의 대기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구 소멸, 경제 양극화”를 교회가 바라보아야 할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는 것 자체가 그들의 잘못된 기독교 세계관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한국 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설교한 “한국 교회 총연합” 공동대표회장인 이철 목사는 그의 설교 서론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부터 잘못 정착된 “사회 복음”에 관해 「우리나라에 근대 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정신을 일깨워 민족수난의 현장에서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 기독교였고, 그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 신앙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부활 신앙”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계가 기념하는 “부활절”(Easter)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이 없다. 부활절은 “이스터”(Easter)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교도들의 여신 숭배 축제가 기독교로 유입된 것이다. 그 이방 여신의 이름은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타르테(Astarte), 이쉬타르(Ishtar) 등으로 불렸는데, 이 이름에서 “이스터”라는 축제가 생겨났다. 이 여신들은 지역에 따라 봄, 생명, 생식, 다산 등 상징하는 바는 조금씩 달랐으나,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 사상의 변형일 뿐이다. 이렇듯 유럽 각 지역의 여신 숭배 사상을 로마카톨릭이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부활절이다.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 또한 이교도들의 관습에서 온 것이다. 부활절 달걀은 고대 바빌론인들의 “알 숭배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바빌론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하늘로부터 거대한 알이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졌는데, 그 알에서 한 여신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알을 그 여신의 상징물로 여긴 데서 부활절 달걀이 비롯되었다. 또한 이스터는 봄의 축제로서 왕성한 생식(生殖)과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생식력이 왕성한 토끼를 그 상징물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부활절 토끼”의 유래이다. 이 “이교도의 부활절” 풍습이 로마카톨릭에 의해 예수님의 부활과 교묘히 접목되면서 기독교계로 유입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보증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고, 예언하신 대로 사흘 낮과 사흘 밤 후에 부활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줄 표적이 없도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39,40).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즉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요 6:39).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에 그분의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신약성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5:18).

사도 바울도 “부활”이 우리 믿음과 복음 전파의 기초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 또한 헛것이라』(고전 15:13, 1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이 헛된 일이 아님을 보증해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주님의 고난의 교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가 되어야 한다. 『이는 내가 그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과 그의 고난의 교제를 알아 그의 죽음의 본을 따르려 함이며』(빌 3:1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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